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유하 논란. pt-1.
사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그의 책은 출간된지 꽤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 친일-극우-근본주의 기독교적 발언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문창극 총리후보 지명자 사건과 종군위안부 할머니들의 고소 사건으로 새삼 화제가 되고 있다. 인터넷에서도 나름 논란이 되고 있는데 그에 대해서 써보려고 한다.
다만 몇 가지 주의할 사항이 있다면 먼저 내가 논란이 된 그 책을 직접 보지 못 했다는 점이다. 내가 본 것은 논란의 대상이 된 발췌부분들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이야기인데 이런 류의 글이 기본적으로 원문에 대한 리액션이란 점에서 보자면 하나의 주제를 갖고 완결된 이야기 구조를 갖기 힘들다는 점이다. 물론 그게 좋은 방식은 아닌지라 나름 조심하겠지만 한계는 있을 것이다.
1. 페미니즘?
이 논란이 새삼 화제가 되는 것은 박유하 교수의 견해에 대한 '비판적 지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비판하는 부분은 다소 다른 듯 하지만 지지하는 부분은 대체로 일치한다. 그것은 바로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전시라는 특수한 상황속에서 여성에게 가해진 유무형의 폭력이란 부분이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히 일본 제국주의의 강압으로만 설명가능한 현상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많은 이들이 이것이 새로운 주장이며 학술적으로도 의미있다고 본다.
맞다. 그런데 몇 가지 부분에서 내 견해는 다르다. 일단 이런 류의 주장이 적어도 나에겐 전혀 새롭지 않다. 두 가지 차원에서 그런데 하나는 이미 2차 세계대전 당시 여성들에게 가해진 유무형의 폭력이란 주제와 관련된 저술들은 꽤 많다는 점이다. 심지어 당시 미국 사회에서 남성들의 참전으로 인해 벌어진 노동력 부족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들에게 국가가 어떤 이슈를 강조하며 전시동원체제로 몰아갔는지 그리고 종전 이후 여성들의 사회적 위치가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에 대한 저설도 있을 정도다. 페미니즘에 대해서 전문적으로 공부한 적이 없는 나조차도 그와 관련된 저술들을 꽤나 읽은 기억이 있을 정도다.
두번째는 일본이 자신들의 극우제국주의적 행보를 합리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런 류의 이야기들이 주로 인용된다는 점이다. 즉 식민지 조선은 일본이 나름 신경까지 써가며 내선일체를 강조할만큼 여타 다른 적성국가와는 다른 대접을 했으며 그에 따라 황국신민으로서 자신의 의무를 다하고자 애쓴 조선인들도 상당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당신 식민지 조선에서 벌어진 책임은 오로지 일본만의 책임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일종의 물타기다. 단순하게 따져봐도 이미 내선일체, 황국신민화가 목표라면 당시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한 이들은 제국주의 일본에 복무한 것이다. 때문에 그 행위역시도 제국주의 일본의 책임디 되는 것이 마땅한데 일본 극우들은 그 지점에서 발을 싹 빼며 조선인 부역자들과 거리를 두는 것이다. 앞뒤가 안 맞는 건데 불행하게도 이 논리는 일본에서 꽤나 잘 먹히는 편이다. 국적을 가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보통 일본인들 역시 자신이 속한 국가의 이런 주장에 대해서 별다른 의심없이 긍정한다.
그렇다면 왜 굳이 남한에선 이게 새롭다는 것일까? 이유는 이렇다. 이미 꽤 오래전부터 페미니즘을 연구하는 이들 사이에서도 제국주의 일본의 역사 청산과 사과란 이슈에서 종군위안부 할머니들이 등장하는 방식이 과거 전시 동원 체제에서 여성들을 착취하던 그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지적은 있었다. 그러나 사실 그런 말을 드러내놓고 하기 힘들었던 건 반일감정이란 것이 실질적 내용을 넘어 감정적 운동으로 격화되는 현상이 심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박유하 교수의 견해에 대해 비판적 지지를 표방하는 이들이 주로 집중하는 지점도 여기다.
