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츄어리즘

빌리 빈과 히어로즈.

The Skeptic 2013. 5. 29. 00:36

'세이버 매트리션'이란 게 있다. 단순하게 말하면 통계를 통해 야구경기를 보는 이들이라고 보면 무난하다. 그리고 이들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야구를 분석하는 도구 역시 혁신적으로 발전했다. 그들이 만들어 낸 분석도구들은 너무나 많고 광범위해서 일일이 소개하기조차 어렵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산수에 무척 취약한 사람인 탓에 그들의 분석도구들에 대한 개념은 이해하는 반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수치화되는지는 이해할 수 없다는 점 때문이란 건 고백한다. 


아무튼 그들이 소개한 대표적인 수치중의 하나가 바로 OPS다. 출루률과 장타율을 합친 기록을 말한다. 이게 중요한 기록으로 대두된 이유는 고전적인 의미의 공격지표인 타율에 비해 좀 더 직접적으로 득점에 관여한 수치라는 점 때문이다. 이외에도 어떤 구장이 공격이나 수비면에서 다른 구장들에 비해 얼마나 더 유리한가를 따지는 파크 팩터란 기록도 있고 WHIP, RC 등등 많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이들 세이버 매트리션들에 의해 제안된 이 분석도구들이 전통적인 의미의 통계들을 무시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통적인 통계들을 보완하기 위한 역할이 크다는 점이다. 


즉 세이버 매트리션들의 분석도구들은  전통적인 통계들이 알려주는 사실들과 함께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고 그 덕에 선수들과 야구 경기를 좀 더 즐겁게 즐길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이야기거리가 풍부해지면 당연히 재미도 늘어나니까. 그런데 간혹 이런 관계를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아래 기사를 보자. 


<2000년대 초반 메이저리그 20연승의 대기록을 달성한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실화를 그려낸 영화 < 머니볼 > 의 빌리 빈 단장은 "야구에서 가장 중요한 건 출루율"이라고 말한다. 홈런은 멋있고 안타는 짜릿하지만, 홈런과 안타가 아니더라도 야구는 1루에 출루할 수 있는 많은 방법을 가지고 있다. 빌리 빈은 값비싼 슈퍼스타보다는, OPS(출루율+장타율)가 좋은 선수들을 끌어모았다. 홈런을 때리는 1명의 스타보다, 경기 내내 한 베이스라도 더 갈 수 있는 9명의 선수로 팀을 꾸린 것이다. 빌리 빈의 실험은 성공했고 메이저리그 최약체 팀이라 평가받았던 오클랜드는 2000년대 초반 네 번이나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일단 기사의 내용과는 달리 OPS가 좋은 선수는 늘 값비싼 슈퍼스타였다. OPS란 개념이 다소 뒤늦게 나온 통계이고 과거의 기준에서 보자면 닥치고 홈런아니면 삼진인 선수들이 전통적인 강타자요 슈퍼스타란 생각을 갖을 수 있다. 그러나 미안하게도 그런 선수는 극히 드물다. 타율 2할 초반에 한 시즌 200삼진은 식은 죽 먹기인데 홈런은 40개쯤 날려주는 타자. 제 정신박힌 프론트라면 선수단 상황에 따라 한 명정도 데리고 있을 수는 있지만 그 이상은 생각조차 하기 힘들다.(물론 이 경우에도 가장 중요한 건 홈런 숫자가 아니라 타점이다. 홈런 30~40개정도 날리는데 타점이 100타점이 안 된다면 어떤 구단도 데리고 있고 싶어하지 않을 거다)


출루율이 높다는 것은 득점과 연결될 확률이 높다는 의미고 장타율이 높다는 것은 타점을 올릴 확률이 높다는 의미다. 타자로서 이보다 더 좋은 능력을 보여주긴 힘든다. 당연히 OPS가 높다는 것은 타자로서의 가치가 매우 높다는 의미고 이런 타자들은 늘 값비싼 슈퍼스타일 수밖에 없다. 


