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trimethyl-1H-purine-2,6(3H,7H)-di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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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많이 본 화학식이다 싶었다. 그런데 머리가 불량이 되어가는 나이다 보니 기억이 잘. 그래서 검색했다.(이제 나도 디지털 치매...) 카페인의 화학식. 하긴 오갈데 없는 문과 쪽인 내가 이런 것을 보고 '화학식이 아니던가?'라는 걸 기억해냈다는 것 자체가 모세의 기적 수준이긴 하다만.
그래서 해보는 생각. 오갈데 없는 문과지만 이상하게 공대 친구들이 많았던 관계로 어느 정도 공돌이들의 생리라는 걸 안다. 그중에서 가장 부러웠던 것은 그들의 세밀함이었다. 사소한 하나의 변수까지 생각해야만 하는 착문적 특성이 반영된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내가 보기에 그들은 '넘후나' 세세하고 치밀하며 디테일했다.
그러니까 예를 들면 이런 것들, 난 책을 읽고 나면 중요한 주제만 기억한다. 나머지들은 어지간한 수준의 충격과 공포가 아니면 거의 기억하지 못 한다. 그래서 어떤 주제를 놓고 이야기를 하다가 이야기가 디테일해져서 '인용'이 등장하고 심지어 '각주'나 '참고문헌' 기타등등이 등장하기 시작하면 끌먹은 벙어리, 꿔다놓은 보릿자루가 되기 십상이다. 그런데 어쩌다 공돌이들에게 포위가 된 상황이 벌어지면 어김없이 이런 현상이 벌어진다.
게다가 이런 현상이 그네들의 전공과 관련된 이야기가 등장할 때만 그런 것도 아니다. 심지어 한때 온 나라의 덕후들에게 하나의 관심사로 추앙받았던 에반게리온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올 때도 그랬다. 내 주변 공돌이 덕후들은 에반게리온을 거의 파이브스타스토리의 연대기수준으로 만들어 놓고 이야기에 꽃을 피웠고 난 뭐 그냥 옆에서 조용히 커피빨고 있었더랬다.
아마도 그런 경험들이 누적되어 얼마 살진 않았지만(40년이 넘었는데...) 그 와중에서 가장 후회되는 일들을 고르라면 늘상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어린 나이에 산수를 포기해버린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산수를 포기하지 않았으면 공돌이가 되었을 것이란 이야기는 아니다. 그냥 산수를 포기하지 않았더라면 좀 더 치밀하고 디테일한 것에 주의 집중할 수 있는 인간이 되지 않았을까 싶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