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먹고 바람똥

감수성에 대하여.

The Skeptic 2014. 2. 21. 16:52

추상적인 단어를 대한다는 건 늘 곤란한 지점이 많다. 여러 가지 가능성을 따져볼 수도 있지만 그것들중 어떤 것이 '딱' 그것과 맞는다는 것을 특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특히 그 추상적인 단어가 주는 이미지가 내가 아는 단어들의 이미지와 맞아 떨어지는 않는 경우엔 너무나 쉽게 그 단어들을 대입하는 걸 포기하게 된다는 점에서 오류가 될 가능성도 충분하다. 즉 추상적이라는 건 주관적이라는 것이고 주관적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타인과 공유하기 난감하다는 의미다. 


'탁월함'이란 단어를 대하는 나의 태도 역시 그런 면이 있었다. 뒤늦게 그런 문제가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그 '탁월함'이란 단어가 주는 이미지를 버리고 한 번 생각해보기로 했다. 


일단 '우회로'를 한 번 찾아보자. '냉소' 난 여전히 냉소를 일종의 위악적인 처세라고 본다. 실제로 냉소란 가면의 이면엔 불안과 희망없음이란 의미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쿨하다'는 것과 '냉소'는 그래서 매우 다른 단어인 거다. 그렇다면 이 불안과 희망없음은 어디서부터 유래하는 것일까? 특히 세대와 연결되는 경우. 


난 후배들에게 이런 말을 자주 하는 편이었다. '문제가 생기면 너보다 나이가 많거나 혹은 너보다 조금이라도 그런 면에서 낫다고 판단되는 사람에게 물어보라'고 이유는 '제 아무리 날고긴다고 해봐야 네 또래나 너와 비슷한 수준의 사람에게 물어보면 돌아오는 답은 거의 똑같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에게 문제가 생겨서 내가 말한대로 연배가 좀 있거나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물어보았는데 그들도 그 사람의 주변 사람들과 별반 다를 것 없는 답변을 해준다면 어떨까? 당연히 실망스러울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난다면 당연히 그는 냉소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른바 '낡은 진보'란 무엇인가에 대한 작은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질문이든 추상적인 질문이든 가리지 않고 천편일률적인 답안을 내놓고 그것이 세상을 관통하는 대단한 진리라도 되는 양 떠드는 것이다. 물론 그런 것의 존재 가능성을 부정하려는 건 아니다. 존재할 수도 있다. 비록 난 믿지 않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런 것의 존재 여부와 그것을 '타인에게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는 완전히 다른 문제다. 글의 앞 머리에서 '추상적인 단어를 대하는 곤란함'과 연결시켜보면 이야기가 조금 더 명확해진다. 비록 나에겐 명확할지 몰라도 그것이 타인에게도 명확한 건 아니다. 여기서부터 '방법'과 '태도'가 문제가 되는 거다. 


그렇다고 그 방법이 어떤 고정된 형태로 존재하는 건 아니다. 왜? 같은 문제라도 그 문제에 처한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른 인식을 갖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모든 문제는 구체적인 개인의 구체적이고 특징적인 문제로 드러날 것이고 비록 그 문제가 결국 같은 문제라고 할지라도 우리는 그 구체적인 개인의 구체적인 문제를 접할 땐 모두 각각 다른 문제로 인식하고 접근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 이건 '듣는 태도'에 대한 이야기고 그 이야기를 들음으로서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에 대해 좀 더 깊은 인식을 갖도록 이끌어 주는 그것'에 대한 이야기다. 비관론자들은 역사는 발전하는 게 아니라 그저 반복될 뿐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판에 박은 듯이 반복되는 경우는 존재하지 않는다. 발전이 아니라도 최소한 변화는 있다는 의미다. 


자칭 진보가 그런 것들을 무시할 때 '낡은 진보'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한 번 생각해 본다. '탁월함'이란 건 결국 그런 것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물론 '탁월함'이란 단어가 주는 이미지와는 그닥 어울리지 않지만 실제로 이것이 가장 탁월한 것은 아닐까? 


문제에 봉착한 사람들이 '진짜로' 해답을 원하는 경우는 사실 거의 없다. 일반적이고 평균적이며 상식적인 사람들의 경우 자신이 처한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 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그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대책 혹은 대책들에 대해서 모르는 것도 아니다. 단지 '이런저런 이유들'로 그 대책 혹은 대책들을 선택하기가 싫은 것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대책 혹은 대책들이 아니라 '이런저런 이유들'이고 '그 이유들이 어디서부터 연유하는가?'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들과 배경에 대해서 어렵지 않게 인지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감수성'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이른바 꼰대 소리를 듣는 것들, 서비스업 종사자들에게 막 대하는 것들, 을에게 피해를 전가하면서 자기 혼자 잘 살겠다는 갑질하는 것들이 바로 이런 감수성이 결핍된 인간들인 것이다. 시나 영화, 드라마를 보면서 눈물 펑펑 흘리지만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에데 대해선 막말을 퍼붓는 이들, 종교의 이름앞에선 한없이 나약한 척 하면서 다른 종교나 무신론자들에겐 저주와 증오를 퍼붓는 이들도 역시 그런 이들인 거다. 




"20대는 왜 투표하지 않게 되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