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먹고 바람똥

선거결과를 통해 본 정치지형

The Skeptic 2013. 1. 15. 17:36

선거의 후폭풍은 아직도 계속 진행중이지만 어쨌거나 일단은 끝났다. 앞으로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기대반 불안반인 상황이다. 그런 미래의 문제는 늘 그렇듯 가능성의 영역이니 일단 짐짓 모르는 체 하기로 하자. 그렇다면 남은 것은 결과에 대한 평가다. 물론 그에 대한 이야기들도 넘치도록 나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내가 보기엔 그 이야기들중 대부분은 사실 별 의미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 와중에도 상당히 의미있는 분석글이 눈에 띈다. 


[손호철의 정치시평] 진보정당과 연합정치


내가 이 글을 인용한다고 해서 손호철의 견해에 완전히 동의한다는 것은 아니다. 두 가지 지점에서 그렇다. 하나는 종북주의에 대한 그의 견해다. 물론 손호철이 종북주의에 대해 그 실체를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지'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그 방증이다. 그런데 정작 나와 갈리는 부분은 바로 그런 실체없는 믿음인 종북주의를 대하는 태도다. 


내가 종북주의를 둘러싼 가장 큰 문제라고 보는 것은 종북주의가 근거없는 정치적 마타도어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위세를 떨치고 있는 작금의 현실인 것이다. 그리고 이는 역설적으로 손호철이 그런 정치적 이미지 조작이 이번 선거의 결과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는 부분에서도 증명된다. 물론 손호철의 주장처럼 정치적으로 자유주의를 표방하는 민주당이라면 그런 혐의로부터 자유로워지기 노력할 필요가 있겠지만 진보를 표방하는 정치단체라면 그것과 아무 상관도 없다는 태도를 취하기 보다는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진보란 바로 그런 근거없는 맹목적인 믿음과 싸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누차 강조하지만 인간의 부정확한 인식들중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바로 <근거가 없는 믿음>이기 때문이다. 애시당초 근거가 없는 상태에서 만들어진 반논리적이고 맹목적인 믿음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식으로 이용해 먹을 수 있다. 당신이 아무리 그것과 상관이 없다고 하더라도 뒤집어 씌우고자 마음먹으면 언제든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어느 어린 여자 연예인이 SNS에서 사실 종북주의란 혐의를 덮어 씌우기에 무리가 있는 후보자와 그 지지자들에게 종북주의란 단어를 함부로 사용한 것이 바로 이런 이유 탓이다. 


두번째 중요한 차이점은 이번 선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요소를 손호철은 보수층의 결집이라고 보고 있다. 그래서 종북주의가 비록 실체적 진실같은 게 없는 정치적 마타도어라고 해도 그것을 효과적으로 피해갔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난 다른 무엇보다도 이번 선거의 향방을 가른 것은 새대가리당이 복지와 고용, 빈부격차 해소와 같은 좌파적 가치들을 수용함으로서 스스로 이념적 차별성을 희석시킨 부분이 가장 크다고 본다.(주1)


문제는 바로 이 지점이다. 그리고 비슷한 시각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해도 이 지점에서 손호철과 나의 견해와 글의 방향은 달라진다. 설령 진심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어차피 이념적 지향보다는 권력을 유지하는 것이 목적인 한 새누리당이 이런 효과적인 물타기 전략을 포기할 가능성은 전무하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가장 난처해지는 것은 바로 민주당이다. 애시당초 진보적인 좌파정당들 수준의 좌파적 정책을 표방하지 않았던 민주당의 입장에선 앞으로도 거의 모든 선거에서 새누리당과 큰 차별성없는 정당으로 나설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이 가장 관심을 끌었던 것은 안철수와의 후보단일화였다. 그 외의 나머지들은 별다른 영향력을 보여주지 못 했다. 게다가 공약의 실천이란 진정성부분에서 안철수 지지자들에게 확신을 심어주지 못 했던 부분도 있다. 즉 새누리당과의 이념적 차이가 희석된 상황에서 문재인정도의 인물로도 승부를 내지 못 하는 상황이 되어버린 건데 이건 참 곤란한 상황이다. 물론 상대가 박그네라는 게 매우 크게 작용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사실 민주당에서 앞으로 내세울 수 있는 후보들중 과연 문재인을 넘어서는 인물이 있는가 하는 의문역시 상당한 근거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난 그래서 최근의 민주당이 쇄신을 부르짖고 있지만 정작 그 쇄신의 내용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란 지점에서 별다른 진전을 보이고 있지 못한 상황을 '당연한 결과'라고 보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대책은? 미안하게도 별로 없다. 이건 친노책임론같은 근거없는 주장을 통해 희석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없는 주장을 펴는 시간에 차라리 민주당의 외연을 확장하는 노력을 하는 편이 훨씬 더 나을 것이라고 본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상황을 진두지휘할 사람이나 중심세력이 부재한다는 점이다. 안 그래도 지역적 기반이 미미한 경남지역에서 힘들게 도지사에 당선된 이가 고작 대통령 후보자를 하겠노라며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오는 상황이 정상적인 건 아니니까. 미안하지만 민주당이 계속해서 이런 식의 행보를 보인다면 더 이상 공당이나 제 1야당으로서의 위치를 유지할 가능성은 전무하다고 봐야 한다. 



주1)

물론 그렇다고 해서 새대가리당이 그 공약들을 제대로 이행할 것이란 기대는 별로 없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난 이번 선거의 결과를 가른 중요한 요소중의 하나가 바로 이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난 그런 시각에서 이번 선거를 완전히 패배한 선거는 아니라고 판단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