반면 난 그것을 드러내는 박유하 교수의 방식에 대해선 전혀 동의할 수 없다. 먼저 전쟁상황에서 벌어지는 여성에 대한 착취에 대한 연구는 이미 꽤 많은 결과물이 나와 있으며 박유하 교수의 지적이 그런 것들에 비추어 볼때 특별한 지점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저술에서 몇몇 특별한 사례들을 들면서 문제를 '제국주의/반제국주의'라는 틀이 아니라 '종속적 위치의 여성에 대한 채별과 착취'라는 측면에 집중할 것을 주장하는데 이는 두 가지 측면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하나는 남한에서 종군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제국주의 일본의 문제에 대해서 격렬한 감정적 반응이 등장하게 된 인과관계를 무시하기 때문이다. 남한에서 그런 반응이 나타나게 된 것은 제국주의 일본이 제대로 청산되지 못 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런 현상은 중국에서도 빈발하며 그 강도는 우리보다도 더 심각한 수준이다. 제국주의 독일을 독일이 청산해온 방식과 일본이 그것이 지속적으로 비교의 대상이 되는 이유 역시 그 때문이다. 즉 그런 감정적 반응의 원인은 우리보다는 오히려 일본에 있으며 종전 이후 자신들의 편리에 따라 정상적인 역사 청산을 무시한 채 제국주의자들과 전범들을 다시금 권력에 앉혔던 미국 탓이다.
물론 그런 인해 발생한 것이긴 하지만 지나친 수준에 도달했다는 것도 지적받아야 할 부분이긴 하다. 특히 그런 감정적 분노가 표출되는 방식이 또 주로 일본 여성들에 대한 성적 비하와 같은 차별로 드러난다는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여전히 그런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열쇠는 역사 청산이라는 점은 바뀌지 않았다. 역사 청산을 한다고 갑자기 그런 것이 사라지진 않겠지만 적어도 그것이 일본 정부로부터 '공식화'되면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다.
원인과 결과에 대한 상황이 이러한데 '감정적 과잉은 잘못이다'라고 주장하는 건 그다지 설득력을 얻지 못 한다. 이건 마치 법정에서 범법행위를 저질렀다고 판결받은 가해자가 여전히 가해 사실을 부인하는데 피해자는 가해자를 용서해야 한다는 주장처럼 받아 들여지기 십상이다. 많은 이들이 그것이 가장 올바른 '용서'의 방식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종교계가 그런 경향이 강하다. 그런데 현실에선 아무런 단죄나 처벌, 사과, 보상과 같은 물리적 과정이 배제된 용서라는 건 성립하기 어렵다.
그런 시각에서 보자면 박유하 교수나 그에게 비판적 지지를 보내는 이들이 논의의 층위를 혼동하고 있는 것이다. 제국주의 일본에 대한 감정적 대응이 빈발하는 것은 국가간의 관계에서 비롯된 문제고 그로 인해 파생되는 극단적 언행들은 대부분 인권과 같은 일반론과 맞닿아 있다. 드러난 행위는 하나지만 그에 대한 대응은 이중적이어야 한다는 거다.
일본이 자신들의 과거사를 계속해서 부정하는 한 피해국 국민들이 그에 대해 감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을 해소할 순 없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종교 교리서에나 나올법한 지고지순한 용서라는 행위가 대다수 국민들에게서 일어나는 건 그야말로 기적에 가까운 일이니까. 현실에서 중요한 건 일본이 과거사에 대해 반성하고 사과하고 물리적인 성의를 보일 때만 용서가 가능하다. 반면 그런 감정적 대응이 인권(여성들을 포함한)에 대한 무시로 이어지는 경우는 내부적으로도 얼마든지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사실 이런 이중적 층위에 동의할 수 있다면 현재 남한의 상황이 그렇게까지 문제가 될 수준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자꾸 비교를 해서 미안한데 같은 사안에 대한 중국의 반응을 보자. 적어도 우린 그런 직접적 물리력을 행사하진 않는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일본의 과거사 문제를 개별적 존재인 일본인 개인에게 덧씌우는 불학무식한 짓은 거의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문제에 지나친 감정적 대응을 보이는 부류는 남한내에서도 이른바 극우로 분류할 수 있는 이들이 대부분이고 아차피 극우는 늘상 미워하고 혐오할 대상이 필요한 이들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박유하 교수의 주장과 그에 대한 비판적 지지를 표방하는 이들의 주장은 현실을 지나치게 과장한 감이 있다고 본다. 특히 이번 사건이 화제가 된 이후 박유하 교수에게 쏟아지는 비난을 보며 그런 걱정을 하게 되었다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앞서 박유하 교수의 문제제기가 일본내에서 제국주의 일본을 합리화하는 방식으로 유통된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박유하 교수의 주장은 그 본래의 목적이 어떤 것인가와는 무관하게 그렇게 해석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건 마치 제국주의 일본의 식민지 시절 그들의 앞잡이 노릇을 하던 조선인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런 반응이 나온다 해도 이상할 게 별로 없다.
게다가 그의 저술만 놓고 봐도 그렇게 해석될 여지는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