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이 드럽다.
문제는 터지는데 나아지는 건 하나도 없다. 당연히 기분이 드럽다.
'기분이 드럽다'는 건 아주 중요한 문제다. 감정의 진동폭이 크다는 건 그만큼 정상적인 판단을 하지 못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의미기 때문이다. 내가 그렇다는 건 아니고 설령 내가 그렇게 된다고 한대도 큰 문제는 아니다. 기분이 드럽다고 해서 내가 뭔가 특별한 걸 할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자주 언급하지만 이젠 그런 일들이나 인간들과 드잡이질을 할 여력같은 것 없다. 그냥 혼자서 기분드러워하다가 조금씩 잊어버리길 바랄 뿐이다. 내가 떠든다고 그 일이 해결된다거나 인간이 변할 가능성같은 건 전혀 없으니까. 설령 있다고 한들 그런 일에 힘쓰고 싶지 않다.
그래서 '기분이 드럽다'는 건 중요한 문제인 거다. 애시당초 난 성선설이나 성악설이니 하는 개풀뜯어먹는 소리같은 건 믿지 않지만 부정할 수 없는 한 가지가 있는데 그건 바로 인간은 변화하는 동물이란 거다. 그런데 기분이 드러워지면 그 움직일 수 없는 사실조차도 부정하고 싶어진다. 그래서 후임병을 고문하다 죽음에 이르게 만든 것들을 싸그리 모아다 총살시키고 싶고 여고생 납치해서 고문하다ㄹ해하고 사체훼손까지 시도한 인간같지않은 것들을 보면서 '저런 것들이 더 살아봐야 뭐 나아지겠나. 그냥 죽어주는 게 서로 이득이지'라는 생각을 한다.
기분만 드럽지 않다면 이야기는 많이 달라진다. 개인보다 집단의 도덕성이 훨씬 떨어진다는 건 이제 새롭지도 않은 이야기다. 백주대낮에 사고를 당해도 사람들이 매정하게 그냥 지나치는 것도 개인보다 집단의 도덕성이 훨씬 떨어지는 탓이다. 그러니까 책임이 분산되기 때문이다. 일대일도 가해자와 피해자가 되는 것보다 다수가 가해자가 되면 훨씬 더 잔악해지고 인간같지 않은 행동을 하게 되는 것도 그런 이유다. 그것들이 악마여서 그런 게 아니라 그냥 평범한 인간이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거다.
여기서 또 한 번 기분이 드러워지는 건 바로 '평범하다'는 것 때문이다. 그러니까 주위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평범한 이들, 그들 스스로 자신을 어떻게 여기는가와는 아무 상관없이 그냥 누가 봐도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인간들은 언제든 상황만 주워지면 인간 쓰레기같은 짓을 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되는 거다. 이 쯤 되면 세상 산다는 거, 인간들이랑 부대끼며 살아간다는 사실 자체가 거의 토악질이 나올만큼 혐오스러운 일이 된다.
대부분은 직접적으로 내게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마치 일어난 것처럼 생각하며 혐오감을 갖는다는 건 무슨 황당한 비약이냐고 말할 거다. 그렇다. 그리고 이건 또 대부분의 '평범한 인간들'이 하는 말이다. 팔레스타인이 시오니즘이란 파시즘을 신봉하는 쓰레기들에게 폭격을 당하고 사람들이 죽어 나가도 '니 일도 아닌데 왜 열을 내느냐'는 말은 아주 평범한 이들이 하는 일상적인 주장이다. 어떤 식으로 따지든 결국 인간들과 함께 살아간다는 건 혐오스러운 일이 되는 거다.
