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먹고 바람똥

선거가 끝났다.

The Skeptic 2014. 6. 5. 21:15

그래서 해보는 이야기. 그리고 참 오래된 논란. 


선거전이나 선거 후에나 자주 회자되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심지어 대부분의 언론사에서도 인용하는 말이지만 내가 보기엔 전혀 타당하지 않은 것중의 하나가 바로 '박그네 논란'이다. 많은 사람들과 심지어 언론들도 이번 선거를 박그네 정권 심판이란 시각에서 접근했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다고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교육감 선거의 결과와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의 결과가 이렇게 나올 수가 없었을 거다. 교육감 선거에서 진보단일 후보가 약진을 보였지만 정작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의 결과는 그에 비하면 별로였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교육감 선거와 자치단체장 선거를 개별적 기준을 가지고 임했다고 봐야 할까? 


그렇지 않다. 일반적으로도 그건 납득이 안 가는 행위고 만약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렇다면 그 각각의 기준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 마땅치 않다. 언론에선 세월호 침몰사건을 그 원인으로 들지만 정작 세월호 침몰 사건은 행정부처인 교육부나 교육 쪽의 문제로 인해 발생한 게 아니다. 그 사건이 교육감 선거에 다른 사건들보다 특별하게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만약 차후에라도 언론의 주장이 맞는 것으로 판명된다면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중의 하나는 대중들의 분별력과 판단력을 예측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정도일 것이다. 


세월호 사건이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건 아니지만 그것으로 모든 결과를 재단할 수는 없다는 의미다. 오히려 교육감 선거가 보여준 특수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교육감 선거는 자치단체장 선거와는 달리 일찌감치 진보 단일후보가 결정된 상황에서 치루어 졌다. 심지어 새정치연합이 공천제를 놓고 설왕설래, 우왕좌왕하는 것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게다가 자칭 보수지만 속내는 극우인 보수 측은 그런 것을 이루어내지 못 했다. 오히려 그런 점이 더 큰 영향을 미쳤을 거라고 본다. 게다가 자치단체장의 경우 이념적 차이에 따른 결과물의 차이가 명확하지 않은 반면 교육감의 경우는 그런 점이 완연했다는 점도 상당한 영향력을 미쳤을 것이다. 


오히려 더 주목할 부분은 세월호같은 큰 사건이 발생한 직후임에도 불구하고 자치단체장 선거의 결과는 큰 변화가 없었다는 점일 게다. 즉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었던 우리 정치의 상수들, 지역적 특수성같은 것들이 여전히 변수들보다 더 강력하게 작용했다는 점이다. 물론 선거 막판 새누리당이 구걸 선거전을 펼친 것이 꽤 유효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보자면 장기적으로 그건 꽤나 큰 악수라고 보기 때문에 그로 인한 영향력에 대해선 큰 의미를 두는 편은 아니다. 


그렇다면 그동안 우리 정치는 전혀 발전하지 않은 걸까? 그렇진 않다. 비록 일찌감치 후보 단일화를 이루고 이념적 차이에 따른 확실한 차별점을 보여주었다는 변수를 지적하긴 했지만 교육감 선거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거꾸로 말하자면 단일화를 잘 이루어 내고 여전히 차별성을 보여줄 수만 있다면 진보 역시 선거에서 꽤 괜찮은 결과를 거둘 수 있는 객관적 상황이 조성되었다는 반증이 아닌가? 이 정도면 굉장한 성과다. 


같은 의미에서 '박그네 정권 심판론'도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분명 세월호 사건은 정치적으로 대단한 영향력을 미친 사건이다. 그러나 그것과 진보진영 일부에서 제기된 '박그네 정권 심판론' 나아가 '박그네 심판'이란 이슈가 대중들에게도 동일한 이슈로 다가섰는지는 냉정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적절성여부부터 영향력, 그리고 영향이 있었다면 그 크기까지 정말 냉정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이걸 냉정하게 바라봐야할 필요가 있는 건 그 두 가지 이슈가 사실상 동일한 선상에 놓여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에게도 그렇게 인식되었는가란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일부 진보진영의 그 주장들은 매우 타당하지만 알다시피 세상이 타당성과 합리성만으로 굴러가는 게 아니니까. 


개인적으로 난 승자독식의 선거제도가 유지되는 한 그 결과에 대해서 그리 큰 기대같은 걸 갖지 않는 사람이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현 제도를 바꾸기 보다는 그 안에서 승부를 보겠다면 이런 질문들을 던지고 그 질문에 대한 결과물을 통해 선거 전술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내 평가를 보태자면 난 그 둘이 그렇게 큰 연관을 갖지 못 했다고 보는 쪽이다. 그 두 사건이 별로 연관이 없다는 게 아니라 그 두사건이 서로 상당한 관계를 갖고 있다는 걸 납득시키지 못 했다는 거다. 그래서 오래된 정치적 상수인 지역구도나 구시대의 질서에 대한 향수(소심함에서 기인한)를 넘어서지 못한 거다. 그리고 그건 진보나 새정치 민주연합이 여전히 그런 것을 깰만한 효과적인 수단들을 갖추지 못 했다는 것이고 이는 전략이 아니라 전술의 문제인 거다. 



p.s.

그래서 한 편으론 언론에서 '국민들이 박그네를 구했다'라고 말하는 것도 전혀 타당한 지적이 아니라고 본다. 이 정도 관계도 제대로 파악해내지 못 하는 언론은 사실 언론이길 포기한 거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