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먹고 바람똥

개혁과 혁명.

The Skeptic 2014. 5. 4. 14:19

어감상의 차이도 그렇지만 실제로도 이 두 단어가 의미하는 바는 많이 다르다. 그런데 공통점도 있다. 이 둘 모두 어떤 식으로든 '변화'를 의미한다는 점이다. 차이점이라면 그 변화의 방식이다. 이 차이는 매우 중요하며 공통점을 가려버릴 정도로 의미있기도 하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이 둘간의 공통점보다 차이에 주목하는 편이다. 심지어 그 강도가 워낙 세서 두 주장을 앞세우는 이들간의 감정적 반목역시 심각한 경우도 있다. 


그런데 난 개인적으로 차이보다는 공통점에 주목하는 편이다. 이런 말을 하면 양자간의 차이에 주목하는 이들은 '어정쩡한 타협'이라며 비난을 서슴치 않기도 한다. 물론 난 그런 태도 자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 양자간에는 '변화를 모색한다'는 분명한 공통점이 존재하는데 의도적으로 그걸 무시하는 것은 그들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런 비판중 가장 마음에 들지않는 부류들은 '혁명' 쪽에 방점을 찍는 이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이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는 '혁명'이 가지고 있는 의미에 비추어 볼때 개혁과 혁명이 가지는 공통점에 더 주목해야 하는데도 말이다. 


'혁명'은 무엇일까? 자주 언급한 바지만 단순히 국가 권력을 특정 정치세력이 가져간다고 해서 혁명이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미안하지만 그런 주장은 이미 역사를 통해 어리석은 판단으로 증명되었다. 역사는 수많은 혁명을 기록하고 있지만 그것들중 실제로 성공한 혁명은 거의 없다. 대부분이 미완이다. 아주 박하게 평가하자면 프랑스 대혁명으로 상징되는 '시민혁명'정도가 성공한 축에 들 것이다. 그 혁명을 기점으로 해서 중세 봉건제가 근대 시민사회로 변화했기 때문이다. 그 나머지들은 현재까지도 성공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이유는 단순하다. 혁명은 권력을 점유한 집단의 교체가 아니라 그 혁명이 지향하는 바가 현실에서 구현되는 것이고 그것을 대중들이 별다른 거부감없이 받아 들이는 상황을 지칭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혁명이 힘든 이유가 바로 이런 점에서 기인한다. 대중들은 이미 존재하고 있는 질서를 유지하고 싶어한다. 이건 그들이 무지해서나 소심해서가 아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안정한 상황을 원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지금 자신들이 살아가고 있는 세상의 질서가 자신들의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하지 않는 이상, 그것도 다수 대중의 삶을 심각하게 위협하지 않는 한 변화를 꿈꾸지 않는다.


막스 할배가 경제적 조건과 같은 객관적 조건의 변화가 사회변화를 추동한다고 제시한 것도 그런 이유다. 그런데 객관적 조건이 변화하면 자동적으로 사회의 변화가 추동될까? 대부분은 그렇지만 이는 대부분 '혁명'이라 부를만한 변화의 영역에 속한 것들은 아니다. 그저 이미 존재하고 있는 질서라는 범주안에서 벌어지는 변화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단순하다. 이건 '이데올로기' 그리고 '헤게모니'와 관련된 문제기 때문이다. 즉 혁명적 변화에 대한 대중들의 태도 문제고 그 태도들의 좌우하는 집단적 가치관을 좌우하는 이데올로기가 어떤 것이며 그것이 어떤 식으로 헤게모니를 갖고 있는가의 문제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대중들은 객관적 조건이 변화했음에도 불구하고 혁명적 변화에 관심을 두지 않는 걸까? 몰라서라고 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 적어도 현대 남한이 북한처럼 정보가 완벽하게 통제되는 사회는 아니기 때문이다. 


이유는 의외로 매우 단순하다. 그런 혁명적 변화들이 '실제로' 어떤 것인가를 실감하지 못 해서다. 가장 자주 드는 예가 바로 '건강보험'이다. 제 아무리 종북이니 좌빨이니 하는 단어를 입에 달고 사는 꼴통이라고 해도 건강보험을 부정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왜 그것이 자신에게 유리하다는 것을 이미 '경험'했기 떄문이다. 즉 혁명적 변화의 내용을 담고 있더라도 그것이 이미 존재하는 것어서 실증적으로 증명이 가능하다면 꼴통이라고 하더라고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개혁'이 '혁명'이 담고 있는 이상과 크게 벗어나지 않는 이상 구태여 혁명을 꿈꾸는 이들이 개혁을 반대할 이유는 별로 없다. 


물론 이건 어쩌면 방법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어떤 이들의 주장처럼 개혁적 결과물을 통해서 혁명으로 다가가는 것과 혁명을 한 이후에 그런 개혁적 조치들을 시행하는 것이 뭐가 다르냐고 할 수도 있다. 겉보기엔 큰 차이없다. 그러나 이미 앞에서 언급했다시피 혁명이 단순히 정권교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 이상 결국 혁명의 이상이 현실에서 무리없이 받아 들여지는 상황까지 염두에 둬야 한다. 그에 대한 대책이 명확하고 납득가능하다면 나도 굳이 반대할 의사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