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iracism

여성의 지위는 향상되었나?

The Skeptic 2013. 7. 27. 04:51

어느 단체의 대표가 예고투신을 감행해서 또 화제다. 실제로 투신했고 아직 생사여부가 확인되지 않았다. 예고투신을 한 이유는 그 자신이 이끄는 단체의 재정난때문이란다. 그러니까 재정난 해소를 위한 홍보의 수단으로 투신을 선택한 것이다. 당연히 나로선 그런 발상이 이해가 되질 않는다. 게다가 애시당초 그 단체의 시각이나 주장들중 대부분에 대해서 공감하지 못 하는 남자로서 그가 무슨 행위를 하든 별 관심은 없다. 난 차라리 그 시간에 살기 위해 철탑에 올라가고 단식을 하는 노동자들을 신경쓰고 싶다. 


아무튼 그 덕에 문득 생각해보는 질문 하나. '과연 남한에서 여성의 지위는 향상되었나?' 이런 이야기는 늘 기준이 중요하다. 한참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가만 보니 상대가 조선시대를 기준으로 삼고 있다면 참으로 뜨악한 심정이 된다. 불행한 건 아직도 그걸 기준으로 삼는 인간들도 많다. 여기서 굳이 '인간들'이라고 칭하는 것은 그런 이들이 남자만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나이든 여자들만 그런 것도 아니다. 자칭 일베회원이라는 어린 여자도 그런 생각을 갖고 있더라. 


아무튼 이 질문에 대한 재미있는 사례 하나. 어떤 젊은 남자가 그런 말을 하더라. 자기는 남자와 여자가 차이가 있다는 걸 인정한다. 그렇다고 그것이 차별의 기준이 되는 걸 원하는 건 아니다. 단지 그 차별에 근거하여 역할을 분담하자는 것이다. 여자는 군대가지 말고 대신에 군가산점제는 인정해달라. 생리휴가니 출산휴가니 하는 걸로 회사생활에 연속성을 갖기 힘든 여자는 가사에 집중하고 남자들은 경제 활동에 전념하자는 식이다. 우스운 건 이런 주장이 남성들만 아니라 꽤 많은 여자들에게도 호응을 얻더라는 것이다. 특히 젊은 여자들도 이 말에 현혹되는 경우가 많다. 


제법 나름 쿨한 척 하지만 이 젊은 남성의 주장은 그 자체로 굉장히 차별적이다. 간단한 질문을 해보자. '인간의 인권은 무엇을 통해 보장되는가?' 꽤 많은 이들이 이 질문에 대해 매우 고차원적인 대답을 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게 잘못되었다는 건 아니다. 단지 그 고차원적인 정의를 뒷받침할 수 있는 지극히 현실적인 명제들이 필요하다는 거다. 그 시작은 바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으로부터 출발한다. 


우린 자본주의 사회 산다. 특히 요즘은 '돈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는 그야말로 물질만능의 시대에 살고 있다. 아이디 시골의사를 쓰는 박경철 의사가 날카롭게 지적한 것처럼 '돈이 일정 수준 이하가 되면 모든 비극의 씨앗이 되지만 일정 수준이상이 되면 돈이 행복의 조건이 되지도 않는다'라고 말 자체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규정할 수 있는 하나의 시각이다. 그렇다고 굳이 자본주의 시대만 그랬던 것도 아니다. 전자본주의 시대, 봉건제와 신분제가 힘을 발휘하던 시절에도 부는 매우 강력한 힘을 갖고 있었다. 사실 봉건제와 신분제 자체가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는 도구로 작용하기도 했고.


아무튼 그렇다. 돈은 그래서 시대를 막론하고 중요하다. 최소한의 자기 결정권을 갖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그리고 인권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권의 중요한 밑바탕은 바로 '경제적 독립'이다. 경제적으로 독립적이지 못한 사람은 스스로의 행위에 대한 결정권을 갖기 힘들다. 그 의미는 주체적인 인간으로 살기 힘들다는 것이고 개인의 자유를 보장받을 수 없다는 의미다. 경제적 독립이 인권과 연결되는 것이다.(물론 개인의 자유를 위해 얼마만큼의 경제적 독립이 필요한가에 대한 답은 매우 주관적이고 유동적이라 쉽게 계량화할 수 없다는 단점은 남지만 사실 그런 문제는 어디에서나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닥 특별할 것도 없다. 그러니 그런 문제로 시비를 걸진 말기 바란다)


