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먹고 바람똥

권위가 무너지는 방식.

The Skeptic 2014. 4. 24. 14:19

기본적으로 인간의 모든 생각이나 가치관은 당대의 정치, 경제, 문화적 환경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고 보면 된다. 그런 변화들과 무관한 절대적인 가치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건 오로지 인간의 상상속에만 존재하거나 혹은 근거나 증명같은 것을 의심으로 치부하며 공갈협박으로 무의미하게 만들어 버리는 종교적 행태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권위'도 그와 다르지 않다. 권위는 '그 사람 혹은 그 집단의 말을 들으면 어떤 식으로든 이익이 되거나 혹은 적어도 손해는 보지 않는다'라는 실증적 믿음으로부터 형성된다. 그렇다면 그것을 기준으로 볼 때 지금 그런 권위가 의미를 갖을 수 있을까? 미안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굳이 구구하게 설명을 달지 않더라도 우리는 지금 많은 것이 '불확실한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매일같이 크고작은 사건들이 벌어지지만 그것들 중 또 많은 것들이 책임소재를 가리거나 혹은 원인을 찾기 힘든 경우들이 많다. 다시 강조하지만 그 사건들중 대부분은 책임소재나 원인을 '안 찾는 것'이 아니라 '못 찾는 것'이거나 혹은 찾는 것이 가능하더라도 '뾰족한 대책이 없는' 경우다. 


이것이 과거와 지금이 다른 결정적인 이유다. 사건을 둘러싼 변수가 너무 많아졌고 그것을 모두 고려한 최적의 대안이나 대책이란 게 존재할 가능성은 전전 더 줄어들고 있다. 


단순한 농경사회라면 권위의 소재 역시 거의 확실하다. 오랫동안 같은 지역에서 같은 농사를 지어온 이들은 수많은 경험들을 통해 거의 모든 변수들을 통제하거나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 갑작스런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방식같은 것들 말이다. 그런데 현대는 그런 것이 불가능한 사회다. 인류 문명의 발달이란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거의 모든 것들이 보이는 특성은 다양함과 복잡함이다. 한 개인이 그 모든 문제들을 인지하고 그에 대응하는 방식을 갖기란 불가능하다. 이미 현대 사회에 대해 가르치는 모든 학문들도 그런 것을 인정하고 있다. 


즉 고전적인 의미의 '권위'란 건 이제 불가능한 사회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는 아무런 효용가치도 없는 구닥다리 권위란 개념에서 벗어나지 못 하고 있다. 사건 사고들의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방식이 그런 것이다. 세상은 이미 과거와 같은 권위가 성립불가능한 상황에 접어들었는데 사람들은 여전히 그 의미없는 개념에 매달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전적인 의미의 권위란 개념이 무너져 버린 지금 새로운 의미의 권위는 불가능한 것일까? 아니 그렇지 않다. 


이번 사건의 경우를 보자. 많은 정보를 알 수 있었던 선장과 승무원들은 생존했다. 심지어 같은 승무원이지만 그런 정보에 접근할 수 없었던 이는 죽었다. 여기서 중요하게 제기되는 것이 '책임'의 문제다. 물론 그들이 그런 책임을 다할 만큼의 충분한 능력이나 흔련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건 기본적인 '책임'을 무시한 경우다. 그리고 이 사건이 발발한 이후 정부가 보인 무능하고 무기력한 대응과 납득할 수 없는 행위들(그것들 중 상당수는 여전히 군이나 경찰, 정부가 자기들의 위치를 흔들 수 있는 것을 무시하고자 하는 밥그릇 싸움이란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 하며 이 역시도 무능함의 다른 이름이다) 역시 '책임'이란 면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물론 이 사건은 발발 초기에 충분한 대응이 가능했음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 해 더 큰 비극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앞으로 설명할 다른 사건들과 다른 사례지만 이런 경우를 제외하고 나면 또 많은 사건들이 앞서 설명한 현대사회의 불확실성이란 속성에 많이 좌우되는 것도 사실이다. 때문에 우리는 새로운 형태의 권위를 요구하는 것이고 그것은 바로 '책임'이고 '책임있는 자세'인 것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도 볼 수 있는 것처럼 여전히 우리는 아무 의미없는 구닥다리 권위란 개념에 매달려 살고 있다. 그래서 정치인과 정부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행동을 보일 뿐이다. 그리고 그런 이들에게 권력, 그것도 많은 이들의 안전과 생존이 걸린 문제를 좌우할 수 있는 권력을 내어주는 순간 이번 사건과 같은 일이 벌어지게 되는 거다. '말을 잘 들었기 때문에 죽게 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