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cografia

데프콘

The Skeptic 2013. 1. 11. 16:52

인터넷 기사를 봤다. 어느 예능 프로그램에 데프콘이 출연했고 그 자리에서 이런 발언을 했단다. '노래에서 욕을 뺐더니 팬들이 떠나더라' 고 말이다. 지금은 TV예능 프로그램에도 자주 출연하고 해서 무척이나 익숙한 존재지만 실상 그의 초창기 음악을 접한 사람이라면 지금의 그의 모습이 사뭇 달라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마도 그는 그런 지점을 지칭한 것일 게다. 그런 변화된 모습을 기억한다면 이 발언뒤에 이어진 자신의 음반, 그리고 어머님과 목사님에 대한 에피소드는 이미 모든 것을 웃음으로 만들어 가는 예능을 자신이 할 수 있는 주된 영역중의 하나로 받아들인 예능인 데프콘으로서의 자세를 유추해볼 수 있다. 


물론 난 그런 변화에 대해서 '변절'이라든지 하는 표현을 사용하는 사람은 아니다. 아주 어렸던 시절에도 그런 변화가 내 취향에 맞지 않았을 뿐 그걸 '변절'이니 '배신'이니 하는 시각으로 바라본 건 아니었다. 그리고 곁다리로 언급하자면 한때 상당히 유행했던 조폭영화들을 보면서도 그네들이 언급하는 '의리'같은 것에 코웃음을 쳤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다른 사람들보다도 훨씬 더 돈에 의해 행동이 좌우되는 인간들에게 무슨 의리같은 걸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들이 의리를 그렇게 강조하는 건 그만큼 그네들 사이의 유대감이란 것이 얄팍하기 때문일 뿐이다. 


이런 류의 변화는 아주 일반적인 것이다. 이른바 마이너와 메이저 문화의 차이가 그렇듯이 말이다. 마이너 음악은 대중들의 시선에서 자유롭다. 따라서 아티스트의 재량권이 상당히 보장된다. 그러나 메이저는 그 반대다. 대중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반면 대중들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그만큼 대중들의 관심사에서 멀다는 의미고 이는 곧 돈이 안 된다는 의미기도 하다. 그래서 마이너가 가진 장점을 그대로 유지하고 싶은 사람에게 가난은 피해가기 힘든 것이기도 하다. 물론 이 경우에도 예외는 항상 존재한다. 마이너라고 항상 가난한 것도 아니고 메이저라고 늘상 대중들의 취향에 맞출 필요가 있는 것도 아니다. 즉 마이너와 메이저로 일반화시킨 이 둘 사이엔 얼마든지 새로운 길도 존재할 수 있다. 단지 그 길을 찾는 것이 그리 녹록치 않을 뿐.


이런 것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니다. 단지 개인의 선택에 대한 문제일 뿐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나에게 특정한 삶을 강요할 수 없는 것처럼 그들의 선택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 역시 그러해야만 한다. 김지하처럼 분열증적 사고와 몰상식을 우기는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다. 


오히려 문제는 다른 측면에 있다. 이런 말이 있다. 젊어서 공산주의자가 아닌 사람을 믿지 말고 나이가 들어도 공산주의자인 사람도 믿지 말라고. 물론 일반적으로 이 말은 이렇게 회자되진 않는다. 그런데 이 말이 회자되는 방식이 잘못된 해석에 기반하고 있기에 난 이렇게 바꾸어 이야기한다. 일반적으로 회자되는 방식은 그저 공산주의를 비하하기 위한 용도지만 실제 이 문장에서 공산주의는 그저 '이상'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젊어서 이상을 꿈꿔보지 않은 미성숙한 인간이나 나이가 들어서도 이상을 교조적으로 받아 들이는 미련한 인간은 더불어 대화할 가치가 없다는 의미다. 


나 역시 이런 지적에 동의한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젊어서 이상을 꿈꾸었던 사람이 나이가 들어서도 자기가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현실적인 인식을 바탕으로 여전히 새로운 이상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 적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서 그저 현실에 적응하는 것만 생각하지 정작 자신이 처한 현실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선 고민하지 않는다. 남한 정치 문제와 관련된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이런 퇴행적 보수화에서 기인한다고 봐야 한다. 


문화 역시 마찬가지다. 요즘 대세라고 하는 예능 프로그램에 저항적 인식을 기반으로 하는 힙합이나 록, 포크를 하는 사람들이 출연하지 말아야 한다는 건 웃기는 교조주의적 발상이다. 인간은 24시간 진지하게 살 수 있는 존재도 아니고 오로지 한 가지 면만 갖고 있는 일차원적인 존재도 아니다. 때론 심각한 이야기도 하고 때론 실없는 농담도 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다. 이건 자연스럽고 일반적인 현상이지 배신이니 변절이니 하는 단어로 풀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 실없는 농담이나 몸개그같은 웃기는 언행을 하면서도 노래엔 사회적 문제에 대한 저항인식이나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들어가도 된다. 아무 문제 안 된다. 그런데 우스운 건 남한의 수많은 미성숙한 존재들이나 퇴행적 보수화의 길을 가는 이들은 이걸 잘못이라고 말한다는 거다. 


아주 같잖은 흑백논리와 얄팍한 조폭식 의리가 더 설득력을 갖는 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웃기는 일이지만 말이다. 


그래서일까? 난 최근 TV프로에 김조광수나 홍석천같은 게이들이 출연하는 것을 대환영하는 바다. 그리고 그들이 보이는 당당한 모습에 박수를 보내는 바다. 그들의 존재 자체를 알려지는 것 자체가 이런 같잖은 흑백논리와 조폭식 의리, 획일화에 대한 파열구를 낼 것이기 때문이다. 



P.S.

용산으로 이사갈까? 언젠가 홍석천이 용산구청장 선거 나가면 한 표찍어줘야 할 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