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가르쳐야할 가장 중요한 덕목?
나이가 나이다보니 주변에 결혼한 이들도 많다. 물론 안 한 이들도 만만찮게 많아 보인다만 사실 그건 착시현상이다.
결혼을 한 이들과 아직도 싱글인 이들의 생활양식은 눈에 띌 정도로 큰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 따라서 뭐든 결혼이라는 기준에 따라 만나는 이들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즉 내가 결혼 안 한 이들도 만만찮게 많다라고 느끼는 건 단지 나 역시 결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미혼자들과 더 자주 만난다는 의미일 뿐이다.
그런데 어쩌다가 기혼자와 미혼자들이 함께 모일 때가 있다. 물론 모여봐야 공통점은 많지 않다. 기혼자들은 아이들이 제일 큰 관심사지만 미혼자들이 그런 것에 관심이 있을리가 없지 않겠나? 그래서 대화가 겉도는 경우들이 많은데 의외로 난 그런 거리감을 크게 느끼지 못 한다. 기혼자들이 하는 아이들 걱정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간혹 결혼한 것들이 신기하게 여기기도 하는데 내 대답은 아주 간단하다.
"올챙이 적을 생각해봐."
지금은 다들 이제 나잇살들이 붙기 시작할 아저씨들이지만 그들도 30년전에 콧물 질질 흘리며 엄마를 애타게 찾던 그 핏덩이들이었고 초딩이 되었다가 질풍노도의 시기라는 중고딩을 거쳐 대딩을 거쳐 지금 이 자리까지 와있는 거다. 그리고 그들의 아이들 역시 그런 과정을 거쳐 약 30년쯤 후엔 우리와 똑같은 고민을 갖고 살아갈 거다.
물론 사회라는 객관적인 환경은 지속적으로 변화할 테니 고민거리들이 달라질 가능성은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 즉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여전히 한 인간이 나고 자라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덕목들중 몇 가지는 변하지 않을 가능성이 더 크다. 그 이야기다. 얼마전에 결혼을 하고 아빠가 되었지만 여전히 아직도 어른은 되지 못한 것들과 나눈 이야기기도 하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인데 만약 누군가가 '아이를 키우면서 가르쳐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 뭐냐?'고 묻는다면 난 '독립심'이라고 답할 거다.
많은 부모들이 부모의 사랑이란 이름으로 아이들에게서 이걸 빼앗아 가는 경향이 크다. 사소하고 자잘한 일 하나도 아이가 혼자 하는 걸 지켜보지 못 하고 이리저리 개입하고 부모의 뜻대로 만들려고 한다. 그들은 그게 아이를 올바른 길로 인도한다고 보는 모양이다. 그러나 그건 틀린 생각이다.
이건 비단 아이의 교육과 관련된 이야기만이 아니다. 한 인간이 온전히 하나의 독립딘 인격체로서 인생을 꾸려갈 수 있는가라는 문제와도 직결되는 사안이다. 즉 인간이 되는가 그렇지 못한가라는 문제기도 한 거다.
난 어려서부터 요즘 말로 하면 '시크하다'는 의미의 평가를 자주 받은 편이다. 그런데 사실 그 시크함의 최소 절반 이상은 시크하거나 무관심한 게 아니라 그걸 가장한 무책임이었다. 어떤 일을 만들거나 벌려서 일어날 결과물에 대한 책임을 지기 싫어서 애시당초 그 일을 시도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시크하고 무관심하고 귀찮은 게 아니라 겁도 나고 두려워서 무책임해지고 싶었던 거다. 그렇게 어떻게든 최대한 미루고 미루다가 도저히 도망갈 구석이 없으면 꾸역꾸역 해보는, 한 마디로 도망다닌 것이다.
그런 삶을 사는 이들에겐 그런 행위를 정당화할 핑곗거리가 적어도 한 트럭정도는 있다. 그런데 본인들도 안다. 그 핑곗거리로 가득찬 트럭의 짐칸을 다 털어내봐도 나름 타당한 이유라고 할만한 건 정말 몇 개 안 된다는 걸 말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독립심은 책임감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그렇다면 어려서부터 책임감에 대한 교육을 잘 받으면 독립심이 길러질까? 그렇진 않다. 오히려 책임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부모의 슬하에서 자란 아이들은 독립심이 떨어지기도 한다. 이유는 그들이 강조하는 책임이 잘못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잘못된 책임의 대표적인 사례는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는 거다. 잘못된 말은 아니다. 누구나 알 수 있는 상식적인 수준의 민폐라면 당연히 하지 않아아 한다. 이걸 제대로 구분하지 못 한다는 건 아예 가정교육 자체를 받지 못 했다는 의미고 사회성 자체가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인간으로서, 특히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가치가 바닥까지 떨어지는 거다. 이미 우리는 그런 것들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일베'라는 버러지들 말이다.
문제는 타인에 대한 민폐라는 기준점이 애매하다는 거다. 인간사 대부분이 그렇듯이 세상엔 수많은 사람이 있고 그 사람들의 숫자만큼이나 다양한 기준과 가치관들이 있다. 그 모든 가치관들이 모두 공감하는 교집합같은 건 사실 아주 찾기 힘들고 그걸 모두 맞춘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그런 부분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아이의 가치관은 왜곡된다. 지나친 자기비하에 빠져서 아무 것도 시도하지 않거나 아니면 지나친 이기주의자가 되어 거절당하는 걸 무슨 대단한 모욕으로 여기는 인간이 되는 거다.
책임이란 것도 인간의 일이라 그만큼 애매한 개념인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순하게 설명할 수도 있다.
"멋진 이성을 만나면 사귀어 보자고 대시해라. 거절할 걸 생각하고 지레 겁을 내거나 도망칠 필요는 전혀 없다. 다만 상대방이 너의 대시를 계속해서 거절하거든 미련없이 '실례했습니다'라고 말하고 물러나라. 그 거절에 대해서 앙심을 품을 것도 없고 미련을 둘 것도 없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난 이게 책임감이라고 본다. 본인에 대한 그리고 상대방에 대한 책임감인 거다.
수미쌍관의 법칙에 따라서 다시 처음 했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기혼자와 미혼자. 내 주변엔 미혼자들이 많다. 내가 미혼자이기 때문에 아주 당연하게도 주변에 미혼자들이 많은 것이고. 그리고 그 많은 미혼자들중 나름 정당한(...) 사유로 미혼자인 것들은 두어명 정도밖에 안 된다. 심지어 나조차도 그 범주에 들어가지 못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