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과학적인 사고.
남한에서 인문학만큼 오해를 사는 학문도 없을 거다. 대개의 사람들은 인문학을 무슨 '도닦는데 쓰는 용도'정도로 파악한다. 그건 나름 배웠다는 이들도 다를 바 없으며 특히 근대적 사고관에 빠진 이들일수록 더 심하다. 문제라면 그런 철두철미한 근대론자들이 우습게도 근대론자나 계몽주의자가 아닌 척 한다는 거다. 탈근대론자가 인문학을 신학 취급하는 우스운 세상인 거다.
그런 이들이 과학적 사고를 강조하면 사실 더 이상 할 말이 없을 지경이다. 난 그 쯤에서 가장 궁금해지는 것이 그들이 언급하는 바 과학이 어떤 것인가 하는 점이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아주 당연하게도 자연과학 수준을 언급하는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문제는 그렇게 따지면 제한적인 의미로라도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 모든 학문은 모두 신화 수준이 되어야 하는데 여기엔 인문학만 들어가는게 아니다. 경제학과 경영학, 정치학, 행정학을 비롯한 이른바 문과라고 불리는 모든 학문, 즉 정답이 아니라 확률의 문제를 논하는 모든 학문이 포함된다.
이 쯤에서 더 웃기는 상황이 벌어지는 건 이들이 이른바 '통섭'을 언급한다는 것이다. 과학을 강조하며 인문학을 신화 수준으로 치부하는 이들이 그런 신화를 과학과 합쳐서 보자는 소리를 하는 거다. 결국 이들은 인문학이란 신화를 과학을 통해 구원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는 거다. 완전무결한 근대주의자다.
그리고 이 정도에 이르면 난 자연스럽게 서열를 부르짖었던 근대의 악마를 떠올릴 수 밖에 없다. 그들은 스스로 과학적인 사고를 한다고 주장할지 모르지만 그건 전적으로 그들의 주장이다. 그리고 한때 전 세계를 전쟁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던 파시스트들도 스스로를 과학적인 존재라고 자부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