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시위와 여성혐오.
이번 촛불시위는 의외로 많은 것들이 드러나는 계기가 되고 있다. 물론 목표는 하나지만 그 목표를 향해 가는 와중에 벌어지는 사건들이 더 많은 것을 알려주고 있는 셈이다.
잘 알려진 것은 아니지만 내가 가장 심각하게 보는 문제가 바로 시위현장에서 벌어지는 성폭력이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그와 관련된 문제제기를 공개적으로 하고 있으며 많은 남성들이 그런 일이 벌어지면 공개적으로 도움을 요청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그러면 당장 참전하겠다며 말이다.
그리고 바로 이 미묘한 시각차이가 현재 우리 나라의 남성과 여성의 사회적 조건의 차이, 그리고 그로부터 파생된 행동양태까지 가른다. 남자들은 말한다.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라고. 하지만 여성들은 그런 도움을 받아본 경험이 없다. 그런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현재의 불안을 이겨내라는 건 사실 굉장히 어려운 주문이다.
진보임을 자처하는 남자들조차도 이 미묘한 물질적 조건의 차이와 인식의 차이를 잘 인지하지 못 한다. 만약 그런 부분까지 인지할 수 있다면 시위현장에서 '성폭력을 당하지 않도로 도와드린다'라는 형태의 플래카드나 깃발을 들고 다닐 수 있을 것이다. 불행한 사실이지만 아직도 여성들은 그런 사건사고들을 공개하는 것이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못 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먼저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지 않는다면 계속 그럴 것이다.
두번째도 비슷하다. 시국이 시국이라 음악인들의 의사표시조차 많아졌는데 그 와중에도 여성혐오가 논란이 되고 있다. 개인적으로 래퍼인 산이의 경우는 제외한다. 솔직히 말해서 뭐라 더 언급할 필요성을 못 느끼기 때문이다. 난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그의 마음을 믿는다. 하지만 그 마음이 닿아있는 방향이 나의 그것과는 꽤나 차이가 있다고 느껴진다. 물론 고작 노래 하나로 그런 것을 판단한다는 건 무리일 거다. 하지만 그 노래 하나만 놓고 판단하자면 그렇다.
반면 적지않은 수의 사람들이 지적하는 바 그가 '외국인이라서'라는 부분엔 동의하지 않는다. 국적 문제와 이건 아무런 관련도 없다. 그런 식이라면 우리 역시 다른 나라의 문제에 대해서 언급할 이유도 필요도 없으며 그건 같잖은 오지랍이 될 뿐이다.
이 부분과 관련된 이슈는 아마도 DJ.DOC일 것이다. 공개한 음원이 여성혐오 논란에 빠졌고 오르기로 했던 무대도 취소되었다. 일단 그 과정에 대해서 난 아무 문제도 없다고 본다. 명백히 그 문제와 관련된 권한은 무대 행사를 준비하는 쪽에 있고 그 판단은 존중되어야 하니까.
꽤 많은 이들이 자유, 그리고 표현의 자유를 언급하며 이 부분을 비난하지만 그렇게까지 넘겨짚을 문제 아니다. 심지어 그들중 일부는 그 사건이 파쇼적이라고 칭하지만 그 사건을 그런 식으로 지칭하는 것도 파쇼적이기는 마찬가지다.
이건 그냥 실무적인 문제고 그 실무적인 차원에서 나온 선택에 불과하다. 고작 그런 수준의 선택에 대해서 파쇼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것 같으면 세상의 모든 선택은 모두 파쇼적일 수 밖에 없다. 내 의견의 정당함을 나타내기 위해 타인의 의견을 파시스트로 몰아가는 것만큼 파시스트적인 행태도 없다는 걸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여성 혐오는 어떨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난 여성 혐오라고 본다. 이건 단순히 여성을 비하하는 표현이 삽입되어 있다는 문제가 아니다. 거듭 강조하지만 이 문제는 <대통령>의 문제지 <여성> 대통령의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DJ.DOC는 문제의 층위를 전자가 아닌 후자의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대통령으로서 자질도 부족하고 자각도 부족하여 발생한 국정농단 사건인데 마치 그 원인이 그가 여성이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흘러가도록 되어버린 거다. 그런 발상 자체가 이미 만연한 여성혐오의 발현이기도 하거니와 그런 가사를 적시함으로서 또 한 번 그런 현상을 확대 재상산하게 되는 것이다. 고로 이건 여성 혐오 현상인 거다.
그렇다고 내가 특정 대상을 지칭하는 관습적인 비하표현 자체를 부정하는 건 아니다. 부정하는 게 맞고 사라지는 것이 가장 최선이지만 불행히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다. 다만 그 와중에도 조심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면 그런 관습적인 비하표현 역시 대상이 약자인가 강자인가에 따라 실질적인 위협이 될 수도 혹은 그저 농담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여성 혐오 역시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에 들어가니까.
그런 표현을 농담이라고 하지 마라. '기울어진 운동장'이란 조건에서 보면 그건 충분히 위협적인 표현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부분에 대해서 여성들이 항의하지 않는다고 문제될지 몰랐다라고도 하지 마라. 어느 사회든 약자들의 대부분은 자신에게 가해지는 부당한 대우에 대해서 참고 인내하는 것이 더 이득이라는 걸 알고 있다. 만약 그걸 정말로 몰랐다면 그건 너의 인권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감수성이 바닥이라는 증거일 뿐이다.
- 나도 이 나라에서 나고 40년넘게 살아온 남자다. 그래서 오히려 잘 아는 거다. 억울할 수 있다. 하지만 잘 알아야 한다. 뒤집어 말하면 '몰랐어요'라는 말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그런 부당한 처사들에 대해서 몰라도 될 정도로 큰 문제없이 살아온 이들이 갖고 있는 일종의 특권이라는 걸 말이다. 이 나라에서 태어난 여성들 절대 다수는 아예 그런 권리가 주어지지 않았고 그것이 불평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