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만원
살다보면 자신이 그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동안 무엇을 하며 살아왔고 어떤 것들이 얼마만큼 쌓였는지 그리고 그것들이 똥인지 된장인지 궁금해질 때가 있습니다. 비위가 상할지라도 위험을 무릅쓰고 다시 한 번 찍어 먹어보고 싶어지는 순간이지요. 이 사건들은 오랜 고민 끝에 찾아오기도 하지만 대체로 그 시작은 아주 소소한 일상사인 경우가 많습니다. 고고하신 철학적 고민 따위보다 더 실감나기 때문입니다.
요 며칠 사이 핸드폰이 말썽을 부렸습니다. 어디가 어떻게 고장인지 알 도리가 없지만 가끔 핸드폰이 밥을 줘도 배가 고프다고 투정을 부립니다. 밤새 충전을 해주어도 마찬가지더군요. 생각해보면 그럴 법도 합니다. 어느새 그 녀석의 나이도 2년 정도 후면 이제 열 살이 되어가는 때문이죠. 그 사이 별 탈없이 건강해준 것이 고마울 뿐입니다.
그래서 슬슬 새로운 핸드폰을 하나 장만할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 이틀 전. 약 3년 정도 나름대로 나잇값을 해보겠노라고 열심히 일을 하긴 했지만 여전히 내 나이 또래의 평균적인 남성들의 재산상태에 비하면 턱없이 모자라는지라 핸드폰 가격은 만만치가 않더군요.
그 때 내 눈에 띈 단어 하나 ‘보/조/금’, 그렇습니다. 그 제도가 대한민국 경제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하는 문제는 일단 뒤로 제쳐두기로 했습니다. 달랑거리는 은행잔고와 곧 숨이 넘어갈 것 같은 핸드폰이란 무시못할 딜레마때문입니다. 그래서 여기저기 뒤져 내 보조금이 얼마나 되는지 알아봤습니다.
“8만원”
우습게 생각할 금액은 결코 아니지만 그래도 이제 곧 열 살이 되어가는 핸드폰과 함께 축적한 시간의 결과물이라 보기엔 좀 섭섭. 알뜰살뜰 살아온 탓일까? 나태했기 때문일까? 그도 아니라면 어떤 이유? 살짝 고민됩니다.
어찌되었든...
지금 핸드폰과의 이별은 어떻게든 다음으로 미루어야 하는 것은 확실해졌습니다.
그러니 가능하면 둘이서 예전과 다르게 좀 살아보자...
그동안 정말 고마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