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cografia

정착용 그리고 몇 가지 이야기.

The Skeptic 2015. 4. 17. 01:47

1.

자꾸만 같은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 같은데 솔직히 조금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다. 


얼마전 퇴근길에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가는 길에 깜빡 조는 바람에 한 정거장인가를 더 가버렸다. 거리상 얼마되지도 않고 이젠 경험하긴 힘든 포근한 봄날 저녁이고 해서 그냥 천천히 걸어가보자는 마음에 역밖으로 나왔다. 그 나가는 길에 에스컬레이터를 탔는데 내려오는 방향 에스컬레이터에서 헤드폰을 착용한 남자 하나가 보이더라. 


그 쪽에 관심이 있다보니 헤드폰을 착용한 사람을 보면 괜히 반가운 마음에 유심히 쳐다보게 된다. 이어폰의 경우는 헤드폰보다 그렇게 크게 반갑진 않은 게 기본적으로 비싸고 좋은 헤드폰은 많이 볼 수 있지만 비싸고 좋은 이어폰을 쓰는 사람은 거의 본 적이 없기도 하거니와 겉으로 봐선 구분이 쉽지 않기도 하다. 그냥 내가 쓰는 걸 쓰고 있는 사람을 보면 반가울 것 같은데 불행히도 아직까지 한 명도 보지 못 했다는 게 함정. 


아무튼 그런데 사실 대부분은 내가 싫어하는 닥터 형님네 꺼거나 그 기술력으로 왜 그런 소리를 내는지 안타까운 소니의 제품들이 대부분이고 최근 들어 무선 블루투스가 유행하는 덕에 JBL도 간간히 보게 되는데 불행히도 난 JBL도 별로긴 하다.


여담이지만 JBL블루투스를 살 돈이면 그냥 그라도를 사서 집에서 즐기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긴 한다. 그런데 사실 이런 평가는 아주 무의미한데 '그거 살돈에 돈을 조금 더 보태서'라는 게 계단처럼 계속해서 상승하게 된다는 점 때문이고 그런 식의 상승이 가능할 정도로 사실 유사한 성향을 지닌 헤드폰도 많다. 그러니까 JBL 블루투스 살돈에 조금 더 보태면 어지간한 그라도를 살 수 있고 그 돈에 조금 더 보태면 쓸만한 젠하이저가 가능하며 여기에 더 보태면 울트라손이 가능해진다는 식이다. 그러다 보면 끝도 없게 되는 거지. 무의미함 갑. 


날도 많이 풀려서 이젠 대부분 헤드폰을 벗고 이어폰으로 갈아타는 철이라 반가웠고 당연히 뭘 뒤집어쓰고 있나 유심히 봤다가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었다. 일단 그 헤드폰은 나도 가지고 있는 헤드폰이었다. 그래서 나름 잘 아는 헤드폰이기도 하다. 요다현상이 심각하고 오래 쓰고 있으면 정수리 눌림현상도 만만찮은데다 소리도 좋기는 한데 내 취향상 오래 듣기가 힘든 축인지라 밖에선 자주 사용하지 않고 대부분 집에서 듣는 편이다. 그래도 가지고 있는 기기다 보니 다른 것들에 비해선 더 잘 알고 있는 헤드폰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사람은 그걸 좌우를 뒤집어 쓰고 있더라. 일반적인 다른 헤드폰들이라면 좌우를 바꾸어 써도 그다지 큰 문제가 발생하진 않는다. 조금 어색하긴 할 거다. 원래 들려야 하는 쪽 반대 쪽에서 소리가 날테니까 그래도 조금 무심한 사람이라면 그냥 넘어가 줄 수 있을 만한 수준이다. 그런데 그 헤드폰은 그렇게 쓰면 안 된다. 음색 자체가 확 바뀌기 때문이다. 일단 음량부터 작아지고 마스킹 현상이 심해지며 해상도도 심각하게 낮아진다. 그냥 싸구려 헤드폰 수준으로 떨어진다고 보면 된다. 


울트라손 프로 900이야기다. 울트라손을 써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이어패드를 벗겨보면 다른 헤드폰들과는 다른 드라이버 구조를 만날 수 있는데 가장 큰 특징은 드라이버 전체가 오픈된 형태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막혀있고 한 쪽 방향, 정확히 말하자면 이어컵 앞쪽의 아래쪽으로 오픈되어 있는 걸 볼 수 있다. 소리가 나오는 방향이 의도적으로 편중되어 있는 것이다. 당연히 헤드폰 좌우를 바꾸어 쓰면 소리가 확연히 달라질 수 밖에 없다. 


그 변화는 너무나 확연해서 눈치채지 못 한다는 게 더 힘들다. 퇴근길이고 너무 피곤하다보니 그냥 넘어가 버린 것이라 생각하고 싶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사실 그건 불가능하다고 보지만) 솔직히 안타까운 일이다. 


2.

앞서도 말했지만 울트라손 헤드폰은 여러 모로 상당히 신기한 기기에 속한다. 기본적으로 완전 내 취향이라고 하긴 힘들다. 분명 소리 자체는 매우 좋다. 게다가 해상도도 아주 높다. 그런데 튜닝 자체가 조금 신기한 편이다. 


플랫이라고 보긴 힘들다. 그렇지만 고음 강조, 저음 강조형은 더더욱 아닌데 그렇다고 고음 저음 모두 강조라고 하기에도 조금 애매한데 이런 성향의 음색의 경우 대체로 보컬을 잡아 먹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니까 한동안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불행히도 지금은 단종된 트리플파이 이어폰처럼 중음역대가 다소 뒷쪽에서 들리는 듯한 현상이 벌어지는데 신기하게 울트라손은 그런 현상을 거의 느낄 수가 없다.(어떤 이는 그런 현상이 있다고 하더라만 난 못 느끼겠더라는 거지)


저음은 퍼지는 것보다는 단단하게 들리고 고음도 상당히 강조된 편인데 중음역대도 놓치지 않는다는 거. 그러니까 일반적으로 플랫이란 특성을 보여주는 기기를 일괄적으로 조금 더 높은 키에서 작동하도록 만들었다고 보면 될 듯 싶다. 더 쉽게 말하면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를 때 원 곡보다 키를 더 높게 설정한 거라고 보면 될 듯. 그런 소리 성향을 보여준다. 약간 매니악하게 설명하자면 ER4S가 아닌 ER4B의 소리를 듣는다고 보면 될 듯 싶다. 


어쨌든 그런 성향탓에 소리가 조금 더 밝고 쨍하게 들리는데 사실 그게 경우엔 따라선 사람을 피곤하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 나 역시도 그런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래서 사실 아웃도어를 잘 안 한다. 처음엔 좋았지만 나중에 귀가 피곤해졌는데 대체할 헤드폰마저 없다면 난감하지 않겠나. 


그래도 언젠가 부자가 되면(...) 지금 가지고 있는 것보다 상위 모델을 꼭 한 번 사보고 싶긴 하다. 뭐 사실 그런 게 하나둘이겠느냐마는 아무튼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