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감?
인간에겐 이성과 감정이란 것이 있다. 뭐 그 외에 더 많은 것들도 있지만 그걸 일일이 다 거론할 필욘없고 일단 내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들만 선택적으로 칭하는 거다. 그래서 아무튼 인간에겐 그 두 가지가 있고 대체로 인간에게 벌어지는 모든 일은 그 두 가지의 영향력하에 놓여 있다고 봐야 한다. 때문에 인간에게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 좀 더 확실한 사실을 알기 위해선('확실한 사실'이란 의미지 '옳고그름'이란 말은 아니다) 그 두 가지의 시각을 동시에 고려하는 것이 좋다.
물론 난 주로 이성을 염두에 둔다. 심지어 때론 감정을 발톱의 때수준으로 여기기도 한다. 그렇다고 내가 감정을 무시하려는 건 아니다. 오히려 난 감정과 그것이 야기하는 문제도 중요하다고 여긴다. 단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이성을 발톱의 때수준으로 여기기 때문에 거꾸로 반응하는 것일 뿐이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이성이나 혹은 그 이성의 배경이 되는 각종 지식, 지혜와 같은 것들이 인간을 무시할 순 있지만 인간이 그걸 무시할 수는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오! 엄밀하게 말하자면 인간이 무시해도 된다. 늘 강조하지만 그에 대한 댓가만 치른다면 말이다.
북한의 핵문제로 연일 시끄럽다. 사람들은 '이번엔 좀 다른 것 아니냐'라면 다소 불안해하기도 한다. 물론 난 여러 가지 의미에서 그런 불안같은 것 전혀 없다. 아무튼 그 이야기다. 이번 북한 핵문제는 과거의 그것들과 비교해볼 때 한 가지 차이가 있다. 바로 중국의 태도다. 과거같으면 북한의 핵문제가 거론되더라도 유엔안보리의 제재안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았을 것이고 자칭 미국의 동맹국들만 제재에 나섰을 것이다. 그런 중국이 이번엔 제재안에 동의했다. 그런 탓에 북한의 발언수위가 더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런 변화가 한반도의 정세를 국도로 혼란스럽게 만들 요인이 될까?
일단 이성적인 면에서 보자면 그 가능성은 현저히 낮다. 중국의 태도가 달라졌다는 방식의 변화가 있지만 여전히 한반도를 둘러싼 이해당사국들이 원하는 목표는 변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북한은 핵위협을 통해 미국과의 대화, 체제보장에 대한 약속 그리고 가능하다면 경제원조를 원하고 있다. 미국은 일단 표면적으로는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속으로는 동아시아에서의 미국의 영향력 유지를 바란다. 중국도 비슷한 걸 요구하고 있다. 남한과 일본은 거론하지 않기로 한다. 어차피 남북 휴전협정같은 국제행정절차의 당사국도 아니고 한반도 정세와 관련해서 그 어떤 결정권한도 없으니까. 다만 양 국 모두 전쟁은 원하지 않는다라는 정도로 정리하자. (물론 개인적인 판단을 하자면 난 남한 사람들이 전쟁을 반대한다고 보지 않는다. 그걸 사실이라고 봐주기엔 너무 말과 행동이 안 맞으니까. 단지 그 이유로 남한 사람들을 비난하지 않는 것은 북한이라고 별반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
상황은 약간 달라졌지만 이해당사국들의 목표는 달라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 작은 상황변화 하나가 극단적 선택을 가능하게 할만큼 결정적인 요소인 걸까. 아니 그렇지 않다. 핵과 관련된 미국의 제재는 북한에게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다. 유엔이 나선다고 미국주도의 제재보다 더 심해지는 것도 아니다. 즉 이성적인 차원에서 판단하자면 단지 발언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뿐 결정적으로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는 셈이다. 따라서 극단적 상황이 도래할 확률 역시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한 가지 더 첨언하자면 이런 상황에서 작은 도발 하나라도 벌어지면 전쟁이 되는 것 아니냐는 말 역시 이성적인 차원에서 보자면 근거가 희박하다. 최근까지도 우리는 연평도에서 해전과 포격전을 벌였다. 사람들은 북한이 먼저 도발했다는 이유 하나로 우리가 일방적으로 피해를 보았다고 생각하지만 엄밀하게 보면 도발과 응전이란 패턴을 밟았다는 점에서 일방적인 피해라는 주장은 옳지 않다. 단지 그 무력 충돌의 상황에서 도발의 대상이자 피해자라는 점에서 우리도 무력을 행사했지만 그 무력행사는 정당성을 얻는 것이다. 어쨌거나 두 번의 무력충돌이 있었다. 그런데 전면적인 전쟁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즉 국지적인 도발이 곧바로 전면적인 충돌이 이어지는 건 아니란 사실이다.
