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oki

[배틀 로얄] 경쟁.

The Skeptic 2014. 11. 15. 13:54

경쟁을 넘어 적자생존이란 소재를 다뤄서 많은 화제를 모았던 작품이다. 특히 그 표현방식의 적나라함은 더 큰 감흥을 불러왔다.


그런데 정작 그 영화 이후 본격적으로 우리 사회가 적자생존의 질서로 나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우리 사회의 경각심은 그다지 높지 않다. 거의 매일 뉴스에 생활고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의 소식이 전해지지만 변화의 움직임은 약하다. 그래서 난 간혹 그런 생각을 한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비극을 대하는 자세가 너무 자기파괴적이고 자기비하적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말이다. 


이미 수많은 통계들을 통해 드러났고 심지어 극우 매체들조차도 부정하지 못 할만한 사실에 의거하자면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가난으로 인한 비극은 이제 개인의 탓으로 돌릴 수 없는 문제가 되어 버렸다. 실업자로서의 완벽한 조건을 갖춘 이들이 아니라 그저 입에 풀칠하는 수준인 사실상 실업자라는 새로운 통계를 내보니 실업율이 단박이 10%를 넘어섰다는 사실이 그것을 반증한다.일자리를 잡고 돈을 벌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이들이 경제활동가능 인구 10명 중 1명이라는 말이다. 


여기에 덧붙이자면 그나마 있는 일자리라고 해도 대부분이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이거나 계약직으로 넘어가는 추세다. 불안정한 고용과 그 때문에 노동조건은 점점 더 열악해지지만 그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같은 건 없다. 합의는 커녕 노동계급을 적대시하기 위한 극우 파시스트들의 마타도어만 넘쳐나고 있다. 심지어 저번 대선을 통해 드러난 것처럼 국가 최고 정보기관이라는 국정원과 군이 나서서 그런 사회분열 책동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사실 이 정도면 거의 간첩 수준이다. 외부의 간첩이 아니라 내부의 특정 이익집단을 위해 활동하기 때문에 간첩이라 부르지 못할 뿐. 


그런 와중에도 여전히 자신들만의 특권과 특혜를 사수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는 정치집단과 이익집단이 퍼트리는 개구라에 놀아나는 이들이 많다. 저번에도 언급했지만 이들은 스스로를 자유주의자라 자처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아무튼 그들이 자유주의자임을 자처하며 퍼트리는 논리중 하나는 바로 '경쟁만능'이다. 


'경쟁을 통해 발전이 이루어진다'는 주장은 우리 사회에서 꽤나 뿌리깊은 미신이다. 박정희 독재자를 반신반인이란 괴물로 만들어놓고도 숭배한다는 광신도들이 착각하는 것이 있는데 박정희 독재자가 이룩했다는 경제성장은 결코 민간의 자율적 경쟁으로 이루어진 성과가 아니다. 국가권력이 국가개발 *개년 계획같은 대책들을 통해 민간 기업들에게 사업의 내용을 제시했으며 국가의 무력을 이용하여 노동자들과 서민들의 노동력을 착취하여 이루어낸 대규모 계획경제의 성과물이다. 박정희 광신도들이 그토록 싫어한다는 사회주의, 공산주의의 경제체제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경제학자들중 일부가 그런 태도에 대해서 조심스럽게나마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것은 민간 기업들의 경쟁, 그것도 과당경쟁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시장실패란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경제적 여건이 되지 않는 국가들의 경우엔 그런 태도가 하나의 대안으로 기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경제학자들이 이런 견해를 표출하는데 조심스러워 하는 이유는 그런 태도는 역사적인 사례들에 비추어 볼때 거의 필연적으로 독재 체재라는 부정적인 정치체제와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여담이지만 그런 사례를 피해갈 수 없다면 1인 혹은 특정한 소수집단에게 권력이 독점되는 것보다는 대중들에게 권력이 독점되는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더 타당한 것일 수 있다. 물론 이런 견해는 치명적인 약점이 존재하는데 그건 바로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과연 현실에서 어떻게 구현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중국의 경우를 보자. 개방경제를 통해 사실상 자본주의를 받아 들였지만 여전히 정치체제는 사회주의다. 그리고 그들은 명목상으로 여전히 국민이 최고 권력이고 공산당이 최우선이다. 그러나 현실 정치에선 다른 국가들과 다를 바 없이 일부 집단을 향한 권력 쏠림 현상이 발생한다. 프롤레타리아 독재, 즉 노동계급의 독재를 지향한다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의정치체제라는 한계가 존재하는 한 권력의 쏠림 현상을 피해갈 수 없다. 이렇게 되면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다른 정치 체제와 다른 점이 거의 없다. 물론 1인 독재같은 후진적인 형태까진 아니지만. 


