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의 상인

디플레이션.

The Skeptic 2013. 8. 14. 16:48

여기저기서 '디플레이션'을 경고하고 나섰다. 디플레이션, 단순하게 말하자면 '가격이 하락하는 현상'이다. 일반적인 경우 '물가가 하락하는 현상'이라고 쓰지만 난 '가격'이라고 쓴다. 왜냐면 물가라고 하면 그다지 문제가 될 것 같지 않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반면 가격이 하락한다는 건 물가보다는 좀 더 포괄적으로 받아 들여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물가하면 장바구니 물가가 떠오르지만 가격하면 부동산, 주식같은 것들도 포함된다고 받아들일 확률이 조금 더 높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그런데 사실 어떤 단어를 사용하든 하락한다는 것만 가지곤 역시 그게 무슨 문제냐는 반응을 보이기 쉽다. 맞다.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든 장바구니 물가가 하락하든 그게 문제가 될 이유는 없어 보인다. 이게 문제가 되는 이유는 그런 현상이 아니라 '그런 일이 왜 벌어지는가?'란 지점에서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처럼 가격은 대체로 수요에 따라 움직인다. 수요가 늘면 가격이 오르고 수요가 줄면 가격이 하락한다. 즉 가격이 하락한다는 말은 수요가 줄었다는 말이다. 물론 이런 현상은 그리 특이한 것이 아니라 가격이 오르락 내리락하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니까. 문제는 가격이 점진적으로 계속해서 하락하기 때문이다. 경험상 대부분 알고 있겠지만 물가나 가격은 어떤 식으로든 오르는 것이 일반적이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것은 특별한 현상이다. 


즉 '지속적인, 그리고 장기간에 걸친 가격하락' 현상을 일컬어 디플레이션이라고 하는 것이고 그 긴 시간동안 가격이 하락한다는 것은 수요, 소비가 지속적으로 줄어들었다는 말이고 이 말은 곧 수요, 소비에 사용할 수 있는 돈이 부족하다는 말, 사람들의 벌이가 안 좋아졌다는 의미다. 즉 불황이 오랜 기간동안 지속되고 그 결과 수요가 계속해서 줄어들며 가격 역시 하락한다는 말이다. 이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 디플레이션이다.


그렇다면 모든 디플레이션이 다 문제가 될까? 일반적이고 고전적인 의미의 자본주의 경제학에선 그렇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사실 그렇진 않다. 가장 대표적인 디플레이션 사례인 미국발 대공황은 케인즈주의적 처방에 의해 해결되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디플레이션을 걱정하는 것은 기우일까? 아니 그렇지 않다. 일본이 '잃어버린 20년'이라고 일컫는 사례때문이다. 미국발 대공황이 화폐의 과소공급으로 인해 발생한 것인 반면 일본의 경우는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지금이나 그 때나 일본은 돈이 많다. 시중에 풀린 화폐의 총량이 적어서 발생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인데 불행히도 우리가 그 사례와 많이 닮아 있기 때문에 문제라는 것이다. 


저번에도 말할 바 있지만 케인즈주의는 단순히 화폐량을 늘리는 정책이 아니다. 케인즈주의의 핵심은 화폐량이 아니라 유효수요를 늘리는 것이다. 단지 돈을 시중에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그 돈을 사용하도록 만드는 것, 즉 실질적인 수요를 늘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정의에 따르자면 사실 디플레이션은 케인즈주의적 해법을 통해 얼마든지 해결이 가능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왜 그럴까?


<살아가기 위한 비용이 많이 필요한 사회가 되면 그렇다>


특히 그 비용을 모두 개인의 힘으로 부담해야 하는 경우라면 더 그렇다. 단순한 행동경제학의 사례를 보자. 공중화장실의 칸마다 화장지를 비치하는 것과 외부에 화장지를 비치하는 경우 어느 쪽의 소비가 더 많을까? 답은 후자, 외부에 비치하는 경우다. 사람들은 대부분 습관의 동물이다.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라면 화장실에서 사용하는 화장지의 양은 거의 매번 일정하다. 그런데 화장지가 화장실 칸마다 있는 게 아니라 외부에 있다면 사람들은 불안해진다. 다른 때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볼 일을 치르는 것이라고 해도 '혹시 모자라면 어쩌나? 다시 나와서 가져갈 수도 없는데?'라는 불안감이 화장지의 사용량을 늘리는 것이다. 


