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츄어리즘

해외파와 국내파간의 위화감.

The Skeptic 2013. 6. 19. 02:07

언젠가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골을 넣기에 가장 좋은 위치가 어디일까?' 답은 당연히 골대 바로 앞 쪽이다. 즉 상대방의 중앙을 공략하는 것이 가장 좋은 득점 공식이란 거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마구잡이로 크로스를 올리고 키가 크고 피지컬이 좋은 선수들의 헤딩슛 한 방이나 흘러나온 볼을 주워먹는 방식이든 짧고 빠른 패스로 수비진을 흐트러트린 다음 슈팅으로 마무리짓는 방식이든 득점에 성공하는 것은 마찬가지란 이야기도 했었다. 


그런데 오늘 경기는 그 어느 것도 만족스럽지 못 했다. 전반전에 기용된 공격수의 면면을 보자. 김신욱, 이동국, 지동원, 손흥민. 다들 헤딩슛 한 방이 있는 선수들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크로스는 많이 올라가지 않았다. 크로스 자체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슈팅을 위한 크로스가 아니라 단순히 김신욱이 공을 떨어뜨리면 주워먹는 패턴을 노린 크로스가 대부분이었다. 


문제는 왜 그런 유형의 크로스가 올라간 것인지에 대해서 묻는 경우 답변이 꽤 애매해진다는 점이다. 그걸 노린 것이라고 보기엔 타깃형 스트라이커가 떨어뜨린 볼을 슈팅으로 연결하기 위한 2선 공격수들의 움직임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만약 그걸 노린 게 아닌 크로스라면, 그러니까 헤딩슛이 1차적인 목적이고 그것이 실패한 경우 2선에서 재차 점유하며 슈팅하거나 다시 공격작업을 펼치는 것이 목적이라면 크로스 자체가 부정확하고 안이했다. 난 후자라고 보는 편이다. 


개인적인 평가를 하자면 비록 그다지 정확도는 없었지만 전반전이 후반전보다 나았다고 본다. 수비를 강화한 상대를 대상으로 높이를 활용한 전술은 꽤 효과적이었으며 루즈볼에 대한 점유도 꽤 좋았고 덕택에 별다른 위기상황없이 안정적인 경기를 선보였다. 후반전 중반 한 골을 허용한 이후 이루어진 공세 역시 괜찮았다고 볼 수 있지만 그건 단지 우리 시각일 뿐이다. 


이 경우를 반대로 이란의 경우에서 보자. 강팀을 상대하는 약팀의 전술이란 면에서 보자면 운좋게 선제골을 성공시켰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당연히 상대방의 공세가 더욱 거세질 것이고 필사적으로 막아내야만 한다. 이 정도는 충분히 예상가능한 일이고 예상가능하기에 대처도 가능하다. 어차피 이기면 좋지만 비기기만 해도 감사한 것인 약팀의 목적이고 이란 역시 이번 경기는 비기기만 해도 괜찮은 결과였으니까. 


우리가 보기엔 공세지만 이란이 보기엔 그저 선제골 이후의 당연한 반응이고 충분히 예상가능하며 대처 가능한 상황일 뿐이다. 즉 그 공세를 통해서 골을 성공시켰다면 모르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오히려 이란의 대응이 더 침착하고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하는 것이 도 옳은 것이다. 


어쨌거나 왜 경기는 그렇게 답답하게 흘러간 것일까? 개인적으로 아주 단순한 이유라고 본다. 선수들간의 호흡이 안 맞았다. 흔히 말하는 단순한 호흡의 문제, 즉 약속된 패스나 공격이 잘 안 이루어졌다는 식의 문제가 아니라 좀 더 근본적인 호흡의 문제라고 본다. 그러니까 어떤 식으로 경기를 풀어갈 것인가에 대한 목적 자체가 안 맞는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 단적인 예가 바로 경기 내내 별다른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 했던 손흥민과 지동원이다. 


손흥민은 경기 내내 측면에서 중앙 쪽으로 파고들며 패스를 요구했고 지동원은 수비수들과 동일선상에 서있다가 수비진 뒷 공간으로 침투 패스를 요구했다. 익히 잘 알려진 공격방법이고 또한 효과적이기도 하다. 그런데 정작 그런 공격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대부분의 공은 중앙이나 후방에서 돌다가 중앙의 김신욱과 이동국을 향해서, 그것도 부정확하게 올라가기 일쑤였다. 그리고 상대팀 진영으로 많이 침투해서 올라가는 크로스가 어중간한 위치에서 올리는 크로스보다 훨씬 더 위협적이란 건 주지의 사실인데 그걸 위해 반드시 필요한 측면에서의 유기적인 패스나 돌파 역시 거의 볼 수 없었다. 


당연히 손흥민과 지동원은 별다른 모습을 보여주지 못 했다. 만약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한 이청용이 측면에 구자철이 중앙에 섰다면 이 두 선수와 손흥민, 지동원의 호흡이 더 좋아지고 좀 더 파괴력있는 공격장면들이 등장하고 결과도 달라졌을까? 단순하게 생각하면 그렇다라는 답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축구경기가 팀플레이인 이상 단순히 해외파인 이청용이 측면에 들어선다고 해서 측면 공격이 더 활발해진다는 보장은 없다. 이청용과 호흡을 맞출 선수가 그런 공격방식에 익숙하지 않다면 이청용은 그저 측면에서 고립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오늘 경기를 토대로 하자면 그렇게 될 가능성도 크다. 즉 난 해외파 선수들과 국내파 선수들간의 위화감같은 게 있는 것처럼 느꼈다. 


재미있는 점은 팀 플레이가 강조되는 스포츠 경기의 경우 팀원들간의 수준차가 있는 경우 팀 전체의 전력이 상향평준화되기 보다는 하향평준화되는 경향이 크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내가 국내파 선수들과 해외파 선수들간의 실력 차이를 지적하려는 건 아니다. 내가 지적하고 싶은 건 자신감에 대한 이야기다. 충분히 시도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공격방법인데도 단지 자신감이 없어서 시도하지 않는다면 당연히 전력은 하향평준화될 수 밖에 없다. 이번 월드컵 예선전 내내 내가 우리 대표팀 경기를 보면서 국내파와 해외파 사이에 이질감이 존재한다고 느낄 수 밖에 없었던 이유다. 


일본 역시 최근 들어 해외에 진출한 선수들은 많아지는데 국가대표팀의 전력은 오히려 떨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닌가 싶다. 선수 개개인을 보면 예전보다 확실히 나아졌는데 경기를 풀어가는 방식을 공유하는 선수들의 숫자는 더 줄어들었다면 팀플레이가 원할하게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고 팀 전체의 전력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이 문제에 대한 답은 사실 하나다. 오랫동안 함께 훈련하면 된다. 하지만 알다시피 그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우리 대표팀만 해도 상당수의 주전들이 해외에 진출해 있기 때문에 많은 시간을 대표팀 훈련에 할애하기란 쉽지 않다. 결국 이런 상황에서 더 중요해진 것은 바로 감독을 비롯한 코치진의 역할이다. 


최강희 감독이 이번 경기를 끝으로 대표팀 감독에서 사임했단다. 벌써부터 차기 감독에 대한 예측이 나오고 있지만 누가 되든 대표팀에 명확한 목표와 색깔을 입혀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것이 바로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는 금언을 현실로 만들어주는 일일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