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oki

홍콩영화가 간 길을 따르면 망한다. 여러 모로.

The Skeptic 2013. 2. 15. 02:14

영화 '자칼이 온다'를 보고 그에 대한 글을 쓰다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한국 영화도 홍콩 영화가 갔던 길을 뒤따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말이다. 물론 문화란 것도 일종의 유행이다 보니 특정한 분야나 특징들이 다른 것들보다 더 대중적이 되는 것과 혹은 밀려나는 것은 그리 감상적이 될 필요는 없는 일이다. 다만 밀려나는 것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인가 하는 것은 문제가 된다. 단지 유행때문에 밀려나는 건 큰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스스로 자멸하는 길을 간다면 그 회복뿐만 아니라 현상유지나 보존이 만만치 않다. 


그럼 점에서 보자면 최근 한국 영화들중 일부에서 드러나는 현상들은 사실 매우 우려스럽다. 물론 이런 우려가 나만의 노파심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일단 지적은 한 번 하고 넘어가자. 영화 '아저씨'와 이 영화 '자칼이 온다'를 보자. '아저씨'는 누가 뭐래도 한류 스타라고 할 원빈을 위한 원톱 영화다. 원빈을 제외한 그 외의 다른 모든 것은 솔직히 아주 수준미달이다. 이 영화 '자칼이 온다'의 경우도 비슷하다. 역시 한류스타인 JYJ의 김재중이 나오지만 역시 모든 것이 수준미달이다. 노파심일지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에 이 영화들은 영화적 완성도보다는 오로지 한류스타라는 티켓파워를 앞세워 한 몫 챙겨보자는 장삿속이 더 앞선 영화들이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할 것은 바로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 무렵까지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 문화권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심지어 할리우드까지 주목하게 만들었던 홍콩영화들이 어떻게 망했는가 하는 것이다. '영웅본색'을 기점으로 촉발된 홍콩 느와르, 슈퍼맨과 휴머니즘과 허세라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세 요소들을 적절히 묶어낸 홍콩 느와르와 '천녀유혼'으로 대표되는 판타지와 로맨스를 결합한 멜로물은 당시로선 충분하고도 넘칠 정도로 매력적이고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리고 뒤를 이은 주성치의 대단한 허풍, 그리고 그렇게 치부해 버리기엔 너무나 빛나는 영화적 성취들. 즉 새롭고 신선하면서도 완성도높은 영화들이 바로 홍콩 영화의 절정기를 이끌었던 힘이었다. 그러나 그런 성취들에 도취된 홍콩 영화계는 그 자리에서 더 나아가지 못 했다. 그저 같은 자리에서 같은 물건들로 재탕하고 삼탕하는 식이었다. 당연히 관객들은 질렸고 흥미를 잃었고 더 이상은 홍콩 영화를 찾지 않게 되었다. 


단순히 예민하고 쓸데없이 걱정만 많은 사람의 노파심이라면 좋겠지만 지금 우리 영화계의 일각에서도 과거 홍콩 영화계가 저질렀던 실수를 똑같이 저지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물론 '점프 아쉰'같은 대만 영화에서 영화 '아저씨'중 한 장면, 원빈이 머리를 미는 장면을 오마주할 정도로 여전히 아시아권에서 한국 문화에 대한 호감도는 꽤 높은 편이다.(영화전체를 통틀어 볼때 오마주의 대상이 될 정도로 인상깊은 장면은 아니었던 것 같음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호감이란 건 말 그대로 호감일 뿐이다. 그리고 알다시피 감정이나 감상이란 건 그다지 믿음직한 존재가 아니다. 사랑하던 사이가 등돌리면 원수만도 못한 사이가 된다는 속설이 감정과 감상의 그런 속성을 잘 설명한 말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런 호감을 갖도록 만든 문화적 성취들에 대해선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 그러나 자부심이란 그 물질적 조건이 충분할 때 성립되는 것이지 그 반대는 성립하지 않는다. 물질적 조건없는 자부심이란 그저 아집이고 꼰대 근성이며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같잖은 허세일 뿐이다. 그리고 영화의 완성도가 그런 물질적 조건을 쌓을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중요한 요소라면 단순히 스타의 티켓파워를 이용한 상술은 바로 그런 물질적 조건들을 갉아먹는 지름길중 하나라는 것이다. 


과거 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홍콩 영화가 갔던 길은 지금 우리가 가고 있는 길과도 상당히 유사하다. 전 아시아권을 뒤흔든 막강한 영향력을 바탕으로 꽤 많은 영화인들이 할리우드에 진출했다. 물론 당시 홍콩이 중국에 영구반환되는 커다란 정치적 사건이 그런 경향을 더욱 부채질한 감도 있지만 어깼거나 당시 홍콩 영화의 위세는 할리우드조 주목할 정도였던 것이다. 지금 우리도 과거 홍콩 영화가 누렸던 영화와 적어도 비슷한 수준의 영화를 누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후 홍콩 영화는 쇠락했다. 그것도 정체와 무책임한 상술이란 가장 안 좋은 과정을 거치며 말이다. 


물론 그렇게 쇠락, 즉 대중적인 영향력을 상실했다고는 하나 여전히 홍콩에선 영화가 만들어 진다. 그리고 여전히 과거 홍콩 영화가 만들어 냈던 고유한 속성들을 간직하고 있으며 간혹 그 성과들을 뛰어넘거나 혹은 그 수준에 근접한 영화들이 만들어지고 호평도 받는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단지 대중적 영향력의 상실이 아니다. 누군가의 발전은 다른 누군가에게 자극이 되고 그로 인해 서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적어도 지금 아시아권에선 한국 문화가 그런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내 걱정은 지금껏 이뤄놓은 영화적 성취들, 한국만이 아니라 아시아와 전 세계의 문화적 자극이 될 수도 있는 성취들이 단순히 떼돈 벌겠다는 단순하고도 이기적인 상술때문에 허물어지는 건 아깝다는 거다. 


여기까지는 아주 원론적인 수준의 걱정이자 이야기고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남들이 만들어 놓은 밥상에 숟가락이나 얹는 비루먹을 짓은 하지 말라는 거다. 능력이 안 되서 그렇다면야 어느 정도 이해해줄 순 있다. 잘 하고 싶었는데 결과가 신통치 못한 경우는 바닷가의 모래처럼 흔하디 흔한 일이니까. 단지 애시당초 잘 해보겠다는 의지도 없이 그냥 돈이나 벌어보자는 수작질을 위해 남들이 만든 밥상에 숟가락 얹는 짓은 하지 말라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