반학문적이고 반이성적인 발언
분야에 따라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대체로 우리가 공부를 하거나 연구를 하는 것은 일종의 '보편타당한 사실'을 찾아내기 위해서다. 그러니까 매우 다양하고 광범위한 사실이나 연구결과를 이용하여 보편적인 사실을 추출해내거나 혹은 일종의 패턴을 알아내는 것이다. 심지어 '불확정성의 이론'이라고 알려진 카오스 이론 역시도 표준화, 보편화하기 힘든 현상에도 분명한 패턴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이론이란 것은 공부와 학문의 필요성이 그런 측면에 있음을 말해준다.
물론 이런 인식 역시 지나치면 문제가 된다. 지나친 보편화는 각 사안이나 사실이 갖고 있는 고유한 성격이나 특징을 무시해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시각은 다양성을 축출해버림으로서 지나친 획일화의 길을 걷기 마련이다. 반면 보편성의 추구를 무시하는 경우엔 모든 사안이나 사실이 모두 다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결론에 도달함으로서 직접 경험하거나 혹은 개입하지 않은 사안이나 사실에 대해선 그 어떤 의사표시도 할 수 없다는 극단적인 경험론으로 치우치게 될 것이다. 알다시피 이 두 가지 모두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거의 모든 학문들이 여기서 벗어날 수 없다. 역사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인간사를 관통하는 어떤 보편타당한 질서나 의식을 찾아내려고 한다. 그런데 그런 시도 자체를 무의미한 것을 치부한 채 예외적인 것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역사라는 학문 자체를 부정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모든 역사적 사실은 제각기 저마다의 고유한 특성이 있고 이런 특성은 다른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닌 독립적인 것이란 주장이 그러하다.
그런데 만약 그것이 진실이라면 사실상 우리는 역사를 공부할 필요성 자체를 부인할 수 밖에 없다. 역사속의 어떤 사건이 어떤 보편적인 시각을 통한 가치판단을 부정할 정도로 고유하고 독립적인 것이라면 우리는 그 역사적 사건을 둘러싼 모든 요건들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사건이 똑같이 재현되지 않는 이상 역사속의 사건을 알아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누구나 알수 있는 것처럼 그런 일이 일어날 확률은 100%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무엇보다도 시간의 흐름이란 제약조건 자체가 너무나 강력하다. 100년전에 일어난 사건이 지금 이 자리에서 똑같이 반복된다고 하더라도 등장인물은 절대로 같은 수가 없다. 제 아무리 비슷한 인물이라고 하더라도 동일인일 수는 없다. 그리고 그 순간 두 사건은 서로 비교할 수 조차 없는 고유하고 독립적인 사건이 된다.
우리가 5.16이란 사건을 배우는 이유 역시 이런 규정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5.16을 통해 군사 쿠데타와 그 부당성이란 보편타당한 지식을 얻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그런 시도들은 무시하고 특정 사건의 고유성만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 학문적 시도 자체를 무력화시키고자 한다.
때문에 난 5.16 군사 쿠데타에 대해서 '당시로선 바른 판단이자 최선의 선택'이란 감언이설로 사람들을 현혹시키고자 애를 쓰는 인간들에 대해서 학문 자체를 부정하는 인간들이자 반합리적이고 반이성적인 행위를 일삼는 몰상식한 것들이라고 본다. 그리고 또 강조하지만 반학문적이고 반합리적이며 반이성적인 인간은 지난 5년간 보아온 것만으로도 차고 넘칠 정도로 충분하다는 거다.
혹자는 '당시로선 바른 판단이자 최선의 선택'이기 때문에 예외로 인정해 달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런데 알다시피 그걸 예외로 인정해주기엔 사안이 너무 중대하다. 즉 그것을 예외로 인정해주기 시작하면 우린 인류 역사에 기록된 수많은 반인권적인 행동들 역시 모두 인정해 줄 수 밖에 없다. 그럴 수는 없는 노릇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