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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던트 이블 시리즈 - 다른 선택.

The Skeptic 2013. 2. 5. 16:51

제 아무리 공상과학 영화라고 하더라도 기본적인 과학적 근거는 배경으로 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리고 또 대부분의 경우 영화는 그런 소재를 통해 이야기가 전개되거나 방향이 전환되는 것 역시 보통이다. 달래 공상'과학'영화겠는가. 그렇다면 그런 점에서 길을 잃어버린 영화 레지던트 이블은 어떤 다른 선택이 가능했을까? 물론 애시당초 '과학'보다는 모티브가 된 '게임'이 영화의 주된 관심사였다면 이 글은 별 의미없는 것일테지만. 


영화 속 T바이러스는 강력한 세포재생 바이러스다. 얼마나 강력하냐면 죽은 세포마저 살릴 정도다. 물론 그 바이러스가 재생시키는 세포가 뇌세포나 신경세포는 포함하지 않는다는 건 조금 의아하지만 어차피 그건 설정이니 그러려니 하자. 문제는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이 관계에서 인간의 세포, 아니 모든 생명체의 세포는 일종의 숙주, 그러니까 바이러스가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먹이로 삼는 숙주인 셈이다. 이런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바로 숙주의 생존 기간이다. 정말 힘들게 숙주에 침투하여 생존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냈는데 그 숙주가 갑자기 허망하게 죽어버리면 안 된다. 숙주의 죽음은 곧 숙주를 매개체로 삼는 자신의 생존조차 위협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해결책은 두 가지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숙주가 죽어버리는 속도보다도 더 빠르게 다른 숙주로 갈아타는 것이다. 실제로 이 영화 레지던트 이블에선 T바이러스에 감염된 이들이 미친듯이 다른 사람들, 즉 숙주들을 공격하고 감염시키는 상황이 연출된다. 무리가 없는 설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경우에도 두 가지 문제는 남는다. 그렇게 압도적인 속도로 다른 숙주를 공격해서 감영시켜야할 정도로 T바이러스가 파괴적이라면 일정 기간이 흐른 뒤엔 더 이상 지구상엔 숙주로 사용할 수 있는 개체가 남아나질 않을 것이라는 점. 두번째는 그렇게 파괴적인 바이러스에 감영된 이들이 스스로 죽어 버리는 장면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만약 이런 생각을 했더라면 이 영화 레지던트 이블은 3편에서 새로운 길을 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모든 종류의 생명체는 늘상 항상성을 지향하는 법이다. 그리고 그 항상성의 최고봉은 바로 생존이다. 즉 생존이 걸린 문제가 발생하면 모든 생명체는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다는 점이다. 심지어 그 과정은 자신이 과거에 어떤 존재였는가마저도 손쉽게 부정해 버릴 정도다. T바이러스가 비록 인간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생명체라곤 하지만 그래도 중요한 것은 생명체라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의 생존이 위험한 상황에 닥치면 변화를 선택하게 마련이다. 


물론 영화상으로만 보자면 T바이러스는 그런 생존을 위한 변화를 선택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거의 없을 정도로 파괴적인 바이러스로 보인다. 실제로 그런 바이러스들이 존재하기도 한다. 사람들에게 공포의 대상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작 그런 끔찍한 바이러스로 인한 피해는 그리 크지 않다. 왜냐하면 숙주를 파괴하는 힘이 너무나 강력하기 때문이, 즉 숙주가 죽는 속도가 너무나 빠르기 때문에 전염의 가능성이 현격하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동안 인류를 괴롭혀온 감기가 사실상 최강의 바이러스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어지간한 경우가 아니면 감기 바이러스는 숙주를 죽음으로 몰고 가지 않는다. 즉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 숙주가 아파하고 괴로워할 순 있지만 결코 죽음으로까지 몰고 가진 않는다. 그리고 두번째 특징은 돌연변이에 능하다는 점이다. 오랜 시간 인류를 괴롭혀왔으면서도 정작 쓸만한 약조차 제대로 없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고정된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늘상 자신의 속성을 바꾸기 때문에 약을 개발하는 것이 불가능할 지경인 것이다. 


