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이런 류의 논란은 이미 많이 겪은 바가 있다. 우습지만 오히려 체제로부터 기인한 적대관계가 강하던 시절엔 큰 문제거리가 안 되던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질서가 무너진 세상인데다 정치경제학적으로 애매한 남한의 입장 때문에 논란이 가열되는 추세다.
그래서 이런저런 말들이 많은데 사실 크게 변한 건 없다. 비록 중국이 개혁개방 정책을 취하면서 경제적으로 미국과 비슷한 위치로 올라서려는 상황이고 우리도 그 질서에서 많은 이익을 보고 있는 건 맞지만 우리가 미국에게 호구잡힌 상황이라는 건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사드의 남한 배치를 둘러싼 설이 수면으로 드러난 상황에서 미국과 중국은 늘 그렇듯 꽤 갈등을 겪을 것은 자명한데 만약 그런 갈등관계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밀어붙이겠다면 호구잡힌 남한은 그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 상황에서 또 일부 사람들은 그런 질서로부터 탈피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문제는 그 주장들중 일부가 미국으로부터의 독립과 중국과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권으로의 편입이라는 점이다. 그럴싸해 보이긴 하지만 사실 현실적인 의미는 거의 없다. '호구를 잡혔다'는 건 도망갈 틈도 없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만약 호구잡힌 상태에서 도망가려면 사실 상당한 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법인데 상대가 여전히 여러 모로 세계 최대 강국인 미국이라면 그 부담이 얼마나 클지 사실 상상하기도 힘들다.
결국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자세는 '아무런 선택도 하지 않는 것'이다. 즉 이 문제와 관련된 책임 소재를 미국과 중국으로 미루면서 별다른 의사를 표출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 둘 사이의 중재안 혹은 일방적인 결정에 따라 가면 된다. 사실 국가간의 힘겨루기에서 약자인 이들이 취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지 싶다.
반면 다른 의미의 독립은 여전히 가능하다. 자주 언급한 바지만 남한이 한반도 평화구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어차피 우리가 미국으로부터 호구를 잡히는 데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은 북한이다. 속내는 어떨지 모르지만 각 이해당사국들은 한반도의 평화를 원한다고 한다. 일단 명목일지 모르지만 적어도 좋은 명분인 건 맞다. 그 명분에 맞춰서 주도적으로 남북간의 대화와 교류를 이어간다면 미국이 잡고 있는 호구로부터 보기좋게 탈출할 수도 있으며 향후 비슷한 일이 벌어지더라도 같은 이유로 정중하게 거절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것이다.
물론 적어도 근 시일내에 그런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이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것이 싫고 부담스럽다면 이런 대책도 가능하다는 거다. 개인적인 생각을 말하자면 남한이 한반도를 둘러싼 이해당사국들 사이에서 나름 독립적인 지위를 차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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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안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