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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던트 이블 5] 도망도 솜씨좋게 갈 필요가 있다.

The Skeptic 2013. 2. 1. 04:07

대체로 시리즈물 영화들의 특징이라면 전편보다 나은 속편은 거의 없다는 점이다. 그런데 간혹 예외들이 존재하긴 한다. 이를테면 '배트맨 시리즈'가 그렇다. 물론 엄밀히 말하자면 팀버튼 감독으로부터 시작된 배트맨 시리즈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바통을 이어받으며 새롭게 시작된 배트맨 시리즈는 사실상 완전히 다른 배트맨 시리즈라고 보는 것이 옳다. 그리고 배트맨 시리즈 후속작들이 전편보다 혹은 그 만큼의 성공을 거두게 된 요인 역시 바로 그런 점에서 기인한다. 


배트맨 시리즈의 시작을 알린 팀버튼은 익히 알려졌다시피 미장센을 매우 중요시하는 감독이다. 만화의 모티브를 적극 활용하면서도 그것을 넘어서는 화면을 구성함으로서 영화적 성공을 거두었다. 문제는 그런 경향이 지속되는 것이 부담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 3편인 배트맨 포에버에 이르면 도가 지나쳐 마치 개그콘서트의 갸루상같은 그로테스크한 분장쑈를 보는 듯한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그리고 눈치빠른 할리우드는 그런 한계를 빨리 알아차렸고 결국 스릴러와 범죄물에 일가견을 보인 크리스터퍼 놀란 감독을 채용함으로서 전작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배트맨 시리즈를 만들었고 전작들을 넘어서는 성공을 거두었다. 


그런데 사실 대부분의 시리즈물 영화들은 이런 성공사례들을 무시하는 경향들이 있다. 이유는 단순하다. 그런 식의 파격적인 변화를 시도할 용기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전작들의 성공은 관객들의 기대감을 높이고 그 기대감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흥행이 보증된다는 단순하고도 얄팍한 계산이 그런 시도를 막는 중요한 이유가 된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스스로 무너져 내린 또 하나의 시리즈물 영화가 바로 레지던트 이블이다. 


알다시피 레지던트 이블의 모티브는 바이오 해저드란 게임이다. 그렇다고 영화가 꼭 그 모티브에 충실해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어쨌든 폴 앤더슨 감독의 1편은 마치 게임의 프롤로그 부분을 묘사한 듯한 내용으로 이루어졌으며 당연히 알렉산더 위트 감독의 2편은 게임의 내용을 충실히 재현한 듯한 내용들로 이루어졌다. 무난하고 군더더기없이 모티브에 충실했다는 점, 그리고 상당히 잘 만든 액션장면들과 무리없이 이어지는 스토리들을 보자면 충분히 괜찮은 영화들이었다. 


문제는 3편에서부터 시작된다. 러셀 멀케이 감독의 3편을 보는 내내 난 사실 레지던트 이블의 후속편이라기 보다는 매드맥스 시리즈를 보는 듯한 기시감이 들었다. 그것도 초기 매드맥스 시리즈에서 볼 수 있었던 강력하면서도 음험한 분위기가 아니라 분명 화면은 잘 빠졌지만 김장감이라곤 없는 김빠진 사이다같은 후기 매드맥스의 분위기였다. 어째서 이런 선택을 한 것인지 사실 이해하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앞 문장에서 언급했지만 예술작품이란 오리지널리티도 중요하지만 또 그만큼 다양하고도 새로운 시각과 방법으로 재해석해내는 것도 포함하고 있다. 1편과 2편이 모티브인 게임에 충실했다면 이제는 그와는 다른 새로운 관점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은 누가 봐도 명백했다. 물론 비슷한 분위기와 이야기를 조금 더 몰고 갈 수도 있었을 테지만 제작사의 선택은 변화였던 셈인데 문제는 이게 심각하게 삐딱선을 타버렸다는 점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시리즈물 영화의 선택은 두 가지다. 한 가지 이야기와 소재로 단 물을 다 빼먹는 것과 변화를 시도하는 것. 전자는 구태의연하지만 안전하게 쇠락하는 길이고 후자는 위험하지만 새롭게 회춘할 가능성이 있는 길이다. 때문에 전자의 경우는 별 문제가 안 된다. '트랜스포머'시리즈처럼 그냥 주구장창 같은 이야기를 컴퓨터 그래픽과 카메라 기술을 이용한 스펙타클로 메워가며 서서히 망하면 된다. 문제는 후자다. 두 가지 질문이 던져진다. '어떤 변화를 선택할 것인가' 그리고 '그 변화를 전작들과 어떻게 연결시킬 것인가' 레지던트 이블 3편은 두번째 질문에 대해서 잘못된 답안을 제출해 버렸다. 


