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츄어리즘

라이온즈 우승과 시리즈의 결정적 장면.

The Skeptic 2013. 11. 2. 00:02

1.

시즌 1위, 포스트 시즌 우승. 이 정도면 명실상부 올 시즌 최강팀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시즌 1위팀이 포스트 시즌을 우승하는 것이 대체적인 확률이긴 하지만 올 포스트 시즌 라이온즈의 우승이 더욱 값진 것은 아무래도 시즌 후반 갑작스런 경기력 저하로 마지막까지 순위 다툼에서 결정적인 우위를 점하지 못한 탓이 클 것이다. 


실제로 한국 시리즈 내내 라이온즈는 시즌 후반기에 보여준 문제점(선발 투수들의 부진과 중심타선의 부진, 핵심선수의 부상여파)이 별로 나아지지 못한 모습을 보였고 그것이 시리즈 초반 베어스에게 승기를 넘겨주는 계기가 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리즈 막판 더하고 빼고 할 것없는 총력전으로 마침내 시리즈 우승을 거머 쥐었다. 


마지막 7차전은 사실 뭐라 평할 것도 없는 라이온즈의 승리였다. 다만 내가 조금 의문을 갖는 부분은 한국 시리즈 MVP에 대한 부분이다. 그렇다고 내가 시리즈 내내 불방망이를 휘두른 베어스의 최준석을 지목하려는 건 아니다. 개인적인 성과와는 상관없이 어쨌든 시리즈의 MVP는 승리한 팀 선수에서 나오는 것이 정석이니까. 


내 기준에서 보자면 올 한국 시리즈의 MVP는 차우찬이나 밴덴헐크, 오승환중의 한 명이 받아야 한다고 본다. 차우찬이 라이온즈의 선발진이 흔들릴 때마다 슈퍼맨처럼 등장하여 위기상황을 꾸준히 틀어막아주지 않았다면 올 한국 시리즈는 훨씬 더 일찍 끝났을 것이다. 그리고 무너진 선발 투수들 사이에서 꾸준히 자기 역할을 해냈을 뿐아니라 불펜 알바도 마다하지 않은 밴덴헐크와 역시 불펜과 마무리를 종횡무진 오고간 오승환도 손색이 없다. 


문제라면 역시 기록과는 상관없이 우승팀에서 MVP가 선정된다는 관례에 비추어 볼때 아무래도 투수가 MVP를 수상하기는 쉽지 않다. 늘 그렇지만 수비는 빛이 나지 않지만 공격은 사소한 것조차도 빛나 보이는 법이니까. 그래도 난 이 세 명중의 한 명을 선택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보며 그 중에서도 차우찬을 지목하고 싶다. 모든 보직이 다 힘들지만 불펜이 더 힘든 것은 언제 어떤 식으로 등판하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심지어 다른 경기들보다 압박감이 훨씬 더 강한 단기전이라고 해도 그건 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잘 던지던 불펜 투수들이 단기전에서 무너지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그런데 차우찬은 불펜 경험조차 그리 많지 않은 투수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훌륭하게 자신의 역할을 해냈다. 그런 점에서 난 이번 한국 시리즈 MVP는 차우찬이라고 본다. 


2.

한국 시리즈가 끝남으로서 올 한 해 프로야구도 막을 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포츠 기자들을 뻘짓은 마지막까지도 끝날 줄을 모른다. 이번 7차전의 승패를 가른 것이 '경험'이라는 주장 때문이다. 경험? 무슨 경험? 가을야구, 포스트 시즌의 경험을 말하는 건가? 미안하지만 최근 몇 년동안을 통틀어 가장 많은 가을 야구를 경험한 팀이 어디라고 보는가? 미안하지만 그 팀은 라이온즈가 아니라 베어스다. 


심지어 김성근 감독 재임 당시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사실상 공적이자 악의 축으로 군림했던 와이번스와의 피말리는 승부까지도 경험한 팀이바로 베어스다. 압박감이 심한 단기전의 경험이란 면에서 보자면 전혀 꿀릴 것이 없다는 말이다. 


패배의 원인은 지극히 단순하다. 미국 메이저 리그는 무승부가 없다. 승부가 날때까지 무기한 연장전을 펼친다. 1년에 한 두번 꼴로 이틀동안 하는 경기도 나온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닌지라 그 기나긴 연장전에 대한 변변한 기록같은 게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은 없지만 그 경험을 한 선수들의 증언은 기사로 접해본 기억이 있다. 


