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신과 맹목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만 보고 헌신과 맹목의 차이를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이 둘 모두 자신의 소임이라 여기는 일을 하는데 있어서 갖은 노력을 다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둘을 구분하는 방법은 외외로 매우 간단하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는가? 그렇지 않은가?"
헌신하는 사람은 수단과 방법을 가린다. 자신이 원하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어떤 방법을 선택했는데 그것이 결과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준다면 그는 그 방법을 버릴 것이다. 설령 그 방법이 목적을 이루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것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그런데 맹목에 빠진 사람은 그런 걸 구분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목적을 이룰 수만 있다면 자신이 선택한 방법으로 인해 다른 이에게 엄청난 피해가 가든지 말든지 개의치 않는다.
아주 쉬워 보인다. 그런데 사실 이게 만만한게 아니다. 왜냐하면 방법이 옳은가 그른가를 구분하기 위한 여러 가지 기준들을 정하는 것이 매우 까다롭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단지 사람들이 논쟁을 이 층위에서만 진행하려고 들기 때문에 결론이 나지 않는 것이다. 어떤 방법을 사용하려고 하는데 100중의 1명이 피해를 받는다면 이 방법을 채택해야 할까? 아니면 포기해야 할까? 이런 식인데 그냥 이 층위에서 논쟁을 벌이면 결론같은 게 나올리가 없다. 게다가 '민주주의 다수결이다'라는 그릇된 인식이 만연한 나라다 보니 대부분의 결론은 다수를 위해 소수가 피해를 보라는 식으로 결론이 나는 것이 대부분이다.
답은 간단하다. 민주주의는 다수결이 아니라 토론이고 소외되는 소수를 배려하는 것이란 사실만 잘 알고 있으면 된다. 즉 다수가 만족하는 방법을 채택하되 그 때문에 소외되는 소수를 위해 어떤 보완책을 도입해야 하는가를 동시에 고려하면 된다.
문제는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그동안 민주주의는 다수결이라고 떠들면서도 정작 다수보다는 소수를 위한 정책들을 채택해 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민주주의도 아닌 단순 공리주의조차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극단적인 애국심이란 이데올로기를 설파해왔다. 극단적 국가주의에 취한 국민이자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노동을 착취해서 재벌들이 엄청난 잇속을 챙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애국이라고 믿으며 살아왔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그것은 애국이 아니라 그냥 노동착취라는 상황을 호도하기 위한 눈속임에 불과한 것이다. 노동환경 개선과 임금인상, 그리고 그런 정책들을 실현하기 위한 정치적 행위, 그리고 노동조합에 대한 대한민국 사람들의 적개심과 빨갱이 마녀사냥은 그렇게 탄생한 것이다. 늘 말하지만 현실을 제대로 본다는 거 만만한 게 아니다.
아무튼 남들보다 몇 배는 열심히 노력하는 겉모습만 보고 헌신과 맹목을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다. 맹목에 빠진 군바리가 쿠데타를 일으켜 민주주의 헌정질서를 무너뜨리고 국가권력을 불법적으로 찬탈하고 이에 저항하는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그런데 정작 사람들은 이런 사람조차도 찬양한다. 왜? '열심히 살았다'는 것이다. 맹목에 빠져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인간을 헌신적이라고 착각하는 거다. 인간이자 군사독재자였던 다까끼 마사오에게서 굳이 '인간 박정희'만을 따로 떼어 평가하려 드는 이들이 바로 그런 이들이다. 우습게도 이런 이들의 기준에서 보자면 간디나 히틀러나 별 차이없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다까끼 마사오때문은 아니다. 오늘 중국에서 석방되었다는 김영환이 때문이다. 정치인들 혹은 정치적 행위를 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특정한 목적을 위한 갈망이 더 크다. 때문에 헌신과 맹목이란 차이를 구분하지 못 하는 경우 맹목에 빠질 확률이 더 크다. 학상 시절 데모깨나 했다는 인간들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정치적 행보를 보이는 것도 그런 탓이다. 그들은 스스로를 헌신적이라고 평가할지 모르지만 정작 그들이 빠져 있는 함정은 맹목인 것이다.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김문수나 이재오, 신지호같은 인간들이 그런 부류들이다. 손학규정도가 그 차이를 깨닫고 시궁창에서 탈출한 경우에 속할 것이다.
대상이 무엇이든 그것에 대한 갈망이 크면 맹목에 빠지기 쉽다. 게다가 헌신과 맹목은 드러나는 모습이 비슷하기 때문에 스스로 착각에 빠지기도 쉽다. 그리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괴물이 되는 거다. 대한민국의 이념적 지평의 협소함이나 정치에 대한 인식 수준을 보면 당분간은 이런 어처구니들이 아주 많이 등장할 것이고 스스로의 몰상식을 대단한 것인양 떠들 것이다. 이들은 근절할 수 있는 뾰족한 대책은 없다. 방법은 오로지 국민들이 그것에 속지 않는 것 뿐이다.
p.s.
같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독재자 박정희는 무시하고 인간 박정희만 찬양한다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느끼는 건데 그들의 의식 수준이나 행위는 아이돌 가수들에 대한 맹목적인 지지를 보이는 이른바 '빠'들과 별로 다를 것이 없다. 그런데 박정희를 찬양하는 꼰대들은 이상하게 어린 '빠'들을 무시한다. 어떻게 봐도 대상만 다르다 뿐이지 하는 생각이나 행동은 별반 다르지 않은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