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oki

[Lawless / 맨 오브 스틸] 발전과 퇴행.

The Skeptic 2014. 1. 23. 04:22

1.

'맨 오브 스틸'은 슈퍼맨 영화다. 구분이 히어로물이란 게 아니라 그냥 '슈퍼맨' 바록 그 영화다. 단지 시간전개상 이 영화가 다른 시리즈물보다 조금 더 앞이다. 이런 현상은 이야기거리를 찾지 못한 시리즈물 영화들이 자주 찾는 선택지다. '엑스맨'과 '스타워즈'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시리즈물의 시간 전개와 영화가 만들어진 물리적 시점은 완전히 다르다. 가장 오래된 이야기를 가장 최근에 하는 셈이다. 당연히 이야기의 전개 순서와 상관없이 가장 최근의 시각들이 영화에 투영되게 마련이다. 그래서 옛날 옛적 슈퍼맨과 이 영화는 시각이 사뭇 다르다. 


옛날옛적 슈퍼맨에서 조드 장군은 그냥 악당이다. 반복해서 소개된 것처럼 반역죄를 저지르고 추방당하는 역할이다. 그런데 옛날 슈퍼맨에선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설명하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반역', '추방'이란 단어만으로도 그는 천하에 몹쓸 악당이 되는 것이다. 원인이란 게 필요없다. 마치 '종북', '좌빨'이란 딱지만 달면 천하에 몹쓸 놈이 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그런 식으로 단정짓는 것이 얼마나 멍청한 짓거리인지 아는 시대에 살고 있다. 물론 여전히 우리는 그런 단순한 선악 구분과 선언의 내용없는 명료함에 매료된 좀비들이 득시글거리는 세상에서 살고 있지만 어쨌든 옛날보다 나아진 건 사실이다. 그래서 시리즈물의 시간전개상 가장 처음에 해당하는 이 영화는 당연하게도 '왜 조드장군이 반역자가 되고 추방되는가?' 꽤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그렇다고 그 부분이 아주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용없는 선언만으로도 실질적인 효과를 만들어 내는 게 (빈 A4용지 들고 '여기 공산주의자 리스트가 있다'라는 말만으로 매카시즘이란 마녀사냥이 시작된 것처럼 말이다) 힘들다거나 적어도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여기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 거다. 발전이라면 발전이다. 


2.

'less'라는 단어에 대한 내 느낌은 '결핍'이다. 일반적으로 'lawless'라고 하면 '무법'이라 번역하지만 난 그 번역이 어색하다. '무법'은 부정적인 느낌이 확 들지만 알다시피 '결핍'은 그렇게 부정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난 이후에 난 그 번역이 맞는 것이란 일종의 확신이 들었다. 


영화 내용은 단순하다. 서부시대 어느 마을에 나름 영향력있고 힘깨나 쓰는 토홍 형제가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중앙정부에서 공권력을 가진 관리들이 파견된다. 당연히 그 마을에 익숙한 것이 아닌 다른 질서를 관철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미 수많은 서부 영화들에서 묘사했던 것처럼 서부시대라는 시대가 그게 그렇게 쉽게 이루어지는 시대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말 그대로 'Lawless'한 시대였으니까. 


당연히 공권력을 가진 이들도 그런 상황에 맞추어 더 큰 폭력을 휘드르게 마련이고 돈은 모으면 모을수록 더 모으고 싶고 권력은 쓰면 쓸수록 더 쓰고 싶어지는 법. 그래서 '그 이후'를 생각하지 않고 그걸 추구하는 이들은 부정한 방법을 동원하게 마련이다. 역시 'Lawless'해지는 셈이다. 


영화는 그런 상황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난 이후에 동네 토호 형제들의 폭력, 심지어 살인조차도 어쩔 수 없으니 받아 들여야만 하는 일로 포장한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이 영화가 이른바 정통 서부극이라는 것이 얼마나 퇴행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국가에서 '금주령'을 내린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불법적으로 돈을 버는 이들은 불법적으로 주류를 만들어 유통시키고 돈을 번다. 그런 일을 하는 도시 조폭 하나가 지방토호 형제의 막내와 술을 거래하고난 장면을 보자. 한 조폭 조무래기가 지방 토호형제중 큰 형이 겪은 사건에 대해서 말하자 그를 삽자루로 후려치며 말한다. 


"모든 정부관리들이 다 나를 표적으로 삼고 있어 내가 필요한 건 그런 배짱있는 놈이야!"


그렇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류의 대사일 것이다. 우리 나라 조폭 영화들에도 자주 등장하는 대사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결국 모든 관심사는 오로지 돈이다. '용기', '배짱', '의리'같은 건 크리스마스 산타처럼 분별력없는 이들을 속이고 헛바람을 잔뜩 들여놓기 위한 수작질에 불과하다.  


게다가 이 지방 토호 형제들은 자신들에게 위해를 가했다는 이유로 사사로이 폭력을 휘두르고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다. 요즘같으면 당연히 공적인 기관들이 나섰을 일을 사적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심지어 마지막 장면에선 국가에서 파견된 관리를 죽이기까지 한다. 물론 앞서 설명한 것처럼 그 관리라고 잘한 건 없다. 그 장면에서 인상깊은 그 관리를 도우러 나섰던 동네 경찰서장쯤 되는 분이 관리가 지방 토호형제중 맏이를 총으로 끝장내려고 하자 다리에 총알을 박아 버린다. 그리곤 말한다. '더 이상 사람이 다쳐선 안 된다'고. 이미 많은 사람이 죽어나간 뒤인데도 말이다. 


이 모든 장면들은 보수적이다 못해 극우적인 미국의 가치관을 그대로 보여준다. 가장 극우적이라고 볼 수 있는 미국 총기협회 애들이 총기 금리를 반대하는 논리도 바로 이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사적인 복수마저 허용할 수 있다는 이 극단적 자만심이야말로 미국의 보수와 극우를 규정하는 시각인 셈이다. 


거기에 더해 영화는 이런 사적이 복수가 단순히 자신들을 건드려서가 아니라 자신들에게 소속된 사람들, 바보같지만 함께 일하면서 살고 있는 소년, 도시의 삶에 환멸을 느끼고 이 곳으로 건너온 여성같은 이들을 위한 것처럼 나타난다. 심지어 형제들중 맏이는 스토리 전개상 누가 봐도 자신과 결혼할 것이 뻔한 여성에 대해서 절대로 먼저 찝적거리지도 않는다. 여성이 홀라당 반해서 먼저 품속으로 달려들어 간다. 


아주 전형적인 보수주의적 시각이다. 문제는 그런 식으로 포장하기엔 영화에서 보여주는 모습들은 너무나 퇴행적이라는 거다. 물론 서부영화라는 게 무법시대를 다루는 것이니 그럴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않은 서부극도 많이 봐왔다. '용서받지 못할 자'가 있고 '3:10 투 유마'도 있다. 그게 아니면 차라리 마카로니 웨스턴처럼 스차일리쉬로 밀어 붙이는 걸 만들던가 말이다. 


서부 영화는 확실히 한 물 갔다. 특히나 고전적인 형태의 이른바 정통 서부극은 정말로 한 물 갔다.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가?'를 보여준 영화다. 물론 한 물갔다고 죽었다는 말은 아니다. 진부하고 고루하고 퇴행적이지만 여전히 그게 모든 것이라고 믿는 극우 좀비들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