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츄어리즘

단기전, 성과주의.

The Skeptic 2013. 10. 11. 18:37

단기전에 대한 압박감은 성과에서 비롯한다. 시즌 경기는 무려 128경기다. 물론 그 128경기의 승패가 하나하나 모여서 순위가 결정된다는 점에서 보자면 중요하지 않은 경기는 없다. 그러나 각 경기마다 상대하는 팀, 선발 투수의 로테이션, 부상과 같은 선수 수급 상황 등등에 따라 어떤 식으로든 의도적인 변화, 즉 선택적 집중이 가능하다. 


반면 포스트 시즌같은 단기전은 그런 거 없다. 많으면 7경기, 적으면 3경기안에 결과와 성과가 판가름나게 된다. 여유같은 걸 부릴 상황이 아니다. 특히 그 결과와 성과에 따라 자리보전의 문제가 크게 갈리는 감독이 느끼는 압박감이란 선수단 전체를 통틀어도 최고일 것이다. 그래서 감독들은 단기전에서 실수를 하게 되는 법이다. 


그렇다고 그 실수들이 다른 경기들의 그것과 크게 다른가 하면 사실 그렇지도 않다. 성과를 내기 위해 지나친 변화를 추구하거나 혹은 기존의 방식에 지나치게 의존하던가 둘중의 하나다. 그런데 크게 보자면 이 두 가지가 결국 감독이 선택할 수 있는 작전의 전부란 문제가 나선다. 변화 아니면 안정. 


그렇다면 이 중 어떤 것을 선택하는 것이 좋을까? 큰 틀에서 보자면 난 안정을 추천하는 편이다. 굳이 운동선수들이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익숙한 상황에서 익숙한 일을 하는 것을 가장 편안하게 느낀다. 편안하다는 것은 심리적 압박감이 없다는 의미이며 실수가 줄어들 가능성이 높고 잘 알려진 것처럼 단기전에선 실수를 줄이는 팀이 이길 확률이 높다. 때문에 선발 로테이션이나 타순, 수비위치같은 것들은 기존의 틀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유리하다.


일전에 와이번스의 이만수 감독이 내년 시즌에 김광현을 마무리로 돌릴수도 있다고 한 발언에 대해서 난 반대를 표명했었다. 그 주장과 같은 이유다. 안정성을 없애고 불안정한 요소를 늘리는 것은 옳은 선택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좌익수로 잘 뛰던 김현수를 난데없이 1루에 기용하는 것 역시 그런 차원의 문제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변화가 아주 불리하기만 한 건 아니다. 기본적으로 그런 변화에 대한 대처가 잘 되어있거나 훈련이 되어 있다면 변화를 추구한다고 해서 문제가 야기될 확률은 그리 크지 않다. 그리고 선수가 시즌 경기와 비교해봐도 눈에 띄게 흔들리는 상황이라면 주저없이 바꿔야 한다. 그러니까 폭투를 2개씩 던지는 투수를 계속해서 마운드위에 남겨두는 건 할 짓이 아니란 거다. 우습지만 전자의 경우, 그러니까 변화를 추구해도 될만한 상황이란 것이 베어스의 장점중의 하나란 거다. 기본적으로 모든 수비 포지션에서 백업체제가 왼성된 팀이 베어스니까. 반면 투수진만 놓고 보면 4위권 팀들중 그런 준비가 가장 미진한 팀 역시 베어스다. 물론 그것도 조금 파고들면 조금 이야기가 달라지지만 그건 나중에. 


반면 많은 이들이 문제로 지적하는 왼손 불펜의 부재는 큰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물론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보자면 왼손 투수가 있는 편이 좋다. 왼손 투수만이 아니라 통칭 잠수함이라 불리는 투수들 역시 있는 것이 좋다. 그런데 그런 왼손 투수들을 데리고 가지 않은 것이 벤치의 실수일까? 난 아니라고 본다. 올 시즌만이 아니라 최근 몇 년동안 왼손 투수의 부재로 말미암아 속을 많이 썩은 팀이 베어스다. 올 시즌중에도 꽤 많은 왼손 투수들에게 기회를 부여했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중 유희관을 제외하면 그 누구도 벤치의 신뢰를 얻지 못 했다는 점이다. 


누구나 아는, 심지어 전문가도 아니라 단순한 팬에 불과한 나조차도 아는 왼손 투수의 장점을 베어스 벤치만 모를 리는 없다. 그걸 알지만 데려갈만큼의 신뢰를 주는 투수가 없었다는 게 베어스의 현실인 거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을 받아 들이는 것을 실수라고 부를 순 없다고 본다. 특히 준비부족이라고 말하는 것은 지나친 억측이다. 


성과에 대한 압박에서 비롯된 실수라고 할만한 것들이 많다는 건 분명 아쉬운 일이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도로 실수가 아닌 것까지 실수로 매도해선 안 된다고 본다. 베어스의 투수진엔 믿을만한 왼손 투수가 유희관 한 명 뿐이다. 이건 그냥 현실이다. 



p.s.

장기적인 선수 수급이란 차원에서의 실수란 지적은 타당할 수 있다. 그런데 사실 그것도 조금 억울한 면이 있다. 기본적으로 베어스는 최근 몇 년동안 지속적으로 꽤 괜찮은 성적을 내온 팀이다. 신인선수 지명에서 좋은 선수, 그것도 수준급 왼손 투수를 뽑을 수 있을만한 위치가 아니었다. 그런 와중에도 꽤 많은 왼손 유망주들을 보유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그들이 전혀 성장하지 못 하거나 부상으로 긴 재활을 보내고 있다. 노력을 하지 않은 것도 아니란 거다. 그러니 억울할 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