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폐쇄.
말로는 인력 철수 권고라고 하지만 사실상 폐쇄인 거다.
애시당초 실무회담을 제안하고 하루만에 답을 안 주면 중대조치를 취하겠다는 발상자체가 이미 개성공단을 폐쇄하겠다는 말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니까 조금 더 추론하자면 애초부터 박그네는 개성공단이 존재한다는 자체가 싫었던 거다. 그런데 북한의 협박으로 인해 한반도 정세가 급속히 냉각되었다. 마음에 안 들던 개성공단을 폐쇄하려면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누구라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무리한 조건을 내세워 공단폐쇄라는 목적을 달성한 거다.
어쨌거나 개성공단은 폐쇄될 것이다.
문제는 지금처럼 냉각기라면 아무 문제도 안 될 테지만 만약 상황이 개선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개성공단을 다시 돌릴까? 누가? 남한에서 북한에 요구할까? 아니면 북한인 남한에게 요구할까? 어느 상황이든 어색하긴 마찬가지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번에 폐쇄되면 당분간, 아니 박그네가 대통령으로 있거나 혹은 새누리당이 집권여당으로 있는 한 개성공단과 같은 교류는 사실상 힘들 것이다.
그런데 만약 미국이 남북한 관계개선을 요구하고 나온다면 어떻게 될까? 북한이야 미국의 요구같은 건 콧등으로도 안 들을 테지만 남한 정부는 그러기 힘들 거다. 그 쯤 되면 남한 행정부 관료들 머리에 쥐가 날 거다. 어떻게 하면 외부에 저자세 외교가 아닌 것처럼 보이면서 북한과의 관계를 정상화시킬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니까. 게다가 그런 상황이라면 북한은 꽃놀이패를 들고 있는 거다. 물론 그런 상황이 현실에서 벌어진다면 이미 어느 정도 대책이나 협의가 된 다음일 것이니 겉으로 보기엔 별 문제가 없어 보일 거다.
개성공단 폐쇄. 지금 당장은 멋있어 보일 거다. 미사일과 핵으로 위협하는 깡패 국가에게 본때를 보여준 것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이 문제와 관련된 국가가 여럿이라는 점, 그 여럿인 국가들 중 남한이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국가가 아니라는 점이 함정인 거다.
물론 관계개선이라고 해서 굳이 개성공단과 같은 방안을 활용할 필요는 없다. 다른 방법들도 있고 그냥 이참에 아예 북한과의 관계같은 건 무시하자고 할수도 있다. 그런데 앞에서도 말했지만 한반도 문제라는 게 단순히 남북 문제가 아니라는 거다. 미국, 중국, 일본이 남북한만큼이나 직접적인 이해당사자고 여기에 러시아도 영향력 아래에 있다는 거다.
재미있는 건 이들 모두는 한반도 문제에 저마다의 이해관계를 갖고 있지만 직접적인 당사자는 아니다. 저마다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래저래 훈수를 두려고 할 테지만 직접적인 책임은 남북한이 지라고 할 거다. 미국조차도 북한의 직접회담 요구를 부담스러워하는 게 그런 속성탓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아무리 남북 문제에서 발을 빼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는 거다.
그리고 누차 말하지만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는 것은 유아기적 발상이란 거.
p.s.
그렇긴 해도 유아기적 발상을 상상하는 건 기분좋은 일이긴 하다. 내가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것을 요구하건 다 이루어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