각설하고 다시 경쟁 이야기. 시장실패는 엄연히 존재한다. 심지어 그로 인한 후유증은 국가실패에 버금간다. 많은 고전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 발끈할지 모르지만 이건 엄연한 사실이다. 최근 벌어진 미국의 사례를 보자. 미국은 대표적인 자유주의 경제국가다. 그런 미국에서 최근 벌어진 일련의 경제 사태들을 보면 IT거품으로 인한 경제위가, 부동산 거품으로 인한 경제 위기가 대표적이다. 재미있는 건 이 두 위기상황을 국가가 촉발한 적이 없다는 거다. 당연하다. 자유주의 경제를 신봉하는 국가니 국가는 민간기업들의 행태에 별다른 제약을 걸지 않는다. 그런데 고전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 그토록 찬양해 마지않는 시장은 매몰차게 그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전 세계 경제를 위기에 봉착시킬만한 시장실패를 최근 몇 년 사이에 두 번이나 보여주었다. 시장 실패의 여파가 미국이란 국가를 넘어 전 세계 경제까지 위기로 몰고간 셈이다. 


게다가 최근 제기된 또 하나의 가능성. 미국내 학자금 대출이 위험수위에 이르렀다는 지적이다. 자유주의 경제를 신봉하는 국가답게 대부분의 교육기관 역시 민간이 운영한다. 당연히 학자금이 많이 든다. 장학금을 많이 준다곤 하지만 그 장학금 역시 대부분의 학생들이 내는 교육비나 부정기적으로 들어오는 기부금으로 충당하는 것이 보통이다. 모든 이들에게 혜택이 돌아갈 순 없다. 그런 와중에 구직난은 계속되고 있다. 


그로 인한 폐해는 우리에게도 똑같이 드러나는데 바로 학력과잉이다. 굳이 필요하지도 않지만 단순히 스펙을 위해 대학원엘 진학하고 각종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비용을 투자하는 것이다. 미국 역시 마찬가지다. 그로 인한 비용이 필요한데 이미 언급했다시피 미국은 그 문제를 개인이 해결해야 한다. 당연히 그 많은 돈을 가진 이들은 드물고 때문에 빚을 지는 것이 보통이다. 문제는 그렇게 막대한 빚을 진다고 한들 취업에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고 취업에 성공한다고 한들 빚잔치덕에 정상적인 경제생활을 영위하기도 힘들다. 


이건 우리에게서도 공히 드러나는 현상이다. 굳이 미국이 더 문제가 될 상황은 아니지 않을까? 문제는 앞서 언급한 대로 미국이 자유주의 경제체제를 신봉한다는 점 때문이다. 교육과 관련하여 국가로부터 거의 보조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우리보다 더 많은 빚을 지게 된다. 문제는 이 빚을 정상적으로 갚을 수 없는 상황이 늘어난다는 사실이다. 빚을 정상적으로 갚을 수 없는 이들은 결국 개인파산을 하게될 것이고 그 빚은 고스란이 금융권이 떠맡게 된다. 


빚과 그 빚의 책임이 어디에서 발생하여 금융권까지 여파가 미치는가란 점을 제외하면, 즉 IT거품이나 부동산 거품으로부터 촉발된 금융위기, 경제위기 상황에서 벌어진 현상과 유사한 패턴이 반복될 것이란 점이다. 


이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중요한 사실중의 하나는 지금 우리가 처한 사회적 상황에서 이른바 '경쟁'이란 것은 발전을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생존을 전제로 한다는 점이다. 마치 영화 배틀로얄의 경쟁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더 많은 스펙과 높은 학력을 위해 많인 비용을 들여가며 경쟁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경쟁의 결과물은 그저 '취업이냐? 실업이냐?'다. 노동가능 연령, 즉 퇴직연령이 점점 더 낮아지는 추세에 따르자면 취업 이후의 경쟁 역시 퇴직을 강요받지 않기 위한 생존경쟁일 뿐이다. 


물론 그 와중에서 이른바 고용주들이나 오너들, 갑부들은 열악한 노동상황을 이용한 노동착취를 통해 경쟁하고 발전을 이룰 수 있을진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극소수를 제외한 나머지들에게 경쟁이란 발전이 아니라 그저 생존을 위한 것일 뿐이다. 국가가 국민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이들 극소수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런 질서에 대해서 별로 이견이 없을 수 있다. 설령 이런 질서를 숭상하지만 정작 자신은 그 극소수에 포함되지 않더라도 말이다. 


발전이 아닌 생존을 위한 경쟁, 난 그런 경쟁이 왜 남한에서 그토록 찬양을 받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