같은 의미다. 한 인간이 다른 인간들과 비슷한 삶을 살아가는데 예전보다도 더 많은 비용이 필요하다고 느낀다면 불안할 것이다. 게다가 그 모든 비용을 온전히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이는 결국 소비보다는 축적을 경제활동의 주목적으로 삼도록 만든다. 그렇다고 그 자체만으로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저축이 소비에 비해 '지나치게' 높아지지만 않는다면 나쁠 건 별로 없다. 문제는 그런 경향이 불황, 즉 불안을 촉발시키는 경제적 요인과 마주했을 때다. 


경제가 불황이면 실업이 늘어나고 연봉이 줄어든다. 당연히 소비할 수 있는 소득이 줄어든다. 그렇다고 비용이 많이 드는 사회구조가 쉽게 바뀌는 것도 아니다. 즉 실제로 반드시 필요한 것인지는 명확치 않지만 그런 것처럼 느껴지는 비용은 줄어들지 않았는데 소비할 수 있는 소득이 즐어든다면? 사람들은 어떻게든 소비를 줄이고 축적을 늘리고자 할 것이다. 소비가 줄어드니 당연히 경제활동은 더 위축된다. 경제활동이 위축되면 실업이 늘고 연봉이 줄어든다. 이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게다가 이런 악순환은 축적 부문에서도 문제를 야기한다. 부동산에 투자된 자금의 경우을 보자. 투자가 늘었으니 당연히 부동산 가격은 오른다. 수익이 발생하는 것이다. 반면 동시에 그 주택을 필요로 하는 이들의 입장에선 주택을 구비하기 위한 비용부담이 늘어난다. 즉 누군가에겐 이윤이 남지만 누군가에겐 비용이 늘어나는 것이다. 게다가 주택이 필요한 이들조차도 단지 거주만의 목적으로 주택을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투자의 목적도 동시에 갖고 있다. 전세가격이 집값과 거의 비슷한 수준에 이르렀지만 정작 주택거래는 안 이루어지는 것도 주택을 거주와 투자라는 두 가지 목적에서 바라보는데 투자라는 측면에서 너무 위험성이 높기 때문이다. 


은행같은 금융기관들 역시 난감하기는 마찬가지다. 돈은 넘치는데 경제가 불황이니 돈을 빌려줄 곳이 마땅치 않다. 당연히 이자를 받기도 힘들고 은행의 수익율은 하락할 것이다. 때문에 은행들은 예금주들에게 눞은 이자를 주는 것을 포기한다. 우리처럼 은행들이 국가와 밀접한 관계를 맺는 나라에선 은행들이 나서기 전에 국가에서 저금리 기조를 유도하는 편이다. 일반적이고 고전적인 경제학에선 저금리를 유지하면 소비가 늘어난다고 말하니까. 


그런데 앞서 언급한 것처럼 '비용이 많이 필요한 사회'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소비가 아니라 축적이 목표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사람들은 은행이 아닌 다른 투자처를 찾게 된다. 그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부동산이고 주식이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런 투자가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것도 아니다. 누군가는 살아가는데 많은 비용이 필요한 사회에서 불황으로 인한 실질임금 하락과 부동산 가격 상승과 같은 불이익을 더 감수해야만 한다. 게다가 그 부동산 가격마저도 상승보다는 하락할 가능성이 더 크다면 투자할 엄두를 내기 힘들다. 


결국 돈은 많은데 수요는 사라지고 가격은 떨어지는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 문제를 고전 자본주의 경제학의 입장에서 접근하면 대책이 없다. 자유주의 경제학으로 접근해도 마찬가지다. 디플레이션은 분명 시장이 실패한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이들은 시장에 개입하는 것을 반대하기 때문이다. 대책은 국가의 개입이다. 그것도 단순히 총통화량을 늘리는 식의 무책임한 접근이 아니라 좀 더 적극적으로 실효성있는 유효수요를 창출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복지 정책이 단순히 가난한 자들을 위한 시혜적인 정책이 아니라는 것도 그 때문이다. 복지 정책으로 인한 비용지출은 축적과는 상관없이 대부분 소비로 직결된다. 유효수요를 늘리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인 것이다.


살아가는데 필요한 비용을 줄이는 정책도 반드시 필요하다. 즉 의료나 교육과 같은 분야에서 사적 비용이 증가하는 것을 억제할 필요가 있다. 



P.S.

이런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좌빨이라고 하지 마라. 좌빨들의 주장이라고 하더라도 그런 정책을 도입해서 이 어려운 경제상황을 헤쳐나갈 수 있다면 그게 더 낫지 않겠는가? 뭐 싫다고 해도 할 말은 없다. 싫은 건 싫은 거니까. 빡세게 사는 게 좋다는데야 무슨 말을 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