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교수의 착각.
자주 강조하는 바지만 난 도덕률을 강조하는 자세에 대해서 그다지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도덕 자체를 부정한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니까 정확하게 말하자면
<정 교수는 "남녀간의 사랑 표시도 어느 정도 할 수 있고, 선정적인 건 상관이 없다. 하지만 여성을 지나치게 성적으로 대상화하고 반복해서 장난과 놀림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은 불편한 내용"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식의 도덕률을 싫어한다는 거다. '남녀간의 사랑', '선정적인 것'과 '지나친 성적인 대상화'라는 것의 차이가 뭘까? 남녀간의 사랑은 성적인 대상화와 무관한가? 그렇지 않다. 남녀간의 사랑이 육체적인 접촉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육체적인 접촉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바로 성적인 대상화, 즉 성적인 측면에서 바라볼때 매력적이고 섹시하다는 것이다. 이걸 부정할 수 있는 건 동정녀 마리아가 실재했다고 믿는 이들 뿐일 것이다. 불행한 점이라면 그걸 신화적 상징이 아니라 사실이라고 믿는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매우 많다는 점일 테지만.
그렇다면 정교수는 이런 단순한 사실을 모를까? 정말 모른다면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동정녀 마리아시거나 아니면 스스로를 기만하는 것이다.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을 거라고 본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그래도 기내에서 라면 제대로 안 끓여준다고 손찌검하는 수준의 인간은 아닐 거라고 추측한다. 만약 그런 인간이라면 내가 이런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낭비지만. 그렇다면 남은 것은 하나, '지나치다'는 것이다. 과연 지나친가? 여기서 도덕률의 기준이 드러나는 거다.
난 싸이의 뮤직비디오를 보는데 아무런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정교수의 주장처럼 성적인 소재들이 마구 등장해도 그렇다. 이유는 단순하다. 그 성적인 소재들이 초딩수준의 장난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수준의 장난이라고 해도 당하는 사람은 기분이 상할 수 있다. 그러나 잠깐이다. 초딩수준의 장난은 어른이라면 충분히 이해하고 웃으며 넘어가 줄 수 있는 것들이다. 그리고 싸이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성적 소재들은 그 수준을 넘어서지 않는다. 그러니 그런 싸이의 뮤직비디오를 보면 분노내지는 불쾌함을 느낀다면 당장 신경정신과를 가보는 것이 좋다. 아마도 다른 이유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아서 일시적으로 분노 조절이 되지 않거나 그게 아니면 성격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아니면 좀 더 심각한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
<정 교수는 “(‘젠틀맨’의) B급문화나 선정성에 대해서 반대하고 싶지 않지만 가족들이 보기엔 난감하다. 중학생 아들이 보기 원하지 않는 뮤직비디오”라고 거듭 주장했다>
대체로 자칭 보수주의자들이 일으키는 가장 대중적인 착각이 바로 이 지점에서 일어난다. 정교수가 한 말을 하나 더 인용해보자.
<“많은 분들이 ‘B급 문화를 즐기면 되는 거지 왜 그러냐’고 말하는데 사실 문화가 총보다 강하다. 싸이에게 표현의 자유가 있으면 내게도 표현의 자유가 있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렇다. 정교수나 싸이나 표현의 자유가 있다. 당연히 싸이는 앞으로도 계속 이런 작업들을 할 것이다. 그리고 인간이 진화에 진화를 거듭해서 머나면 훗날 모두가 동정녀 마리아 수준이 된다면 모를까 그 전까지는 성적인 소재를 다루는 작업들은 아주 활발하게 이루어질 것이다.(장담한다) 이게 무얼 의미하는 걸까? 정교수의 바람과는 반대로 정교수의 중학생 아들은 앞으로 그런 것들을 표현한 작품들을 수없이 많이 접하게 될 것이란 사실이다. 아들을 집에 가둬놓고 키울게 아닌 이상 이건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렇다면 그 중학생 아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런 것들이 있는 시공간을 절묘하게 피해 다니는 기술? 그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피하고자 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모르는데 어떻게 피하겠나? 결국 그 중학생 아들에게 필요한 것은 성과 성적인 표현들에 대한 가치관이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남녀간의 애정에는 육체적인 접촉과 정신적 교감이 함께 중요하다는 것처럼 다소 뜬구름잡는 것같은 진실부터 시작해서 포르노에 등장하는 여배우들의 몸짓과 교태가 실은 주 시청층인 남성들의 성적인 만족감을 충족시키기 위한 연기에 불과하다는 것, 즉 포르노 배우가 그렇게 말하고 행동한다고 해서 일반 여성들까지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게 아니라는 매우 구체적인 사실까지 말이다.
<믿음은 현실을 보지 못 하게 만든다>
내가 자주 하는 말이다. 믿음이란 것이 가지는 가장 큰 단점중의 하나가 바로 현실을 못 보게 만든다는 것이다. 성에 대한 인간의 호기심과 상상력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온 인류의 동정녀 마리아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말이다. 때문에 중요한 것은 그런 현실에서 어떻게 성에 대한 올바른 시각을 갖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건 사실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피해갈 수 없는 길이기도 하다. 그러니 자기 마음에 안 드는 것을 없애 버리자고 말하는 단순하지만 불가능한 요구를 하느니 가능하지만 아려운 길을 가는 것이 낫다.
p.s.
물론 정교수의 주장이 여기서 끝인 것 아니다. 황우석 사태를 예로 들며 싸이에 대한 사람들의 집단적 열광을 지적하기도 한다. 원칙적인 차원에서 난 그 견해에 대해 동의한다. 그런데 그 주장은 싸이에 대한 자신의 비현실적인 도덕률을 옹호하기 위해 곁들여진 것에 불과하다. 자신의 잘못된 가치관을 옹호하기 위해 별로 상관없는 소재를 동원하여 합리화하려는 건 그런 수법을 잘 모르는 사람에겐 꽤나 잘 먹히지만 그 수법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에겐 그저 콧방귀나오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