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시스템. 2.
'신뢰'를 만들어 내는 '신뢰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를 적었다. 그렇다면 대관절 남한이라는 나라는 그 시스템이 얼마나 엉망이길래 이토록 불신의 사회가 된 것일까. 그런데 웃프게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그렇지 않다'가 정답이다.
우리가 북한이라 부르는 나라의 정확한 명칭은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이다. 근대이후로 국가라는 개념이 적극적으로 차용되기 시작한 이래 국가를 규정하는 단어들중 가장 좋은 것들이 모두 담겨 있는 이름이다. 그렇다면 북한 근대이래로 가장 나은 국가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이름만 번지르르한 3대 세습 체제의 독재 국가가 북한의 실체다.
우스운 건 남한의 상황도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거다. 대한민국이 출범한 이래 헌법에서 민주주의가 빠졌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다까끼 마사오가 군대이끌고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도 그 후예인 두환이가 똑같은 짓을 하고 광주에 군대를 보내 국민들을 학살했을 때도 남한은 민주주의 국가였다. 명색과 내용이 다른 것, 그러니까 과자를 샀는데 질소 값을 지불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고 이것이 신뢰를 붕괴시키는 것이다.
일베가 KBS의 정식 기자가 되었단다. 사람들은 분노했다. 그런데 KBS는 이렇게 말한다. '법적인 차원에서 볼때 임용을 거부할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그랬더니 혹자는 그런 저간의 자세한 내막을 모른 채 KBS를 매도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한다. 그리고 사실 이런 류의 이슈가 있을 때마다 그런 사람들은 늘 등장하는 편이다. 그 의견들중 일부는 사안에 따라 타당하기도 하지만 만 그런 주장들이 늘 놓치는 부분이 있다.
그건 바로 '법적인 문제때문에 그런 일을 할 수가 없다'는 사실 자체다. 물론 대중들이 그 사실을 모두 다 알고 있을 가능성은 없다. 그러니 이런 일이 벌어질 때마다 사람들의 분노는 더욱 커질 수 밖에 없고 좌절감도 깊어지며 불신의 골이 깊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바로 그런 자세한 내막을 아는 이들은 무슨 소리를 해야 할까? '법적으로도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을 해야하는 게 아닐까. 조금 더 바라자면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알려주는 것이 더 좋을 것이고.
밀양에서 한 여고생이 동네 쓰레기같은 고딩 새끼들에게 윤간을 당했다. 그런데 정작 피해자는 그 곳을 쫗기듯 떠나야 했지만 그 범죄자 새끼들은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심지어 동네 정신나간 늙은 이들은 피해자를 비난하기에 바쁘다. 피해자에게 2차, 3차의 피해가 가해지도록 국가와 사회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것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국가나 사회가 그런 걸 나서서 할 의무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방기한 것인데 사람들은 그걸 보며 사건 그 자체보다도 부실한 처리에 더 불안감을 느낄 수 밖에 없고 이런 시스템의 미비는 신뢰의 붕괴를 불러온다.
신뢰시스템이 다른 나라보다 나은 국가들의 특징은 사회적 소수자들이 곤경으로 내몰리지 않도록, 피치 못 하게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사건 사고들로부터 피해자들을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그것을 법적으로 시스템으로 규정하는 나라들이다. 그들, 사회적 소수자와 피해자들이 단지 소수라는 이유만으로 방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적극적으로 보호하지 못 함으로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사회적 불안감과 신뢰의 붕괴를 걱정하는 나라들인 거다.
그런데 정작 남한이란 나라는 소수자들과 피해자들이 소수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의 인권을 사실상 방치하는 행동을 하고 있다. 겉으론 그런 태도에 대해서 효율성이란 이름으로 동의해주는 것처럼 보이는 국민들도 실은 마음 한 켠엔 언젠가 자신도 그런 처지로 전락할 수 있다는 불안감을 갖을 수 밖에 없다. 때문에 그런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자기만은 어떻게든 살아 남아야 한다'는 극단적인 생존의식을 갖게 될 것이고 그런 극단적 이기주의는 사회의 질서를 더욱 무너뜨릴 것이고 피해자와 소수자는 더 늘어날 것이다. 악순환이 반복되고 심화되는 거다.
소수자와 피해자의 적극적인 보호가 단순히 비용의 문제를 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신뢰 시스템을 유지시켜준다는 측면에서 볼때 더 이득이라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