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테러에 대한 단상.
먼저 전제해야할 것이 있는데 그건 바로 '표현의 자유'가 절대적인 게 아니라는 거다. 종교적 광신이나 실질적 문맹인 이들이 아니라면 누구라도 금방 알 수 있을 거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사회란 여러 가지 이해관계와 관습적 친목관계같은 여러 가지 관계망으로 연결된 인간 집단을 의미한다. 따라서 사회란 늘상 인간 개개인간 혹은 개인 대 집단, 집단 대 집단간의 갈등을 낳는 것이 일반적이고 '표현'의 문제 역시 그런 갈등관계중의 하나에 불과하고 때문에 다른 갈등과 마찬가지로 상호 합의된 적정선을 허용치로 인정하는 것이 보편적인 해결방식이다.
물론 그 허용치라는 것 역시 절대적인 것은 아니기 때문에 늘상 새로운 발전, 발견에 따라 변화의 여지가 크게 마련이다. 그래서 '표현의 자유, 사상의 자유'가 인간 사회의 발전을 위해선 다소 광범위한 형태로 인정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자유가 인정되지 않고 단지 허용치에만 집중하는 건 보수적인 게 아니라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극우 파시스트적 행동일 뿐이다.
그렇다고 내가 일베나 국우 파시즘 단체들의 행동도 용인되어야 한다고 보는 건 아니다. 그들은 이미 한 사회가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수준을 넘어선지 오래이며 사회의 발전은 커녕 퇴보를 주장하는 인종차별주의자들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 테러가 발생했다. 설왕설래 말들이 많다. 누군가는 테러라고 주장하며 표현의 자유를 위해 샤를리를 옹호하는가 하면 다른 누군가는 그간의 샤를리의 행적이 표현의 자유라는 범위를 넘어섰노라고 주장한다.
그에 대한 내 개인적인 견해는 사실 '모르겠다'가 정답이다. 일단 난 샤를리가 뭐하는 언론사인지도 모르겠고 그나마 접할 수 있는 정보는 그간 그들이 출판했다는 만평들이 전부인데 대충 훓어봤지만 글도 모르겠다. 어떤 것들은 그냥 그럭저럭한 보통의 비평들인 반면 어떤 것은 사실관계를 왜곡한 것들이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차라리 촘스키의 비판이 더 설득력있다고 본다.
그렇다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이 그런 쪽인 건 아니다. 사건 직후 프랑스 언론들을 통해서 나온 주장들중 가장 설득력있는 건 이번 사건은 이슬람의 테러가 아니라 '프랑스이 실패'라는 지적이다.
이미 수년전 벌어진 대규모 폭동사건을 통해서 낱낱이 까발려진 틀레랑스의 나라 프랑스의 맨 얼굴을 상기해보자. 이슬람계 이민자들의 삶은 프랑스의 평균보다 현저히 낮다. 높은 실업율과 가난, 부족한 교육에 만성적으로 시달리는 것이 그들의 구조화된 일상이다. 그런 세상에서 살면서 쌓인 불만이 극단주의와 결합되어 드러난 것이 수년전 벌어진 대규모 폭동이며 이번 테러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이런 일들이 벌어질 때마다 내가 거의 반복적으로 주장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그런 문제를 해결한다고 해서 이런 사태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보진 않는다. 세상엔 상식으로 판단하기 힘든 인간들도 늘 존재해왔으니까. 다만 문제를 해결하든 예방하든 우리가 먼저 돌아봐야할 것은 이 지점이라는 거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를 도외시한 채 단순히 개인적인 각성이나 반성을 통해 문제를 해결 혹은 예방하겠다는 발상은 사실상 문제를 방치하겠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물론 아예 불가능하다는 말은 아니다. 전 세계를 통틀어 그런 문제를 후자의 방법을 통해 해결하고 있는 국가가 하나 있긴 하다. 바로 북한이다. 불행히도 북한은 인성의 발전이나 각성이 아니라 인성 자체를 말살함으로서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는 점에선 아주 다르지만 말이다.
물론 가장 좋은 것은 그런 구조적인 문제와 함께 개인적 각성을 위한 방법이 함께 실행되는 것일 게다. 결국 인간사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문제는 가난을 극복하도록 만드는 것과 교육으로 대부분 예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