게임 바이오 해저드는 좀비를 무찌르는 게임이다. 레지던트 이블 역시 같은 내용이 주다. 비록 영화로 넘어오면서 주인공이 인간과는 다른 특별한 능력을 갖춘 일종의 영웅으로 등장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아주 특별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3편에선 갑자기 염력과 비슷한 초능력이 등장한다. 게다가 좀비들 역시 다양한 돌연변이들과 훨씬 더 뛰어난 운동능력(?)을 보여준다. 이건 완전한 실수다. 몇날밤을 새워가며 해도 재미있다는 게임에도 엔딩이 있고 제 아무리 끝판왕이라고 해도 무찌를 수 있는 치명적인 약점 하나정도는 갖고 있는 법이다. 그런데 레지던트 이블 3편에선 그런 것을 가볍게 무시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이래선 끝나지 않는 드래곤볼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 걸 누가 보겠나? 


결국 그 결과는 참담했다. 결국 제작사는 개국공신인 폴 앤더슨 감독을 다시 불러 들인다. 어떻게든 잘 마무리해보라는 의미인데 제 아무리 개국공신이라고 하지만 이렇게 길을 잘 못 들어버린 상황에선 별다른 타개책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도 4편의 초반부는 그럴 듯 했다. 마치 다시 게임으로 돌아간 듯한 전개는 그래도 이 네버엔딩 드래곤볼에도 끝판은 존재하겠구나하는 기대감을 들게 했다. 그러나 그 기대도 잠시뿐 도쿄라운드를 클리어하자마자 영화는 다시 3편의 함정으로 떨어지고 만다. 그래도 마지막 장면에선 그나마 다음 편에선 저 구덩이에서 헤어나올 수 있겠지 싶었다. 


그리고 대망의 5편. 그리고 실망. 아무튼 설득력은 없지만 5편까지 나왔다. 이 5편의의 부제는 '최후의 심판' 그런데 내가 보기엔 그냥 보복이나 천벌정도가 어울리는 것 같다. '최후의 심판'이라고 무게잡을 정도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부제가 붙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바로 이 영화가 그간의 시행착오들을 벗어나는 방법으로 종교로 도망가버렸기 때문이다. 


4편까지만 해도 T바이러스를 제대로 통제하며 그걸로 여전히 돈벌이를 구상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던 엄브렐라사의 사장이 앨리스를 엄브렐라사의 시뮬레이션 센터에서 빼오면서 하는 말, 과거 라쿤시티 지하의 하이브에서 대장질을 하던 슈퍼컴퓨터 레드퀸이 인류를 절멸시키고자 하고 있으니 앨리스가 유일한 희망이라고 한다. 이건 아주 익숙한 이야기다. 


바로 미국의 보수 개신교계를 필두로 전 세계 보수 개신교계에서 인류의 과학적 성취들중 일부에 대해 논리나 윤리와 같은 기준에서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악마와의 거래라는 마녀사냥을 해대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 그리고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이제 싸움은 더 이상 인간 혹은 인간의 특성을 갖고 있는 초능력자와 인간의 모습을 한 좀비의 싸움이 아니라 온갖 종류의 돌연변이들, 그러니까 거의 영화 콘스탄틴에서 묘사된 지옥의 사탄수준의 존재들과 싸우는 것으로 전개될 예정인 것이다. 


과학적인 전제를 깔고 시작했지만 언제부터인가 과학은 군대에서나 볼 수 있다는 만병통치약 수준의 설득력으로 전락해 버렸으며 게임을 벗어나 휴머니티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나 싶었지만 결과적으로 술꾼의 갈지자 걸음 수준일 뿐이었다. 그렇게 이 시리즈물은 과정은 틀렸는데 답은 맞았다는 이해하기 힘든 상황을 연출하고야 말았다. 그러니까 그래도 일단 답은 맞았으니 뭐라고 심하게는 못 하겠지만 전혀 납득은 안 가는 그런 상황인 거다. 그렇게 영화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는 설득과 증명을 통한 믿음의 길을 가기 보다는 일단 믿으면 모든 것이 다 증명된다는 종교를 탈출구로 선택한 것이다. 



P.S.

속편이 제작될 지는 모르겠지만 제작된다면 아마도 그건 영화 '프리스트'의 표절이 되지 않을까 싶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이런 웃기 힘든 결론을 내버린 영화에 더 이상 밀라 요보비치가 출연하려고 하겠는가 싶은 거다. 물론 돈많이 준다면 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P.S.2.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이 시리즈물 영화를 연관성같은 것에 구애받지 말고 각각 독립적인 영화로 놓고 평가해보라면 난 이 시리즈물의 최대 문제아인 3편이 가장 마음에 든다. 결과적으로 전체 시리즈물을 놓고 평가하다보니 3편이 문제아가 되어 버렸지만 사실 그 지점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는 가능성도 충분했다고 본다. 물론 감독이 그런 의도나 장기적인 구상을 갖고 있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게다가 그런 장기적인 구상이 있었다고는 해도 사실 수습이 그리 만만할 것 같지도 않다. 다만 어쨌든 제작자는 모티브가 있는 영화라는 한계를 벗어날 용기가 없었던 것은 확실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