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홍과 김성근.
박재홍이 은퇴한단다. 적어도 2년정도만 더 현역으로 뛰었으면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최초이자 어쩌면 마지막이 되었을지도 모를 300홈런-300도루라는 대기록을 차마 이루지 못한 채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그 기록이 이루어지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는 것은 아니다. 그 기록이 아니어도 이미 박재홍은 한국 프로야구사에서 빼기 힘든 기록을 보유한 선수다.
그의 은퇴 소식을 들으며 내가 찝찝한 것은 선수 생활을 더 이어갈 의욕과 능력이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선수로서의 삶을 마감한다는 점이다. 게다가 그 이유들중 중요한 한 가지가 바로 그가 프로야구 선수협의회 회장이란 직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란 사실이다. 실제로 그가 선수협 회장을 맡으면서 선수협은 과거와는 몰라보게 다른 모습을 보였었다.
처음 프로야구 선수 노조를 만들기로 했을때 모든 구단의 극렬한 반대로 말미암아 정식노조가 되진 못한 채 협의회라는 조직이 만들어진 것을 기억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야구 구단들은 그마저도 괘씸죄로 몰아 당시 선수협의회 창설을 주도했던 선수들을 대거 트레이드한다. 그 여파로 또 많은 선수들이 조기에 은퇴하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그리고 그런 암울한 기억은 선수협의회의 행보에 보이지 않는 족쇄로 작용했으며 그 결과 선수협은 단순한 친목단체와 이익단체라는 틀을 벗어나지 못 했으며 심지어 최근엔 내부 비리 사건까지 터져나오게 되었다.
그리고 바로 그런 자기검열에 빠진 무기력한 조직으로 전락하려는 선수협의회를 제 자리로 돌려놓은 것이 바로 박재홍이었다. 내부 비리 문제에 대해 단호한 모습을 보였으며 구단들의 이기주의로 인해 홀수 구단 체제라는 몰상식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는 상황에서 비타협적인 모습을 견지함으로서 사실상 10구단 창단에 선수협의회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도록 만들었다.
그런 결과를 통해 결국 구단들도 이득을 취할 것이다. 그런데 정작 그런 구도, 즉 몰상식에 맞서 상식을 옹호했던 이는 본의아니게 은퇴라는 수순을 밟게 된 셈이다. 결국 과거 선수협의회가 만들어지던 시절부터 이어져 내려온 프로야구 구단들의 노조에 대한 혐오주의적 시각이 여전하다는 방증인 셈이다. 단지 과거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대놓고 보복을 하는가 아니면 등뒤에서 칼을 꽂는가라는 방법상의 차이뿐이다.
그래서 박재홍의 은퇴기사를 둘러보면서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이가 바로 김성근 감독이다. 그리고 한 편으론 언제까지 이 넘의 나라에선 몰상식에 맞선 이들이 항상 피해를 보는 상황이 벌어질 것인가 하는 자괴감이다. 이미 일본 제국주의에 저항했던 이들의 후손들은 가난에 찌들어 살아가고 적극적으로 일본 제국주의에 가담했던 인간들중 누구는 군사 쿠데타라는 반역행위를 통해 대통령 자리를 찬탈하고 심지어 그의 자손이 대를 이어 대통령 자리에 오르는 이 어처구니없는 현실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