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력 부족.
사람은 듣고 싶은 말만 듣는다고 했다. 이건 단순히 속담수준의 말이 아니다. 이미 주류 경제학에서도 학문을 위한 방법론의 하나로 인정하고 있으며 요즘 꽤나 인기를 끄는 이른바 '행동경제학'이 바로 이런 인식틀에 기반을 두고 있다. 예전에도 말했지만 주류 경제학이나 경영학이 범한 가장 큰 실수는 인간을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는 이성적인 존재'라고 가정한 데 있다. 불행한 사실은 이게 단순히 주류 경제학이나 경영학만 저지른 실수가 아니란 거다. 근대에 이르러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다는 수많은 사회과학 분야들이 모두 저지른 실수기도 하다.
바로 이런 너무나도 당연한 오류때문에 탈근대, 포스트 모더니즘이 발생한 거다. 물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포스트 모더니즘이 고작 미술분야의 새로운 조류인 양 떠들고 그게 고상한 교양쯤 되는 것처럼 행세하지만 그건 그냥 무식한 거다. 미술분야 전공자들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고작 미술 분야의 한 조류가 새로운 시대를 선도한 적은 없었다. 미술 분야에 새로운 조류가 나타나는 건 이미 사회가 특정한 변화를 보이고 난 이후다.
아무튼 그렇다. 사람은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그건 뭐라할 일이 아니다. 인간이 원래 그런 존재인 걸 어쩌겠나? 듣기 싫은 말도 귀담아 듣고 그걸 반면 거울삼아 반성하고 발전하는 인간은 극소수다. 철학이란 학문이 발생한 이래 수많은 저명한 철학자들이 그런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했지만 실제로 그런 삶을 산 사람은 극소수다. 대부분은 그냥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살아왔고 그렇게 살고 있다. 그런 행위로 인해 처하게 될 수많은 곤란한 상황들 역시 스스로 알아서 하면 된다. 그것만 잘 할 수 있으면 문제될 것 없다. 물론 그런 인간들도 무척 드물지만.
그래도 괜찮다. 어차피 대부분 그렇게 사니까. 문제는 듣고 싶은 것만 듣는게 아니라 듣고 싶은 것을 듣기 위해 사실을 호도하는 경우다. 이치로라고 있다. 일본 출신이고 뉴욕 양키스 소속 야구 선수이며 메이저 리그에서 한 시즌 최다안타 기록을 가지고 있고 10년 연속 3할 이상 200안타, 10년 연속 골든 글러브, 10년 연속 올스타 선정, 역대 최소경기 2,000안타 기록 등등 메이저 리그에서도 거의 레전드급에 들어가는 선수다. 심지어 최근 몇 년동안 부진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현역 선수중 통산 타율 2위다.
그런 선수가 화제가 된 건 이번에 양키스와 다저스가 양키스 홈에서 경기를 펼쳤는데 류현진이 선발등판했고 이치로 역시 선발 출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쓰레기같은 스포츠 기자들이 케케묵은 한-일전이란 구도를 만들기 딱 좋은 상황이었던 셈이다. 결과는? 류현진은 6이닝 3실점이란 꽤 좋은 성적을 냈지만 불펜진의 부진으로 패전투수가 되었고 이치로는 3안타에 홈런까지 날리며 활약했다.
문제는 경기가 끝난 후 기자 인터뷰에서 이치로가 류현진과의 대결에서 '눈을 감고 쳤다'는 말을 한 것에서 비롯된다. 애시당초 이런 류의 대굘 구도를 만들어 내는 것 자체를 짜증스럽게 생각하지만 어쩌겠는가? 남한에선 이런 류의 마케팅, 그러니까 일본 극우 애들이 주로 하는 애국심 마케팅이 일본만큼이나 잘 먹힌다. 그러니 기자들도 그런 짓거리를 해대는 거다. 그런데 과연 '눈을 감고 휘둘렀다'는 말이 그런 의미일까?
이런 류의 인터뷰 내용들은 과거에도 종종 있었다. 그런데 대체로 이런 류의 발언은 '눈감고 쳐도 잘 칠 수 있다'는 의미이기 보다는 '어쩌다 보니 잘 맞았다'는 의미다. 물론 발언 당사자가 애시당초 인간 쓰레기 수준에 가까운 사람이라면 전자의 의미일 수도 있지만 다행스럽게도 세상엔 그렇게 나쁜 놈은 그렇게 많지 않다. 게다가 언론 인터뷰는 기사화, 즉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다는 것을 전제한다는 걸 알면 설령 버르장머리라곤 없는 넘이라고 해도 대놓고 그렇게 말하긴 쉽지 않다.
그런데 남한 쓰레기같은 일부 언론사와 기자들은 이걸 마치 전자의 의미인 양 떠들었다. 이 정도면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수준이 아니라 듣고 싶은 걸 듣기 위해 사실을 호도하는 수준이고 이해력이란 게 아예 없는 수준이다. 자주 느끼는 건데 도대체 이런 기사를 쓸 정도로 이해력이 떨어지는 것들이 어떻게 기자질을 하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