'빌리빈이 출루율을 강조했다'고 한 대목에서 갑작스레 'OPS가 좋은 선수를 끌어모았다'라고 변하는 지점도 이상하다. OPS에 출루율이 포함되긴 하지만 출루율과 OPS는 상당히 다른 개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출루율과 장타율이란 서로 어울리기 힘든 조합이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생각해보자. 1번 타순의 미덕은 출루율이다. 스즈끼 이치로처럼 대충 배트에 맞아도 빠른 발로 내야안타를 만들어 내는 유형의 타자가 1번에 걸맞는다. 그러니까 한 시즌에 안타를 200개쯤 때려내고 도루를 적어도 40개쯤 성공시키는 선수에게 홈런까지 30개넘게 치라고 요구하진 않는다는 것이다. 반면 팀내 4번타자에게 내야안타치고 출루하는 것을 요구하는 사람 역시 없다. 즉 일반적으로 출루율이 좋은 선수가 장타율까지 좋은 경우는 드물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그래서 OPS가 좋은 선수는 늘 값비싼 슈퍼스타일 수밖에 없는 거다. 


기사가 다소 산만하게 쓰이는 바람에 많은 부분이 착각을 일으키게 만들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빌리빈이나 세이버 매트리션들이 가장 강조한 것은 '출루율'이지 OPS가 아니다. 장타율은 플러스 알파를 노리는 부수적인 항목이다. 


<넥센의 전신인 우리 히어로즈가 구단 운영을 위해 선수 장사를 해온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현대 왕조의 전리품으로 물려받은 선수층은 두꺼웠고, 자금난을 겪던 우리 히어로즈와 다른 팀 간의 검은 거래가 시작되면서, 히어로즈는 장원삼·이택근·정성훈·이현승·송신영·황재균·고원준 등 핵심 선수들을 팔아대기 시작했다. 정황상 현금이 오고 갔을 거라는 추측이 난무했으나 이장석 단장은 언제나 트레이드의 외형을 갖추며 떠난 선수들에 대한 최소한의 대체재를 수혈해두었다. 그리고 고용불안에 시달리며 남아 있던 선수들과, 현금과 함께 교환돼 히어로즈로 넘어온 '원플러스원' 선수들의 반란이 시작되었다.>


이 부분도 조금 지적할 필요가 있다. 기사의 내용상으로 보면 히어로즈의 선수장사를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단지 그런 부정적인 일을 하는 와중에서도 기본적인 전력 보충은 했다고 변호하는 식이다. 그런데 뒤이어 기사는 빌리빈을 둥장시키고 머니볼을 거론한다. 이건 이상하다. 머니볼에 의하면 선수는 가장 비싼 값을 받을 수 있을 때 팔아야 한다. 즉 오클랜드처럼 스몰마켓을 시장으로 하는 가난한 구단은 선수장사를 통해 구단을 운영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긍정한다. 그래서 선수의 가치가 최고조에 이르렀을때 파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그 거래를 통해 다시 유망주들을 끌어 모아 쓸만한 선수로 만드는 것이다. 빌리빈의 주장에 따르면 선수장사를 부정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다. 


히어로즈의 상승세가 남다르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때문에 그 원인에 대해 궁금한 것도 당연하다. 그렇지만 이런 식으로 풀어쓰는 건 분명 이상한 일이다. 빌리빈식으로 말하자면 히어로즈의 선수장사는 비난받을 일이 아니라 가난한 구단에서 당연히 사용할 수 밖에 없는 운영기법이다.(물론 미국과 비교해서 구단 숫자가 매우 적은 우리 나라에서 이런 식의 운영기법이 적절한가에 대한 논란은 여전하고 나도 회의적이긴 하다. 그래도 빌리빈 식의 선수장사는 그나마 괜찮다고 보는 편이다. 그러나 마이애미 말린스(플로리다 말린스가 머리에 박혀버려서 아직도 이 명칭은 어색하다)처럼 월드시리즈 우승 한번하면 선수 대바겐세일을 하는 경우는 최악이라고 본다)


자금력이 풍부해서 즉시전력감의 선수들을 수시로 충원할 수 있는 팀에서 유망주가 자리를 잡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선수들에겐 오히려 가난한 약체 팀일수록 두각을 나타내기 쉽다. 유망주들에게 필요한 건 꾸준한 출장 기회이기 때문이다. 히어로즈는 그런 선수들에게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었고 이런 노력들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이 올 시즌인 셈이다. 물론 시즌 막판까지 가봐야 성공인지 미완인지 판가름날테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