두 번째 감정이란 시각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면 상황은 조금 난감해 진다. 싸움에 대해서 흔히 하는 말중에 '박수도 두 손바닥이 마주쳐야 소리를 낼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즉 싸움은 적어도 둘 이상의 상대가 필요한 일이다. 만약 그 중 어느 한 쪽이 감정적인 대립을 회피해 버린다면 싸움은 벌어질 수가 없다.
내가 앞에서 남한 사람들이 진정으로 전쟁을 회피하고 싶어하는 것인지 믿을 수 없다라고 한 말이 바로 이 부분과 관련이 있다. 싸움을 피하는 방법은 상대와 감정적인 대립을 피하려는 노력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런데 정작 대부분의 남한 사람들은 북한을 거의 절대 악인 것처럼 대한다. 특히 자칭 보수 기독교인들과 자칭 보수주의자들이 그렇다. 그리고 대부분의 국민들은 그들의 주장에 동조한다. 당연히 그런 절대 악은 척결의 대상이다.
그런데 정작 금방이라도 무슨 일이 벌어질 것같은 상황이 벌어지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태도가 180도 바뀐다. 전쟁나면 어쩌냐며 불안감을 호소한다. 사실 참 우스운 일이다. 절대악인 북한이 그동안 전쟁을 일으키지 않은 게 더 웃기는 일이 아닐까? 여기엔 단 한가지 사실밖에 없다. 북한이 자칭 보수기독교인들과 보수주의자들의 헛소리처럼 절대 악은 아니라는 거다. 그들은 우리가 안보를 튼튼히 해왔기 때문에 막을 수 있었다고 떠들수도 있다. 그런데 고작 그런 사소한 장애물때문에 악을 행하지 않는 존재를 절대 악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무슨 말을 해도 결국 단읍 하나, 북한이 멍청하고 나쁜 짓도 많이 하지만 남한 자칭 보수 기독교인들과 자칭 보수주의자들의 주장처럼 절대악 수준은 아니라는 거다.
감정적인 차원에서 난 사람들의 이 분열적인 반응에 대해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이건 마치 취객을 대하는 것과 같은 거다. 지나가는 버스안에서 술취한 취객을 차창너머로 바라보는 것과 그 취객이 바로 옆에서 주사를 부리는 것은 사뭇 다르다. 전자의 경우라면 혐오와 경멸에 가득찬 시선으로 바라볼 수도 있고 옆 자리의 친구와 마음껏 욕이나 험담을 늘어놓을 수도 있다. 그런데 바로 옆자리에서 취객이 주사를 부리고 있으면 그러지 못 한다. 자칫 잘못했다가 그 취객이 나에게 행패를 부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거고 또 그런 차원에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북한 문제란 것이 그렇게 차창 밖의 취객바라보는 것처럼 대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거다. 이건 내가 피해가고 싶다고 해서 피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문제를 감정적인 시각에서 모순적인 태도로 바라보는 건 아무 의미도 없다. 아무 의미도 없으며 심지어 모순적인 언행을 일삼는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말? 그런 건 없다.
어쨌거나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 불안감을 느낀다면 할 수 있는 일은 한 가지 있다. 전쟁을 반대한다고, 어떤 경우에도 전쟁은 반대한다고, 심지어 북한이 국지적인 도발을 감행해온다고 하더라도 전면적인 전쟁으로 비화되는 것은 반대한다고 말하고 주장하면 된다. 물론 그 전에 그런 외교전략을 갖고 있는 정당이나 정치인에게 당신의 권력을 위임했다면 좋겠지만 그건 이미 물건너간 일이니 포기해라.
그런 게 귀찮으면 그냥 관심끄면 된다. 돈많고 다른 나라의 시민권자가 아닌 이상 전쟁이 벌어지면 그냥 요행이나 바라고 납작 엎드려 있으면 된다. 혹여 핵전쟁이라도 벌어진다면? 쓰나미로 인한 후쿠시마 원전 사태를 통해 이미 봤을 테지만 그냥 삶을 포기하면 된다. 죽을 확률이 무척 높지만 산다고 한들 별로 행복한 삶은 못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