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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열과 김준형

The Skeptic 2012. 8. 6. 02:57

'4가지' 개그 콘서트의 인기있는 코너중의 하나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단점들을 드러내어 웃음을 주는 코너다. 비슷한 꼭지로 '아빠와 아들'이 있다. 그런데 지향하는 바는 다르다. 두 코너 모두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단점들을 드러낸다는 점에선 같지만 '아빠와 아들'은 그 단점을 둘러싼 선입견들을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스스로 희화함으로서 웃음을 주는 반면 '4가지'는 단점을 드러내되 그 단점을 둘러싼 주변 사람들의 편견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주장함으로서 웃음을 선사한다. '내가 그런 사람인 건 맞는데 그렇다고 그렇게까지 행동하진 않는다'는 거다. 


아무튼 이 '4가지'란 코너에서 가장 흥미로운 인물은 바로 김기열이다. 그는 스스로 인기없는 남자라며 자학개그를 펼친다. 그리고 그의 주장대로 그는 사실 그다지 인기있는 개그맨은 아니다. 그런데 왜 그는 인기가 없을까? 실제로 그는 몇 년전만 해도 개그 콘서트 내에서 상당히 많은 코너에 출연하던 유망한 개그맨이었다. 그런데 점점 그 존재감이 사라지더니 지금은 스스로 인기가 없다는 것은 내세워서 인기를 회복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왜 그렇게 된 것일까?


얼마전 인터넷 연예뉴스에 어느 토크 프로에 나온 개그 콘서트 서수민PD가 신보라에 대해서 이런 말을 했다. '쟨 뭐지? 개그맨과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멀쩡한 외모를 가지고 왜 개그맨을 하려고 하지?' 그렇다. 직업적인 특성상 개그맨은 평범하거나 멀쩡하게 생기면 상당히 불리하다. 그런 그것이 김기열의 인기없음의 증거가 되진 않는다. 다른 개그맨을 볼 것도 없이 같은 '3가지' 코너를 진행하는 허경환의 경우 역시 멀쩡한 외모(개인적인 취향상 잘 생겼다는 점엔 동의해줄 수 없다)를 하고 있으나 인기는 상당하다. 심지어 허경환이 개그맨으로 상당한 자질을 갖추고 있다고 보이지도 않는데 말이다. 


그런데 난 그 이유를 역시 같은 코너를 진행하는 김준형에게서 찾았다. 김준형과 김기열의 차이는 아주 단순하다. '관객들에게 웃을 수 있는 시간을 주는가? 그렇지 못한가?'다. 김기열은 자신의 대본을 아주 충실하게 이행하는 편이다. 얼마나 충실한가 하면 주어진 대본을 소화하는 것에 집중한 나머지 관객들이 웃을 수 있는 시간적 여유조차 주지 않고 자신의 대사를 읊어 나간다. 반면 김준형은 그런 대목에 이르면 관객들이 충분히 웃고 즐길 수 있도록 시간적 여유를 갖거나 혹은 조금 더 나아가 정말 사소한 애드립을 사용함으로서 웃음을 배가시킨다. 


이 차이는 매우 사소해 보이지만 실은 굉장히 큰 차이다. 주어진 상황과 그 상황이 어떻게 변화하고 흘러가고 있는가를 인지하고 그것을 이용할 수 있는 능력, 즉 순발력이다. 특히나 개그콘서트처럼 공연의 형태를 갖고 있는 경우 정말 중요한 것은 관객들과의 교감이다. 어떤 프로그램보다도 순발력이 중요하다. 물론 대개의 경우 순발력은 경험이 축적되고 여유가 생기면 어느 정도 익힐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 편으론 그런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능력은 이미 순발력이라기 보다는 데이타 축적에서 비롯된 능력이란 점에서 볼때 순발력이라고 보긴 힘들다. 이젠 꽤 중견급이 된 개그콘서트의 베테랑들, 김준호나 김대의, 박성호같은 이들이 개그 콘서트를 벗어난 프로그램에선 이렇다 할 능력을 잘 보여주지 못 하고 무리수를 남발하는 것이 그런 차이를 잘 반영해준다고 볼 수 있다. 


김기열은 그런 점에 매우 취약하다. '4가지'코너에서 김기열이 등장하는 장면을 볼 때마다 늘상 무언가 안 맞고 뒤엉키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는 이유가 그거다. 물론 순발력이란 건 그렇게 쉽게 얻을 수 있는 능력이 아니다. 순발력은 단순한 하나의 능력이 아니라 상황판단능력과 함께 가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이런 차이다. 국민 MC란 예능 역사상 무적의 칭호를 받으며 대체불가능한 존재로 군림하는 유재석을 보자. '무한도전' 이나 '런닝맨'을 보다 보면 실제로 유재석보다는 다른 이들의 언행에서 더 많이 웃게 되는 경우가 자주 있다. 그럴 때마다 단지 MC라는 역할을 배제하고 나면 유재석의 능력은 별 것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유재석의 진정한 가치는 바로 그런 웃음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출연자들에게 상황이나 역할을 주거나 유도해낸다는 점이다. 그와 가장 많은 기간을 함께 한 '무한도전'을 보자. 이제는 꽤 많은 출연자들이 유재석의 그런 능력과 역할을 안다. 그래서 수시로 그의 자리를 탐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그런 시도가 남기는 것은 무리한 시도로 인한 어색함일 뿐이다. 


이렇듯 상환판단능력을 동반한 순발력이란 건 쉽게 얻을 수 있는 능력이 아니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김기열이 그런 능력을 갖게 되지 못할 확률도 매우 높다.(굳이 김기열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두 그렇다) 때문에 난 김기열에게서 그런 능력을 바라진 않는다. 단지 다른 수많은 개그맨들이 그렇게 되었던 것처럼 경험 축적과 여유를 통해 늘 주어지는 상황에 대한 판단능력정도는 갖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본다. 지금이야 인기가 없다는 것조차도 개그 소재로 사용할 수 있지만 그걸 언제까지 우려 먹을 수는 없다. 그게 아니면 개그콘서트나 리얼리티 츠로그램이 아니라 주어진 대본을 충실히 이행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정통 코미디가 다시 인기를 얻는 세상이 되거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