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
난 김성근 감독을 좋아한다. 하지만 한 편으론 김성근 감독이 참 불쌍하다고 생각되기도 한다. 단지 그의 야구인생이 고달퍼서가 아니다. 재일교포라는 멍에를 그것도 하필이면 폐쇄적이고 국수주의적인 민족주의가 판치는 나라에서 짊어졌다는 사실, 게다가 그런 면에선 여전히 남한의 평균적인 인식보다도 월등히 처지는 운동판에서 져야 했다는 것은 분명 힘든 인생이었으리라. 그러나 사실 그 이유때문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그런 점은 결과적으로 그에게 일종의 훈장이 되었다. 그런 불학무식한 판에서도 소신을 지키며 살아온 것을 지금은 많은 이들이 존중해주기 때문이다. 비록 결과론이란 한계가 있긴 하지만 이것은 칭송받아 마땅한 것이기도 하다. 물론 살다보면 그런 성공을 칭송한다고 해서 마치 개인의 성공을 앞세워 집단적인 문제에 대해서 눈감으려 한다는 불학무식한 주장을 펼치는 이들도 있긴 하다. 이미 내가 앞에서 왜 그런 인생이 칭송받아 마땅한가를 지적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건 이해력이 딸리는 수준을 넘어선 바보같은 짓인데 불행하게도 의외로 그런 이들 꽤 된다. 불행한 점이라면 그런 이들중 상당수가 스스로를 진보라고 자처한다는 점일 게다. 좀비라는 말, 실제로 그런 인물들에게 쓸 수 있다.
아무튼 난 김성근 감독의 개인사에 대해서 불행 혹은 그것을 이겨낸 인간승리라는 표현을 굳이 사용하고 싶진 않다. 그건 알아서 판단할 문제다. 오히려 문제는 그런 과정을 통해 형성된 김성근 감독의 이미지로부터 형성된다.
넥센이 합동훈련 의혹을 받고 있고 그에 대해 선수협이 강경한 발언을 쏟아냈다. 사실 이전부터 예견되었던 문제긴 하다. 웃기는 건 그 문제가 예견되던 시절부터 그에 대한 명확한 기준도 필요하다고 회자되던 사안이다. 그런데 결국 그 일이 터진 거다. 그에 대한 내 입장을 보태자면 난 선수협의 견해를 지지하는 쪽이다.
어떤 이유를 달던 넥센의 훈련 양태는 합동훈련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단지 '사무실리 구장에 있고' 그래서 '오고가는 길에 한 마디씩 해준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은 해서는 안 되는 형태였다. 이건 원칙이다. 그 원칙을 지키도록 권장하고 감시해야할 의무가 있는 선수협이 그에 대해서 가만히 있는다는 게 오히려 더 웃기는 일인 거다.
그런데 정작 많은 매체들이 선수협에 대해서 비난을 퍼붓는다. 그런 식이라면 '구단 사무실이 야구장에 있고' 그래서 훈련을 하는 선수들에게 '코치단이 오가다 한 마디씩 거드는' 모든 훈련 행위는 합동훈련이 아닌 자율훈련이 되어야 한다. 그런 식이라면 자율훈련이 아닌 훈련은 아무 것도 없을 것이며 합동훈련이라는 단어 자체가 사라져야 한다.
합동훈련을 금지하는 방안이 문제가 있을 수 있다면 그에 대한 개선책을 강구하면 될 일이지 이런 식으로 물타기하듯 넘어가려고 드는 건 합동훈련 금지라는 원칙을 무너뜨리려는 행위에 불과할 뿐이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한 우려는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고 우습지만 그 당시에도 별 관련없는 김성근 감독의 이름이 호명되었었다. 빡센 훈련을 시키기로 유명한 김성근 감독이 그 원칙에 동의하면서도 개선책이 나와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어떤 인사는 그런 김성근 감독의 태도를 거론하며 김성근 감독이 조금만 더 세게 나갔더라면 여론이 달라졌을 것이고 선수협이 궁지에 처하게 될 것이라는 불학무식한 소리마저 늘어놓았다.
그런 주장을 펼치는 이는 합동훈련을 금지하는 문제에 대해서 아쉬움을 표하면서도 김성근 감독이 왜 수긍을 했는지에 대해선 전혀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지난 시즌 꼴찌팀인 한화 감독으로 부임했다. 부임해서 보니 선수들의 상태가 너무 안 좋았다고 한다. 감독으로서 당연히 더 많은 훈련을 시키고 싶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수협의 결정을 수긍한 것은 그것인 '원칙'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일하는 기계나 공부하는 기계, 혹은 야구하는 기계가 아니다. 인간에겐 그것말고도 다른 삶이 분명히 존재하며 그것들 역시 보통의 인간들에겐 매우 소중한 삶이다. 선수협의 결정은 그런 기본적인 인간적 권리가 지켜지지 않기 때문에 나온 것이고 김성근 감독 역시 아쉽지만 수긍한 것도 그런 이유다.
그런데 언론사의 기자나 자칭 칼럼니스트란 것들이 이상한 소리를 해대는 거다.
북한식 노력동원 체제나 남한의 군사독재 시절이라면 기자들이나 자칭 칼럼니스트들의 주장이 먹힐 수도 있다. 그런 체제하에서라면 인간은 그저 집단의 목적에 부합하기 위한 소모품으로서 기능하는 것이 일반적이니까. 그래서 되려 난 반문하고 싶다. 그런 시절로 회귀하자는 건가? 박그네가 대통령이 되고 나서 정치가 퇴행하니까 세상이 모두 그에 맞춰 퇴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은 건가?
미안하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거다. 아니 적어도 그런 퇴행적인 행보가 아무런 저항없이 이루어지는 세상은 쉽게 오지 않을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세상이 그렇게도 좋다면 더 좋은 방법이 있다. 이미 그런 질서가 구현된 곳에 가서 살면 된다. 그리고 그런 곳은 아주 가까이에 있다. 당신들이 사는 곳에서 북쪽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된다.
p.s.
아쉬울 순 있다. 나도 인정하는 바다. 제 아무리 좋은 제도나 원칙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처음 시행되고 안정화되려면 익숙해지는 시간이 필요하고 그 기간동안 혼란이 발생하는 건 필연적이다. 당연히 아쉬울 거다. 그러나 원칙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원칙까지 공격할 필요는 없는 거다. 원칙을 공격하는 건 다분히 정치적인 언동이 되지만 방법을 공격하는 건 다같이 잘 해보자는 긍정적인 문제제기가 된다.
그래도 나름 좀 배웠다는 기자나 칼럼니스트들이라면 최소한 이 정도 구분은 해줘야 하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