그리고 또 이 쯤에서 등장하는 것이 있다. 집단의 도덕성이 현저하게 낮은 수준이 되지 않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 맞는 말이다. 어차피 '평범한 인간들'은 자기 생각이나 가치관같은 것 없다. 대신 자기가 속한 집단의 지향에 더 동화되는 존재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속한 집단이 한 명을 고문하고 살해하고 사체훼손을 행해도 아무런 문제의식없이 가담하게 되는 거다. 결국 그런 현상을 방지하기 위한 방법은 두 가지정도인데 하나는 개개인의 도덕성을 드높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집단의 도덕성을 높이는 것이다.
그런데 개개인의 도덕성을 높이는 건 사실 거의 불가능하다. 이 정도면 흔히 회자되는 '평범함'의 기준이 '비범함' 수준으로 올라서야 한다는 건데 인류 역사상 그런 일이 이루어진 경우는 단 한 차례도 없다. 생각없는 어설픈 진보나 좌파들이 각종 혁명의 사례를 들며 그 가능성을 주장하지만 불행하게도 결과적으로 그 허다한 혁명들중 성공한 것은 아직 한 개도 없다. 오히려 어떤 의미로든 사람들의 생각을 확 바꾸어 놓았던 것은 차라리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불행한 사건인 전쟁덕이라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할 거다.
이미 19세기 산업혁명과 근대국가, 시민사회의 성장을 보면서 평범한 인간들이 문명을 찬양하던 시절에도 극소수의 사람들은 그 문명이란 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이란 것을 예측했다. 물론 그들중 대다수는 여전히 인간의 변화가능성에 대해서 희망을 걸었지만 그들중 또 극소수는 그냥 인간이 또 다른 비극적 사건을 터트리거나 아니면 그냥 조용히 멸종해 버리는 것이 어느 면으로든 나은 선택이라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었다.
물론 그런 주장은 당시 사회가 지식 보유라는 면에서 워낙 큰 격차를 보이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등장한 역사적이고 제한적인 주장이란 설명도 있고 충분히 타당하다. 문제는 '그렇다면 그 기준을 놓고 볼때 지금이 그 당시와 비교해서 뭐 하나라도 나아진 것이 있느냐'라는 질문에 대합 답이다. 민주주의를 신봉한다는 자칭 진보나 좌파들조차도 타인의 무지를 탓하며 모르면 입닥치라고 떠들고, 있지도 않은 사실을 마치 있었던 일인 양 떠드는 상황인데 과연 뭐가 나아졌다는 걸까. 냉정하게 보자면 인간의 변화가능성에 희망을 건 이들보다 조용히 멸종하든지 큰 사건치고 멸종하는 것이 정해진 순리라는 쪽이 더 사실에 가깝다.
아무튼 그래서 개개인의 도덕성 향상 문제같은 건 별 의미없다. 남는 건 집단의 도덕성 문제인데 전자의 가능성을 부정해 버리고 나면 사실 남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완전한 독재' 어차피 개개인은 생각이나 가치관같은 것 없다. 설령 간혹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는데 그들중 거의 대부분은 생각이나 가치관이라기 보다는 그냥 취향일 뿐이다. 때문에 집단의 가치관을 개개인이 따르도록 만들면 된다.
그런데 알다시피 취향도 가치관이라고 주장한다는 건 나름 자기는 자유로운 존재라는 착각을 하며 산다는 뜻이다. 물론 그런 이들이 자유가 어떤 건지 제대로 알고 있을 가능성은 전무하다. 그들이 말하는 자유란 그냥 자신의 취행대로 살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일 뿐이다. 그 취향이란 게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가라는 의심같은 건 절대로 하지 않는다. 그냥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할 거다. 그게 말인지 똥인지는 어차피 큰 문제 아니다. 그냥 그걸 믿는다는 게 중요한 거다. 그래서 들어주기 힘들 정도로 똥같은 소시를 해대는 인간조차도 자기는 자기 마음대로 살 자유가 있다고 주장할 거다.
