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저 현상.
엔화 약세가 계속되는 추세다. 많은 이들이 그로 인한 가격 경쟁력 약화, 그리고 불안한 수출 전망, 경제 사정 악화를 걱정한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는 지나치게 단순화된 측면이 크다. 엔저 현상은 일본 상품의 가격 경쟁력을 높이는 분명한 효과가 있다. 즉 예전엔 1달러로 일본 제품을 하나 살 수 있었지만 엔화 가치가 하락하면 같은 1달러로 그보다 많은 일본 제품을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달러화로 환산했을 경우 가격경쟁력이 높아진다는 의미다.
그때문에 해외 시장에서 일본 제품과 직접적으로 경쟁을 벌이고 있는 한국 제품들이 타격을 입을 것이고 수출에 장애가 될 것이며 기업 수익이 악화됨에 따라 경제가 전반적으로 하락할 것이란 우려인 셈이다. 그런데 이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일단 기본적으로 엔저 현상으로 인해 타격을 입을만한 산업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누구나 알다시피 자동차 산업은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 해외시장에서 일본과 직접적으로 경쟁을 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다른 산업들도 그럴까?
예를 들어 삼성전자를 보자. 휴대폰과 D램, 플래시 메모리같은 반도체, LCD부터 LED에 이르는 액정이 주력 업종이며 거기에 TV같은 백색가전이 추가된다. 이 산업 분야들중 일본과 경쟁하는 분야가 어떤게 있을까? 일단 잘 알려진 것처럼 휴대폰은 제외다. 그리고 반도체와 액정 산업 역시 어느 정도 열외라고 봐야 한다. 늘 그렇지만 반도체와 액정은 규모의 경제가 지배하는 분야고 그 규모의 경제에 의거하자면 일본의 반도체나 액정 산업은 한국 기업들을 따라오기 힘들다는 것이 현재의 평가다. 게다가 부수적인 분야인 TV같은 백색 가전의 경우도 상당한 기술 경쟁력을 갖추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그런 부수적인 분야를 제외하더라도 이미 주력업종에선 일본과 직접적인 경쟁자체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수많은 산업 분야들을 모두 고려하는 것이 정상이겠지만 그건 전문적인 작업인 관계로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데 난 그런 시간과 노력을 기울일 의사가 별로 없다. 다만 지금 상황에서 유추가능한 분야들을 보면 자동차는 문제가 될 가능성이 있지만 휴대폰은 그럴 우려가 전혀 없고 반도체 역시 문제가 될 가능성을 그리 크지 않다. 그렇다면 엔저 현상으로 인해 우리 기업들이 타격을 받고 그로 인해 국내 경제까지 문제가 발생할 것이란 견해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지나치게 단순화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내가 고려의 대상에 넣지 않은 다른 산업분야들이 큰 타격을 입을 것이고 그 산업들이 국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다면 우려의 여지는 충분하다만 이미 재벌위주로 모든 경제가 재편된 상황에서 그럴 가능성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다.
그렇다고 문제가 아니라는 건 아니다. 엔저 현상이 벌어지는 원인이 일본의 경제에 대한 평가가 낮아져서 그런 것이라기 보다는 인위적인 경기부양책의 결과에 의한 것이라는 점이다. 물론 그동안 일본 경제가 보여준 모습에 비해서 엔화가 지나치게 고평가되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일본의 잘못인 건 아니다. 다른 나라들의 경제 상황이 워낙 안좋았기 때문에, 그러니까 미국의 경제위기는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인데 거기에 유로화의 탓도 크다. 만약 과거처럼 유로존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프랑스나 독일의 화폐가 안전자산 역할을 해주었을 테지만 그건 현재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그리스에서 촉발된 유로존과 유로화의 불안정성탓에 안전자산으로서의 역할을 못 했고 덕택에 일본의 엔화가치가 고평가된 측면이 크다.
즉 미국이나 유로존의 경제 상황이 나아져서 안전자산으로서의 일본 엔화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져서 엔화 가치가 하락하는 것이라면 큰 문제가 아니다. 어차피 엔화가 그런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 자체가 그다지 어울리는 일이 아니기도 했지만 더 문제는 아베정권이 들어선 이후 이른바 양적 완화, 즉 돈을 풀어서 경기를 살리겠다는 시도때문에 벌어진 측면이다. 문제는 그런 시도가 성공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아베나 죄박이처럼 극우주의 정권이 벌이는 이런 양적 완화 정책의 주된 측면은 주로 기업 지원이나 토건 공사에 집중되는 것이 보통이다.(남한 극우 파시스트들이 좌빨이라고 욕하는 남미의 좌파정권들도 비슷한 정책들을 취하지만 그 정책들이 주로 빈민층에 대한 지원에 집중되는 모습이 강하다는 점은 정책적으로도 분명한 차이고 경제적으로도 상당한 차이를 만든다) 그러면서 트리클 다운 효과를 들먹이는데 알다시피 그런 효과는 일어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화폐 유통량은 늘어나는데 경제는 살아나지 않고 그저 불안정한 화폐유동성만 늘어난다. 그리고 이렇게 늘어난 유동성은 투자처를 찾아 떠돌면서 경제에 거품을 만들게 마련이다.
물론 이미 이런 현상으로 인해 심각한 경제적 문제를 겪은 일본이 같은 실수를 반복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현 아베 정권이 역사를 거꾸로 돌리는 극우 파시스트 정권이라는 점이다. 이미 우리도 죄박이를 통해 경험했지만 이런 극우 파시스트 정권의 특징은 자신들의 잘못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때문에 똑같은 문제가 반복될 가능성도 충분하다. 그리고 만약 일본에서 그런 일이 반복된다면 우리도 그 여파를 받게 될 것이란 점이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인 반일감정으로 인해 표면적으로 우리는 일본과 모든 면에서 경쟁관계에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있지만 실상은 많은 부분에서 일본과 상당히 밀접한 관계에 있는 것이 현실이다. 경제역시 마찬가지고. 때문에 일본 경제의 붕괴나 불황은 우리에게도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더 크다.
엔저현상으로 인해 우리 기업들기 어려움을 겪고 그것이 경제에 악영향을 줄 것이란 예측에 대해선 사실 그리 동의하는 편이 아니지만 일본의 엔저 현상으로 인해 다른 차원의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