T바이러스가 영화에서 묘사된(물론 아주 엄밀하게 따지자면 영화에서 그렇게 제시된 것은 아니다. 단지 내가 영화를 보면서 유추해본 특성이다) 바대로 스스로의 안위조차 돌보지 않을 정도로 강력한 바이러스라면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는 3편, 즉 멸종편에서 끝이 났어야 한다. 그런데 알다시피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의 존재는 진화의 산물이고 이 진화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바로 돌연변이다. 그리고 이 돌연변이에게 가장 중요한 전제는 바로 너무 강력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강력하다는 것은 지금 현재의 상황에 대한 적응이 너무나 완벽하다는 의미다. 반대로 상황이 변화할 경우 그 변화된 상황에서 살아남을 확률은 현격하게 떨어진다는 의미기도 하다. 결국 감기 바이러스처럼 유연하게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 


만약 3편에서 이런 가능성이 제시되었다면 어땠을까? 이미 앨리스라는 존재자체가 T바이러스의 변종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강력한 증거가 아니던가. 게다가 2편에선 치료약도 있다고 나오지 않던가. 물론 단순한 치료제가 아니라 T바이러스의 힘을 약화시키는 역할만 하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긴 하지만 어쨌거나 인위적으로라도 T바이러스는 조절가능한 바이러스인 셈이다. 이 과학적으로 상당한 설득력을 가진 두 가지 전제가 존재한다는 것은 그만큼 이야기의 전개를 새롭게 이끌어 갈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기도 하다. 그러나 영화 레지던트 이블시리즈는 '아직까지'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 앞으로 영화가 더 나올지 아니면 이대로 시리즈가 끝이 날지 모르겠지만 만약 더 나온다면 이런 근거를 기반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었으면 싶다. 


물론 5편의 마지막 장면을 보고 나니 내가 언급한 방향으로 진행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이지만 말이다.  



P.S.

물론 이런 다소 과학스러운 이야기를 전개하기 위한 전제자체가 달라진다면 이 이야기는 하등의 의미도 없을 수도 있다. 그러니까 T바이러스가 내가 지금 이야기하는 일반적인 '바이러스'의 속성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닌 경우다. 즉 비록 다른 어떤 것보다도 강력한 힘을 갖고 있지만 그래봐야 바이러스인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아무런 외부적 도움이나 기생, 공생 기타등등과 같은 유기적 관계의 도움 없이 홀로 생존할 수 있는 경우다. 영화만 보면 T바이러스는 그런 속성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인류의 과학적 성과나 모든 자연계를 통틀어 봐도 이런 류의 생명체는 없다. 이건 거의 인류의 마지막 꿈이라고 할 무한 동력기관, 즉 외부의 에너지 원천의 도움없이도 스스로 작동하며 동력을 만들어 내는 경우와 같기 때문이다. 


만약 T바이러스가 그런 것이라면 위의 글은 아무 의미도 없을 것이다. 물론 그렇게 전제하더라도 문제는 여전하다. 만약 그런 경우라면 감염된 인간의 머리통을 날려버린다고 해서 그 인간의 행동이 멈춘다고 보장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아니 그 어떤 짓을 한다고 해도 감영된 생명체가 움직임을 멈추는 경우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믹서에 갈아버린다면 몰라도. 아무튼 그 결과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인류는 멸종하고 전혀 다른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다. 게다가 만약 아주아주 먼 훗날 태양이 제 능력을 상실하고 소멸해 버린다고 해도 지구는 여전히 어떤 형태로든 생명체가 살아 움직이는 행성으로 영원히 남을 것이다. 심지어 지구가 폭발해버린다고 하더라도 운좋게 여전히 움직이는 생명체 일부가 살아남아 우주공간을 배회할 수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