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수는 소중하다.
아시안 시리즈에서 한국의 라이온즈가 대만의 라미고 몽키스에게 0:3으로 패해서 결승 진출이 좌절되었다고 한다. 최근 국내 리그 경기도 재미가 없어서 보지 않았던 터라 아시안 시리즈는 아예 관심조차 없었는데 퇴근하기 전에 잠깐 경기를 봤다. 그리고 그 짧은 경기 관람을 통해 나온 판단은 이런 거였다.
1. 라미고 몽키스 선발 투수는 속구가 그리 빠르지는 않지만 변화구의 각이 아주 좋다. 하지만 투구패턴도 단조롭다.
조금만 눈에 익으면 쉽게 공략이 가능해 보인다.
2. 라미고 몽키스 타자들은 모두 미국 메이저 리그 팀의 4번타자들이다.
타순 상관없이 모두 풀히터들이다. 걸리면 큰 거고 아니면 말고식의 모아니면 도다.
3. 그런데 라이온즈의 포수는 대체 누구길래 저 따위로 투수리드를 하는 걸까?
짧은 시간동안 내가 알아낸 것은 이 정도였다.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라이온즈가 질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불안한 점이라면 포수정도였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선발 포수가 진갑용이 아닌 이지영이었다고 한다. 라미고 몽키스 타자들은 앞서 말한 것처럼 풀스윙을 하는 타자들이었다. 다들 자기가 팀내 4번타자처럼 스윙을 해댄다. 게다가 몇몇 타자들은 스윙자체가 워낙 독특해서 장단점이 훤히 들여다 보일 지경이었다. 그런데 정작 라이온즈의 포수는 그런 것은 감안하지 않은 채 줄창 바깥쪽 낮은 공을 달라고 요구한다. 심지어 낮은 공을 때리는 데 강점을 보일 수 밖에 없는 스윙폼을 가진 타자에게도 말이다. 공을 몸에 붙여놓고 배트를 휘두르는 유형의 타자에게 몸쪽 공을 줄창 요구하기도 하고 말이다. 리그 경기에서 주전은 아니더라도 주전급 백업 포수만 되었어도 그런 눈에 훤히 보이는 것들을 놓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라이온즈의 포수 이지영은 그걸 놓치더라.
올 시즌이 시작하기 전에 대충 예상을 하면서 난 라이온즈가 절대 강자가 아니라고 말했었다. 그 이유로 든 것이 선발진이 준수하지만 강력하진 않다는 것과 포수진이 질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을 꼽았었다. 그 지적들중 첫번째는 장원삼에 의해 깨졌다. 그것도 내가 거의 믿지 않는 징크스, 즉 짝수 해의 장원삼은 언히터블이라는 징크스가 살아나면서 깨졌다. 물론 장원삼에 의해 내 예상이 빗나갔지만 난 여전히 장원삼의 그 징크스는 믿지 않는다. 반면 여전히 포수가 부족하다는 지적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본다. 진갑용은 나이가 걸리고 그 뒤를 받쳐줄 포수들 역시 나이가 만만치 않다. 그런데 키워야할 이지영정도의 신인급 포수들의 능력은 현격히 떨어진다. 양적으로 자이언츠보다 나을지 모르지만 질적으로 별 차이가 없다. 그리고 포수가 그렇게 쉽게 완성할 수 없다는 점에서 보자면 내년에도 라이온즈의 약점이 될 것이다. (주1)
물론 패배의 가장 큰 이유는 고작 3안타 때리는데 그친 타선일 테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솔직히 타자들 탓을 하고 싶지는 않다. 9회에 걸쳐 공격을 하는 동안 고작 3안타를 때렸다. 그리고 그 9회동안 라미고 몽키스의 마운드를 지킨 건 선발투수였다. 비록 많이 본 것은 아니지만 변화구의 각이 좋지만 직구의 질이 그다지 좋지 못한 투수의 공에 그토록 속수무책으로 당한다는 건 사실 이해하기 힘들다. 그렇다고 그 투수의 변화구가 엄청난 마구인 것도 아니다. 그 정도 변화구는 국내 리그 투수들도 던질 수 있다. 그런데 3안타라는 건 타자들 탓이 아니라 벤치 탓일 가능성이 더 크다.
단기전이고 거의 교류가 없는 팀들의 대결이란 점을 고려하면 분명히 벤치가 작전을 짜거나 상대하기에 어려움이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어차피 그건 상대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든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라이온즈의 벤치는 사실상 그런 역할을 전혀 하지 못 했다. 그리고 알다시피 난 여전히 라이온즈 벤치의 능력에 대해서 의문을 품고 있는 사람이다. 난 올 시즌까지도 와이번스의 전력의 상당 부분은 김성근 빨이라고 보는 사람이며 더불어 지금의 라이온즈의 전력 역시 사실상 선동렬빨이라고 본다. (주2)
결과적으로 이번 경기는 벤치의 무능력함과 경험이 부족한 포수라는 라이온즈의 문제를 그대로 노출한 경기였다고 본다. 기록만 놓고 보면 이기고자 하는 의지는 있었던 걸까 싶기도 하지만 그건 경기를 제대로 보지 못한 탓에 그냥 넘어가기로 한다.
주1)
만약 와이번스의 베테랑 포수인 박경완이 제약없는 자유선수로 풀린다면 라이온즈나 자이언츠는 적극적으로 영입을 고려해봐야 할 것이다. 주전인 진갑용과 강민호의 부재를 팀내에서 키우는 젊은 포수와 박경완이 나누어 지는 것이 가장 좋아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경우 라이온즈는 현재윤이나 채상병, 자이언츠에선 용덕한의 쓰임새가 마땅치 않아 보이지만 사실 박경완의 나이나 체력적인 면을 고려하면 반드시 필요한 선수들이다. 뭐 사실 박경완이 제약없는 자유선수로 풀리면 그를 필요로 하는 팀은 넘쳐날 테지만 말이다. 내 기준에서 보자면 베어스를 제외한 모든 팀에서 그를 필요로 할 것이다. 최근 화제가 되는 FA선수들보다 오히려 그의 몸값이 폭등할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본다. 와이번스 프론트가 그런 계산을 하고 있다면 현금 트레이드를 제안할 수도 있을 것이다. 워낙 노장이라 선수간 트레이드는 좀 힘들 것이고. 그리고 사실 대승적인 차원에서 보자면 적정한 금액을 받고 이글스나 다이노스로 트레이드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보지만 말이다.
주2)
사실 이런 시각은 조금 애매한 문제다. 현직 감독들의 능력을 검증할 수 있는 시기는 언제부터일까? 전임 감독이 선호한 주전들이 물갈이가 되는 시점? 아니면 현직 감독이 취임한지 일정 기간이 지난 시점? 사실 정답은 없다고 본다. 대충 그 둘 사이의 어디 쯤에서 타협을 봐야 한다고 본다. 물론 전임 감독에 비해 현직 감독이 지향하는 야구가 완연히 다르고 그 색깔 차이가 드러나기 시작하면 문제가 될 것은 없지만 말이다. 그런데 와이번스나 라이온즈의 경우는 위의 세 가지 경우들중 '일정 시간이 지난 시점'이란 지나치게 주관적이고 근거없는 기준을 제외하면 그 어느 기준에도 부합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주전선수들도 그대로이고 야구 스타일도 그대로다. 그래서 난 아직도 전임감독 빨이란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