연장전에 들어가고 시간이 길어지면 사람들은 흔히 투수들이 많이 지칠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실은 조금 다르다고 한다. 투수들보다 타자들이 먼저 지친다고 한다. 급기야는 배트를 휘두를 힘조차도 없어서 그냥 서있다가 돌아오기도 했다는 증언도 있더라. 실제로 베어스의 타자들은 한국 시리즈 막판으로 갈수록 지쳐가는 것이 눈에 띄었다. 반면 기나긴 휴식으로 경기감각을 상실했던 라이온즈의 타자들은 경기를 거듭할수록 타격감이 살아났다. 올 한국 시리즈의 향방을 가른 결정적인 요인은 바로 이것이다. 


3.

결과적으로 말해서 바로 그런 점때문에 생각나는 결정적인 장면이 있다. 3차전에 벌어진 오심이다. 당시에도 말했지만 그 오심이 아니었다면 경기는 연장전에 돌입했을 것이고 승부가 달라졌을 수도 잇으며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라이온즈의 필승 투수조가 더 많은 부담을 감당했어야 했을 것이다. 아마 베어스의 팬 입장에서 보자면 올 시즌을 기억하면서 두고두고 아쉬워 할 장면이 아닐까 싶다. 


또 다른 결정적 장면이라면 지금도 논란이 많은 5차전이다. 노경은이후에 유희관을 내고 버텼더라면 승부는 달라졌을 것이란 것이 많은 베어스 팬들의 주장이다. 시리즈 결과가 이렇게 나오고 나니 사실 나로서도 생각이 달라지긴 한다. 당시로선 전혀 소득이 없는 투수운용은 아니었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결과론때문에 생각이 달라졌다고 해서 내가 한 말의 근거까지 부정하는 건 아니다. 다만 나 역시도 단기전의 특성과 그 특성에 맞춘 선수 운용에 대해선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 경기였다.  


그리고 사실 그런 생각을 갖게 된 건 바로 오늘 경기때문이기도 하다. 5회 위기상황에서 동점을 하용하고 6회에 대량 실점을 하는 장면을 보면서 난 '왜 투수교체를 좀 더 짧고 빠르게 가져가지 않는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마지막 경기다. 있는 전력을 모두 쏟아 부어야 하는 경기였는데 베어스의 벤치는 계속해서 핸킨스를 밀어 붙였다. 핸킨스가 올 해 포스트 시즌에서 가장 믿을만한 불펜 투수라는 점은 확실하다. 그러나 단기전에선 그런 점도 과감하게 무시할 수 있어야 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장면에서 문득 과거 김성근 감독이 단기전에서 잦은 투수교체를 단행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당시에도 난 김성근 감독이 왜 그러는지 잘 이해하지 못 했고 오늘 경기를 보면서도 투수교체를 해야할 것 같은데 도대체 어느 타이밍에 시도해야 하는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단기전의 운용과 결과를 예상하기 쉽지 않은 이유인 것 같다. 물론 내가 그걸로 밥벌이를 하는 사람이 아니니 그렇기 깊게 파고들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올 포스트 시즌을 치르면서 김진욱 감독은 많은 것을 배웠을 것이다. 


4.

시즌은 모두 끝났다. 하지만 여전히 관심거리는 남는다. 일단 FA시장이 조만간 열릴 것이다. 윤석민과 오승환이 과연 해외진출을 하게될 것인가? 올 시즌이후 FA시장에 나올 준척급 선수들은 어떻게 이동할 것인가? 올 한해 참혹한 결과를 맞은 타이거즈와 이글스가 전력 강화를 위해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이런 정도는 늘 있는 일이겠지만 한 가지 더 추가하자면 새롭게 리그에 가세하게 될 위즈의 선수 보강책은 어떤 것들이 될 것이며 그 보강책에 각 구단들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것들이다. 


사실 리그를 통틀어 가장 두터운 선수층을 보유하고 있는, 그래서 전력 강화가 필요한 다른 팀들의 초미의 관심사인 베어스의 팬 입장으로선 선수들의 이동에 상당한 관심을 갖을 수 밖에 없다. 왼손 투수의 보강에 심혈을 기울이는 베어스의 요구사항에 맞춰줄만한 팀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큰 이동은 없을 수도 있다. 물론 여전히 2군에 있는 좌완 투수들이 있고 아마 이현승이 군에서 돌아올 시기가 된 것도 같고 아무튼 시즌은 끝났지만 관심사는 계속된다. 


아마 적어도 최근 10년 정도는 베어스 팬이어서 가장 행복했을 때가 오히려 시즌이 아니라 시즌이 끝나고 새로 시작하기까지의 준비기간이었던 것 같다. 그 기간동안 늘 새로운 선수들이 채워져 가고 그 선수들로 인해 좋은 성적이 나는 과정이 반복되다 보니 그런 것 같다. 베어스의 팬이어서 좋은 점이다. 김성근 감독 당시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였던 와이번스도 김성근 감독 퇴임 이후 몇 년만에 상위팀에서 멀어졌다. 그러나 베어스는 여전히 상위 클래스를 유지하고 있다. 그게 베어스의 매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