이래선 독재가 성립할 수가 없다. 때문에 또 방법은 두 가지도 나뉜다. 하나는 고전적인 의미의 독재, 국가의 공권력을 이용해서 똥같은 소리를 떠들거나 똥같은 행위를 하는 것들을 조지는 거다. 매우 고전적인 방식이다. 다른 하나는 이미 등장한 지는 오래되었지만 최근 들어 가장 효과적인 방식으로 새롭게 조명받고 있는 방식. 즉 체제내부로 흡수해서 일탈을 생각도 못 하게 만드는 거다. 파업하다 손해가 나면 막대한 손해배상을 하도록 만드는 식, 마지못해 동참하게 만드는 거다. - 그러고 보니 어떤 이가 이런 관계를 '동지적 관계'라는 단어로 표현하는 멍청한 짓을 했다는 게 떠오른다만 중요한 문제 아니고.
문제는 어쨌거나 이런 방식이 근본적인 대책은 아니라는 점이다. 어차피 권력이란 게 영원할 수 없다는 건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주의할 점은 단지 권력의 소유내지는 점유권이 영원하지 않다는 거지 그 소유, 점유권의 이동이 어떤 변화와 자동적으로 연결되는 건 아니다. 어쨌거나 권력의 소유,점유권이 변한다는 사실 자체가 '완벽한 독재'란 불가능하다는 의미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본질적으로 불완전할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대국가와 시민사회, 산업혁명이 태동하던 시절, 인류의 문명이란게 결과적으로 그렇게 이롭지 않을 것이란 예상을 한 이들중 일부가 '완전하고도 완벽한 독재'란 개념에 몰두했던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사실 이런 류의 결정적이며 절대적이고 완벽한 기준이나 상황이 존재할 것이라는 발상 자체가 매우 근대적이다 못해 종교가 세상을 지배하던 봉건주의 시절에나 가능했던 이야기라는 점이다. 근대와 근대가 초래한 변화들에 대해서 비판을 가하면서도 결국 그들 자신이 그런 문제이 해결책으로 꼽은 것이 근대적이거나 심지어 봉건주의적인 것이라는 건 꽤나 흥미로우면서도 시답잖은 소리인 거다. - 뭐 지금도 그런 일은 비일비재하다만.
그런데 사실 더 큰 문제는 집단의 도덕성이 이런 본질적인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에 결국 개개인의 도덕성으로 눈길을 돌려야 한다는 주장 역시 뜬 구름잡는 건 마찬가지라는 거다. 애시당초 '비범함'이 '평범함'이 되어야 한다는 발상 자체도 우습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런 주장은 절대 다수의 '평범한 이들의 평범한 오독'을 거쳐 모든 사건사고와 문제의 근본원인은 철저하게 개인에게 있다는 쪽으로 흘러가는 것이 매우 '평범한 현상'이란 점이다.
이 시각에 의하자면 세월호 사건도 개인 탓이고 군인과 여고생이 고문끝에 살해당하는 것도 모두 가해자인 개인들의 탓이 된다. 심지어 이 문제를 근본주의 기독교 식으로 해석하자면 신 혹은 신과 동등한 존재로 받들어 모셔지는 이들에게 반대하다는 이유만으로 피해자가 가해자로 둔갑하는 것도 평범한 일이 돈다. 남한 근본주의 기독교인들과 자칭 보수단체 회원이라는 이들이 그런 차원에서 세월호 희생자와 그 가족들을 모욕하고 능멸하는 것이며 그런 똥같은 소리에 동조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것도 또 그런 탓이다.
그런 이유들 때문에 '기분이 드럽다'는 거다. 이렇게 말하면 또 누군가는 그럴 거다. '넌 뭐 특별한 인간이냐'고. 그런 똥같은 소리를 안 들어도 내가 인간이란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결국 어떤 식으로든 인간이 멸종한다면 나도 지구상에서 자취를 감추게 될 건데 난 그게 별로 억울하지 않다는 거다. 그리고 딱 그정도의 차이만 있다는 말이다. 별 거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