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먹고 바람똥

역사를 용서한다?

The Skeptic 2012. 11. 27. 17:08

살다보면 겪게 되는 재미있는 인간들 중에 한 부류가 바로 '동일화'에 목숨을 매는 이들이다. 이를테면 최근에 안철수가 대통령 후보에서 사퇴하자 목숨걸고 막겠노라고 나선 이들이다. 그는 안철수가 아니다. 그가 안철수를 지지한다는 것 이외엔 별다른 공통점도 없으며 그저 개별적인 존재일 뿐이다. 안철수를 지자하는 입장에서 무척 안타까워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개별적으로 매우 소중한 존재인 나의 목숨까지 내버려야 할만큼 대단한 사안은 아니라고 본다. 


사람들은 흔히 이런 부류의 인간들에게 '숭고하다'는 단어를 사용하지만 미안하게도 이 단어는 사실 아무런 의미도 없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과거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나찌가 독일 국민들을 현혹하기 위해 사용한 것이 바로 '민족주의'와 '애국주의'에 '숭고'라는 이미지를 덧칠하는 것이었다. 이런 예는 일본의 군국주의자들에게서도 볼 수 있고 지금 우리 나라에서 '종북척결'을 외치는 이들에게서도 공통적으로 볼 수 있다. 즉 '숭고하다'는 단어는 '그것이외에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라는 의미밖엔 없다. 좋게 말하면 그런 거고 나쁘게 말하면 '그것말고 다른 건 아무 것도 모른다'는 의미다. 게다가 어떻게 해석하든 상관없이 이런 자세만 가지고 '옳다' 혹은 '그르다'라고 판별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는 거다. 


그러니까 '어떤 일에 목숨을 맨다'는 것과 '목숨을 매는 일이 어떤 일인가'는 완전히 다른 문제라는 거다. 


문제는 이런 것을 구분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이런 자세는 일반적으로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최근에 김지하가 한 발언을 보면 그런 것을 알 수 있다. 다른 발언들은 얼마나 헛소리인가 자주 이야기했으니 넘어가기로 하고 이번에 문제가 된 부분을 보자. '나는 이미 박정희 시절을 용서했다'라는 발언이다. 그가 개인적으로 자신에게 각종 위해를 가한 박정희에 대해 용서를 하건 말건 그건 내 알 바가 아니다. 그건 개인이 알아서 할 문제니까. 


문제는 그의 용서란 그냥 개인적인 용서일 뿐이지 역사 그 자체에 대한 용서란 성립할 수 없다는 점이다. 즉 김지하가 박정희 정권에서 그 어떤 불이익을 당했다고 한들 그에게 역사로서의 박정희 군사독재 시절을 용서할 권리는 없다는 것이다. 역사는 기록하고 기억하며 그로부터 미래를 밝히는 교훈을 얻기 위한 것이지 용서하고 잊어버리자라고 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닌 것이다. 때문에 개인이 역사를 용서한다는 것은 애시당초 말이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그것이 가능한 일인양 떠든다. 


그런데 사실 그런 사람들 많다. 때되면 성조기흔들며 빨갱이 때려잡자고 입에 개거품무는 이들은 박정희 군사독재정권가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이다. 물론 앞서 말한 것처럼 그런 것은 불가능하다. 가능하지 않은 일을 가능한 일인 양 생각하는 건 망상이다. 심지어 이런 현상이 남한의 극우들에게만 한정된 것도 아니다. 과거 운동권이라는 이들 중에도 이런 퇴행적인 인식을 보이는 이들 많다. 


인간의 능력은 분명 어떤 필요성에 의해서 존재한다. 동일시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 동일시의 대상이 웃기는 것이 된다거나 혹은 그 동일시가 지나치면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능력이 아니라 인간을 망치는 망상이 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