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은 늘 시궁창

중대조치.

The Skeptic 2013. 4. 26. 01:30

"대화제의에 불응하면 중대조치를 취하겠다"


웬지 너무나 북한스러워 보이는 이 발언은 사실 남한에서 한 말이다. 상황이 잘 풀리지 않으니 각종 방법들을 다 떠올려 보는 것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난 이게 영 미덥지가 않다. 그 중에서도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바로 이른바 '중대조치'다. 많은 이들이 이 '중대조치'의 내용이 개성공단 폐쇄일 것이란 예측들을 하는데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재앙이라고 본다. 


물론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 사업이 북한의 주요한 외화벌이 사업중 하나라는 것은 인정한다. 자본주의적 시각에서 보자면 당연히 공단 폐쇄조치는 엄청난 위협이 될 것이다. 그런데 과연 북한도 그렇게 여길까? 북한이 자본주의 국가이거나 적어도 그 비슷한 수준의 개방경제 시스템을 구축한 나라라면, 하다못해 베트남수준의 개방경제만 되어도 나도 그 조치가 위협적일 거라고 인정한다. 그러나 알다시피 북한은 그런 나라가 아니다. 


차라리 북한은 아프리카 국가들과 비슷하다. 개방경제를 표방하지만 독재권력과 부패한 관료들과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으로 인해 산업적인 발전을 전혀 이루지 못한 그런 나라들 말이다. 이런 문제들로 인해 사실상 개방경제가 가지는 장점은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차라리 국제투기자본이나 다국적 기업이 독재정권과의 야합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독식하는 전형적인 독점적 경제구조가 더 흔하다. 개방경제를 표방하는 국가라고 해도 이런 요소들때문에 전혀 개방경제처럼 안 보이는 경우들도 많다. 


그런데 심지어 북한은 여기에 아예 폐쇄경제다. 과연 외부와의 경제적 교류가 그렇게까지 그들에게 큰 영향을 미칠까? 전혀 그렇지 않다. 미국이 그간 북한에 대한 경제봉쇄를 강력하게 추진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그런 이유로 인해 미국의 요구를 들어주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정작 남한의 행정부에선 그 의미없는 행위를 중대조치라고 떠든다. 미안하지만 이건 단순한 착각을 넘어 무능한 거다. 외교란 기본적으로 상대를 전제로 한다. 혼자서 다 알아서 할 수 있는 외교라는 건 없다. 당연히 외교에서 가장 중요한 능력중의 하나는 바로 상대방의 입장이나 처지에 대해서 잘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다. 그런데 지금 북한 문제에 대처하는 남한 정권은 그런 모습이 없다. 그저 자기 입장, 가치관이외의 다른 것은 전혀 모른다는 태도다. 


이건 무능한 거다. 


문제는 자꾸만 이런 무능한 모습을 노출하는 것이 전혀 이롭지 않다는 거다. 단순히 북한과의 관계에 대해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다른 모든 나라들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지금 미국은 자국의 경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만약 지금 미국의 대통령이 전쟁광 부시가문이고 집권당이 공화당이었다면 새로운 중동전, 군산복합체 기업들에게 막대한 돈을 벌게 해줄 수 있는 전쟁이 벌어졌다고 해도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닐 정도다. 


그 때문에 최근까지도 미국산 소고기 수입 문제나 한미 FTA와 관련된 압박들이 줄기차게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남한 정권이 무능한 모습을 노출하며 미국의 공세는 더 거세질 것이다. 그리고 이 문제는 단순히 경제적 불이익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동안 이런 경제적 조치들을 통해 알 수 있었던 것처럼 부의 집중 현상이 더 심해질 것이고 당연히 빈부격차가 더 커질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경제적 불안감은 정치적 불만으로 귀결될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남한 역사상 가장 이른 시기에 래임덕 함정에 빠지는 정권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