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츄어리즘

그럴 때가 있다.

The Skeptic 2013. 5. 31. 23:45

살다 보면 그럴 때가 있다. 무언가를 혹은 어떤 상황을 봤는데 딱히 설명을 듣지 않더라도 그게 어떤 건지 혹은 어떤 상황인지 한 눈에 이해가 되는 경우. 뭐 그렇다고 그게 누구한테나 일어나는 평범한 일이란 건 아니다. 자주 하는 말이지만 인간의 능력이란 건 대부분 후천적인 노력(그게 노력이란 걸 알고 하든 모르고 하든 상관없이)에 의해 발견, 발달하는 법이다. 이것도 마찬가지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두 눈뜨고 봐도 전혀 이해하지 못 하는 것이 대부분이고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중 대다수는 이해가 아닌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 대부분은 이런 능력을 갖고 있다. 단 자기가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에 대해서만, 굳이 큰 노력을 기울인 것 같지 않은데도 이해할 능력이 생기는 경우가 바로 이런 경우다. 그러니까 내가 응원하는 어느 프로야구팀이 시즌 전 예상보다도 빠르게 위기가 닥쳤고 그 상황에서 전혀 해법을 찾지 못한 채 바닥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데 그 상황에 대해서 차마 뭐라고 말을 하기 힘든 상황같은 거다. 굳이 설명을 듣지 않아도 왜 그러는지 이해가 되는 상황. 


그런데 문제는 그런 상황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는 흔치 않다는 점이다. 설명을 듣지 않아도 누구나 알 수 있을 정도의 문제점. 사실 세상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중 이렇게 무시무시한 것도 없다. 누구나 다 문제라는 걸 알고 그 문제가 왜 발생하는지도 아는데 도대체 해결이 안 된다는 말이니까. 이런 경우는 두 가지다. 누구나 다 답을 알고 있는데 어떤 이유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아무도 혹은 다수가  그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없는 경우거나 문제가 있고 원인도 아는데 답이 없는 경우거나. 


물론 이 두 가지중 하나는 거짓이다. 후자다. 문제을 알고 원인을 아는데 답이 없는 경우는 없다. 문제를 알고 원인을 알고 답도 아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해결을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을 '답이 없다'라고 합리화한다는 것이 더 정확한 설명이다. 


다시 프로야구 이야기를 해보자면 문제를 알고 원인도 알고 답도 안다. 그래서 대충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하는 답은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라는 것이다. 다분히 설득력이 있는 답안이다. 그런데 이제 그 시간이 닥쳐오고 있다. 누구나 알고 정답이라고 인정하는 답안이 문제 해결에 대입될 시기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누구나 알고 있는 그 답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 한다면? 미안한데 그 땐 사실 이해의 여지가 사라질 수 밖에 없고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게 되는 상황이 벌어질 거다. 


사실 이건 불합리하다. 누구나 아는 답이라고 해서 그것이 정답인 것은 아니지 않은가? 누차 말하지만 진실이란 많은 사람들이 믿는 어떤 것에 불과한 경우가 허다하다. 물론 많은 이가 믿는다는 건 진실일 확률이 매우 높다는 점은 동의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 믿음이 어떤 의심과 검증을 거쳐 믿음이 되었는지 모르는 경우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진실을 입에 담지만 그 수많은 진실들의 근거까지 아는 건 아니다. 그냥 진실은 진실이지 진실이 어떤 다른 증거가 필요하느냐는 식이다. 그런데 알다시피 세상에 그런 식으로 저 혼자 완전무결한 상태로 존재하는 건 단 하나도 없다. 


그래서 아무튼 불합리하다는 거다. 그런데 세상은 또 알다시피 진실 혹은 사실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이다. 같은 사랑타령을 하지만 누군가는 그 사랑의 이름으로 평생을 서로 믿고 살아가지만 누군가는 완전무결한 존재의 이름으로 사랑을 말하면서도 자신들과 다른 사랑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취급조차 하지 않는 것이 이 비루먹을 세상이다. 완전무결한 존재가 자신이 정한 법칙에서 조금 어긋난 짓을 했다고 불벼락을 내리는 새끼사랑하는 어미만도 못한 짓거리를 한다는 게 웃기는 소리지만 말이다. 물론 제 자식 잘 되라고 매를 든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인정한다. 그런데 매를 드는 것과 인격을 모독하는 건 다른 이야기다. 인격모독을 통해 교육이 이루어진다는 말은 그 교육이란게 연쇄살인범이나 사이코패스를 양산하기 위한 교육인 경우밖에 없다.  


아무튼 세상은 불합리하다는 거다. 대다수가 아는 답도 옳은 답이 아닐 확률은 충분하고도 넘치지지만 대부분이 믿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 답은 무조건 정답이 되어야만 하는 기구한 운명에 휩싸이는 것이고 막장 드라마의 법칙에 따라 누군가는 그 근거없는 책임을 질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 그렇게 사람들은 만족할 거다. 우습게도 그 희생의 결과가 어떤가와는 상관없이 단지 그 희생 자체에 만족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또 한번 세상은 불합리해지는 거다. 문제가 있고 답, 많은 이들이 정답이라고 믿는 바로 그 답도 있다. 그래서 그 답을 문제에 대입했는데 문제가 해결이 안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번엔 그 답을 답이라고 말한 이들에게 책임을 지라고 말하고 또 그런 일이 벌어지고 많은 이들이 만족해 할 것이다. 이 일련의 과정은 아무런 문제도 없는 것 같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아직 문제가 해결된 게 아니다>


그렇게 세상은 또 한 번 불합리해지는 거다. 희생까지 치루었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단지 희생양을 만들었다는 자체로 만족한다. 사실 그 정도 했으면 애초에 답이란 것이 답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을 할 법도 한데 말이다. 


약속의 6월이 다가오고 있다. 난 그 답이 정답이 아닐 확률도 크다고 보지만 일반적으론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거다. 결국 답이 맞지 않는다면 많은 이들의 실망을 견뎌내야 하는 시간이 올 것이란 의미다. 그렇다고 내가 이 일련의 과정들이 모두 부당하다는 말을 하려는 건 아니다. 단지 그 일련의 과정을 통해 문제가 해결될 것인가 하는 점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모든 과정을 다 치뤘는데도 문제를 해결하지 못 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