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은 늘 시궁창

친노책임론? 장난하냐?

The Skeptic 2012. 12. 21. 01:29

결과가 어찌 되었든 큰 일이 하나 끝나고 나면 늘상 뒤따르는 것이 논공행상이다. 그러나 요즘같은 시절이면 '공을 논하는 것'은 괜찮지만 '상을 행하는 것'은 지나친 보은 인사에 제 식구 감싸기가 될 가능성이 크므로 '공을 논하는 것'에서 끝내는 것이 좋다. 물론 이건 다들 알고 있고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현실에선 전혀 지켜지지 않는 바이기도 하다. 아무튼 그렇다. 일이 끝나면 어떤 식으로든 그에 대한 평가는 반드시 뒤따르는 법이다. 


그 중에서도 이런 일이 가장 필요한 쪽은 바로 진 쪽이다. 패배의 원인을 알아야 다음 번에 제대로 된 싸움을 해볼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게 꼴이 참 우습게 돌아간다. '친노 책임론'이란다. 친노세력이 현재 민주당나에서 무시못할 정치적 세력이 된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리고 그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안 그래도 이번 선거에서 구민주당 인사들이 보인 갈짓자 행보들을 보면 알 쪼가 아니겠는가. 김대중이란 정신적 지주가 사라지고 자신의 정치적 입지가 흔들리니까 아무데나 줄을 대보려고 난리를 피우던 그 자들 말이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이나 노무현 대통령 시절이나 민주당의 정책은 전혀 변화한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친노세력을 욕하던 이들이다. 자기들이 정권의 핵심에 있을 땐 '햇볕정책'이고 자기들이 밀려나니까 같은 대북 정책을 놓고도 '종북세력'이라 칭하는 인사들 아니던가. 애시당초 친노 세력을 민주당안으로 끌어 들이지 못 하고 단순한 계파 싸움으로 몰고가면서 정치판에서 고립시켜버린 이들이 바로 그들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자 '근본없는 놈'이라며 탄핵에 찬성했던 이들이 바로 그들이고 죄박이가 대통령이 된 후 사실상 정치보복이 이루어지는 상황에서도 나 몰라라 했던 것들이 바로 그들이다. 엄격히 따지자면 저번 총선부터 이번 대선까지 그 모든 선거 패배의 책임을 져야 하는 것들은 야권을 통합하기는 커녕 자신들의 입지를 위해 야권 분열에 나섰던 구 민주당 세력들, 내가 지방 토호세력이라 부르는 바로 그들이다. 


어차피 어떤 식으로든 남한의 정치판은 변화를 맞아야 하는 시점이 도래하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보여진 양상 역시 마찬가지다. 선거 기간내내 지적된 것이 있다. 바로 '이슈의 부재'라는 것이었다. 즉 두 후보자 모두 공히 거의 대동소이한 약속들을 내놓음으로서 쟁점이 사라졌다는 말이다. 물론 조금 파고 들어가보면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드러내놓고 격돌할만한 사안은 없었다는 것이다. 그 단적인 사례가 바로 '경제 민주화'다. 난 새대가리당과 박그네가 경제 민주화를 제대로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실제로 그들이 말하는 경제 민주화의 속을 까보면 사실상 실효성있는 대책이란 건 별로 없다. 게다가 현재 새대가리당의 권력의 핵심은 극단적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는 이들이다. 게다가 박그네조차도 여론의 추이에 따라 극단적 신자유주의에서 경제 민주화사이에서 이리저리 말바꾸기를 일삼았을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 기간내내 경제 민주화자체를 부정해본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마음에 들던 안 들던 이젠 새대가리당조차도 그걸 부정할 수없는 현실이 닥쳤다는 말이다. (물론 그런 좌파적 정책을 자기가 지지하는 대통령 후보자가 펴겠다고 하는데도 정작 상대방 후보와 당에게만 '공산당'이라고 부르는 불학무식한 인간도 있더라만)


즉 새대가리당이나 민주당이나 남한의 진보세력들과 좌파들이 옛날부터 주장해온 바로 그 이슈들을 공유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정치를 둘러싼 주요 의제들이 변화하고 있다는 말이다. 당연하다. 세상이 변화하고 있으니 정치적 의제도 변하는 것이다. 결국 이런 변화를 이해하지 못한 이들은 도태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사례를 민주당으로 한정짓자면 결국 도태되어야 하는 이들은 바로 친노세력이 아니라 야권의 분열을 획책한 구 민주당 인사들인 것이다. 그런 이들이 친노 책임론을 운운한다는 것 자체가 우습기 그지없다. 



p.s.

개인적으로 이번 선거가 가지는 또 하나의 의미라면 또 한 번 구시대 정치가 저문다는 것이다. 다까끼 마사오 군사독재부터 시작된 군부독재의 잔상인 박그네가 5년 임기를 마치고 사라지면 군부독재라는 정치적 배경을 둘러싸고 영향력을 얻었던 이들이 모두 정치의 전면에서 사라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