이 시각에서 보자면 앞에서 언급한 젊은 남성의 주장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것인지 금방 알 수 있다. 가사노동도 노동이다. 그러나 그 자체로 경제적 이익이 발생하는 직접적인 경제활동은 아니다. 경제적 독립이란 기준에서 보면 직접 돈을 버는 경제활동에 비해 많이 모자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남자들은 경제활동을 하고 여자들은 가사노동을 하라는 것은 그 자체로 여자들의 경제적 독립을 막는 행위이며 반인권적인 주장이 되는 것이다. 자주 언급하지만 군가산점제 역시 그런 측면에서 반인권적인 제도인 것이다. 군가산점제는 여성들이 경제활동에 참가하는데 직접적인 장애물이기 때문이다. 


신체적 차이에 따른 차이는 분명 존재하지만 그 차이때문에 역할을 분담하자고 주장하는데 그 역할분담이 어느 한 쪽의 자유와 결정권을 심각하게 파괴한다면 이는 명백한 차별행위다. 경우를 잠깐 바꿔보자. 이 논리대로라면 장애인들은 신체적 활동 자체가 매우 힘들고 불리하니 외부 활동 자체를 거의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런데 왜 앞선 남성의 어처구니없는 주장이 많은 이들에게 받아 들여지는 걸까? 심지어 젊은 여성들조차도 말이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역시 다소 고차원적인 이야기들이 많을 것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난 그런 시도를 비판하려는 게 아니고 그 고차원적인 이야기들의 현실성을 말하려는 것이다. 


내가 보기엔 이유는 매우 단순하다. 하나는 젊은 여성들이 아직 여성으로서의 자각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당연하다. 강고한 성인남성위주의 가부장제가 만연한 나라에서 살다보니 그럴 수 밖에 없다. 


"결혼을 하면 남자는 '일을 나눠서 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고 여자는 '일을 함께 할 수 있다'라고 생각한다."


여성들의 특징이자 장점은 바로 이것이다. 역할을 분담해서 빨리 속전속결로 해결하자는 건 그야말로 남성들의 생각이다. 반면 무슨 일이건 다같이 함께 하자는 건 여성들의 생각이다. 방식이 다르니 장단점도 다르지만 분명한 건 두 가지 방식 모두 나름의 가치가 있다는 거다. 그런데 우리는 남성들의 방식만이 옳다라고 가르치는 세상에서 살아왔다. 그러다보니 여성적인 생각을 잘못된 것이라거나 혹은 비효율적인 것이라고 비하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 방식은 도구다. 그리고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당연히 칼이나 톱에게 옳고 그름을 묻지 않는다.(이게 말로 하니 쉽지 그리 쉬운 게 아니다. 이걸 깨달은 게 서른 중후반즈음이었다. 심지어 그걸 안 이후에도 그 준칙에 따른 삶을 살고 있다고 자부하지도 못 한다)


다른 답은 아주 단순하다. 그러나 아주 강력한 이유다. '아직 밥벌이를 해보지 않아서'다.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하고 직장생활을 하며 독립을 위한 준비를 '직접' 해보지 않아서다. 그냥 어설프게 머리로 아는 것과 직접 경험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으니까. 특히 아직 학생 신분인 젊은 여성들이 남성들의 같잖은 궤변에 넘어가는 가장 유력한 이유일 것이다. 반면 강하지만 가장 약한 이유기도 하다. 언제든 누구든 결국 '현실적 밥벌이'에 나서게 될 테니까. 물론 그게 인권의식으로 자동적으로 연결되는 건 아니지만. 


인권을 비롯한 인간의 의식 대부분은 현실에 대한 자각으로부터 시작된다. 이 때 중요한 건 그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할 것인가에 대한 준비가 되어있는가이다. 현실을 안다는 것이 현실의 문제를 자각한다는 것으로 자동적으로 연결되는 게 아니니까. 


아무튼 글제목의 질문에 대한 답을 하자면 이렇다. 한 사회의 구성을 위해 필수적인 사회적 특성이기도 한 여성의 신채적 특성이 전혀 존중받지 못 하고 경제 활동에 대한 제약조건이나 약점정도로 치부당하며 실제로 현실에서 상당한 수준의 경제력 차이로 드러나는 한 여성의 인권은 전혀 향상되지 못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