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 평가전 - 축구는 단순한 스포츠.
축구는 단순한 스포츠다. 그리고 그게 장점이기도 하다. 고작 어렵다는 룰이라고 해봐야 오프사이드 정도다. 그마저도 오심이 아닌 경우라면 그렇게 판별이 어려운 것도 아니다. 오히려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파울 상황에 대해서 심판이 어떤 판정을 내리는가 하는 것일 게다. 심판도 사람인 이상 매뉴얼이 존재한다고 해도 어느 정도의 주관성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니까.
같은 의미에서 축구 경기에서 이기기 위해선 당연하게도 골을 많이 넣고 실점을 적게 해야 한다. 그렇다면 골을 가장 많이 넣을 수 있는 확률이 높은 방법은 무얼까. 선수의 구성이 어떻게 되는가에 따라서 무척 달라질 이야기지만 그런 요소들은 배제하고 나면 이야기는 또 무척 단순해진다. 아주 당연하게도 골대 정면이 골을 넣기 가장 좋은 환경이다. 심지어 둑점이 인정되는 골대 안이 전혀 보이지 않는 상황인 코너킥 상황에서도 공격팀은 어떤 방식으로든 공을 골대 정면으로 옮기려고 노력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왜? 확률이 높으니까.
이 단순한 사실을 통해 알 수 있는 또 다른 시각은 바로 수비 역시 골대 정면을 잘 지키는 것이 실점할 확률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축국 경기를 보면 측면보다는 중앙 수비에 더 많은 선수가 가담하고 공을 들이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단순하 사실을 얼마나 잘 실천하는가에 따라 승패가 갈리고 잘 하는 팀과 못 하는 팀으로 나뉜다. 알다시피 축구는 단순한 스포츠니까.
이번 크로아티아와의 평가전 역시 그런 측면이 강하게 작용했다. 크로아티아의 전방으로 밀어주는 패스에 한국 중앙수비진은 속수무책으로 당했으니까. 거기에 수비수로서의 기본적인 책무마저 망각한 어이없는 실수들이 이어졌으니 언감생심 이긴다는 건 꿈조차 꾸기 힘들 상황이었던 거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그대로 크로아티아의 수비진과 우리 공격진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
저번 글에서도 말한 바 있지만 우리 공격라인, 특히 미드필더 라인은 상당히 괜찮은 편이었다. 그런데 정작 골은 터지지 않았다. 심지어 후반전에 들어서자 중앙에서 공격다운 공격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 했다.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일까? 몇 가지 요소들이 존재한다.
하나는 후반전이 시작한 이후로 크로아티아의 수비가 중앙으로 밀집했다는 점이다. 이건 단순히 정석적인 플레이인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만약 상대 팀의 측면 공격수들이 파괴적인 모습을 보였다면 그런 수비진형을 선보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제 아무리 각도가 없다고 해도 골이 안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측면 공격수의 정교한 크로스 한 방이면 골을 만들어낼 수도 있으니까. 이 말은 곧 우리의 측면 공격수들이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다는 말이 되는 셈이다. 이런 문제는 저번 글에서 말한 것처럼 측면 수비수들의 공격 가담이 위협적이기 보다는 그냥 가담했다는 것에 의의를 두는 수준이었다는 지적과 일맥상통한다.
두번째 문제는 해외파와 국내파의 차이다. 이 경기에서 활발한 움직임을 보인 선수들은 구자철, 기성용, 지동원, 이청용, 손흥민 정도다. 공격작업의 대부분, 그리고 상대진영에서의 공격용 전진 패스는 주로 이들에게서 나왔다. 반면 국내파 선수들은 그 어떤 것도 두드러져 보이지 않았다. 돌파, 전진 패스, 빠른 볼처리같은 건 구경하기조차 힘들었다. 공격 진영에서 패스를 받아도 전진 패스를 노리기 보다는 뒤쪽으로 밀어주는 것이 다반사였고 공격 진영에서 공을 소유하면 어찌할 바를 몰라하는 모습들이 역력했다. 그나마 후반전에 기용된 선수가 해외파에 몾지 않은 활발함을 보여주었을 뿐이다. 이게 단지 기량 차이에서 비롯된 문제일까. 난 아니라고 본다. 이건 다분히 심리적인 문제다. 외국의 유명한 선수를 상대한다는 부담감을 스스로 이겨내지 못 하고 주눅이 들어버린 거다.
세번째 문제는 과감한 슈팅을 날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경기 내내 우리 팀 공격중 그나마 과감하다고 볼 수 있었던 것은 후반 초반에나온 이동국의 슈팅이 전부였다. 나머지는 공격이 아니라 공격 작업을 하다가 실패하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요즘 세계 축구의 대세는 바르셀로나의 전술이라고 한다. 짧은 패스로 공격을 이어가며 상대의 빈 공간을 노리는 전법.
그런데 여기서 주의해야할 점이 있다. 축구는 단순한 스포츠다. 축구 경기의 모든 공격은 상대의 빈 곳을 노리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상대팀 골에어리어에 장신 공격수들을 꽂아 놓고 대충 높게 크로스를 올려서 헤딩골을 노리는 전법은 단조롭고 우스워 보이지만 분명 충분히 적용해볼 수 있는 방법이다. 특히 세트피스 상황에 대한 적응력이 떨어지는 팀, 수비수들의 피지컬이 떨어지는 팀을 상대하는 경우 가장 효과적인 득점 루트라고 해도 무방하다. 바르셀로나나 스토크 시티나 결국 자기들이 가장 잘 하는 공격방법을 통해 상대를 공략한다는 점에선 차이가 없다는 거다.
그런데 후반전 들어 크로아티아가 우리의 장점과 단점을 파악하고 난 이후 그에 맞춘 전법으로 돌아섰지만 정작 우리 팀의 대응은 그대로였다. 중앙수비가 견고해졌지만 공격은 여전히 중앙에서'만' 우기고 있었다. 심지어 다른 방법을 시도하는 것도 아니었다. 물론 바르셀로나처럼 상대가 아무리 중앙수비를 강화해도 뚫어낸다면 나도 할 말은 없다. 그러나 우리 대표팀은 바르셀로나가 아니다. 결국 그 시점에서 우리에게 필요했던 건 변화였다. 그런데 선수들부터 벤치까지 아무런 변화를 시도하지 않았다. 물론 그런 변화를 위해 최적화된 공격수인 김신욱이 부상중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말이다. 그래도 평가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후반에 새로운 시도를 해보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싶다.
p.s.
월드컵 지역 예선이 얼마 남지 않았고 대표팀이 모여서 함께 훈련할 기회도 많지 않다고 한다. 만약 이 평가전의 경기력이 지역예선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하면 사실 좀 난감한 일이다. 물론 크로아티아와 아시아 팀들간의 수준차이라는 게 명확하니 큰 문제는아닐 테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래서 해보는 이야기. 수비라인의 불안을 해소할 방법이나 선수가 없다면 기성용과 구자철을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용하고 이청용과 지동원, 박주영, 손흥민 중에서 공격 미드필더를 맡기는 것이 낫다고 본다. 이청용을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은 슈팅능력이 좋으니 당연히 최전방 공격수는 타겟형 스트라이커인 김신욱을 기용한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이게 최선의 조합인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