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은 늘 시궁창

'사실'

The Skeptic 2007. 7. 26. 02:48

나는 남자다. 고로 스포츠를 좋아하는 편이다. 그리고 역시나 직접 하는 것보다는 소파에 편안하게 모로 누워서 리모콘 하나 들고 과자 씹으며 보는 것을 즐긴다. 지금부터 나는 스포츠에 관해서 나와 비슷한 취미(?)를 갖고 있는 많은 이들이 공감할 만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축구경기를 보다 보면 환호성 바로 뒤에 탄식이 뒤따르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는 대체로 슛을 했는데 공이 골네트의 옆그물을 때리는 경우에 발생한다. 그것도 시야에서 먼 쪽의 옆그물일수록 확률은 높아진다. 이른바 착시현상이다. 더해서 응원하는 팀이 안타깝게 지고 있는 상황이라면 착시현상은 더욱 빈번할 수 밖에 없다. 대체로 TV를 통해 전해지는 축구경기는 여러 각도에서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고정된 한 쪽 시야를 통하기 마련이다. 그것은 오랜 시간동안 쌓인 중계의 노하우로 모든 장면을 가장 잘 보여주는 각도일 확률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종류의 착시현상은 피해갈 수 없는 불가항력이다.

 

야구의 경우도 비슷한 경우가 있다. 야구는 주로 투수의 등뒤 오른 쪽 옆에서 타자와 포수를 한꺼번에 잡는 각도를 유지한다. 이런 경우 투수가 던진 공을 타자가 높이 쳐냈을 경우 사람들은 흥분한다. 왜냐하면 그 각도에서 잡히는 타구의 궤적만으론 어지간한 야구광이 아니고선 단순한 외야 플라이인지 홈런인지 언뜻 알아차리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이 경우도 축구와 마찬가지로 9회말 투아웃 만루에 3점 정도 지고 있는 상황이라면 착시현상은 더욱 두드러질 것이다.

 

대체로 사람들이 세상 일을 바라보는 경로도 이와 비슷하다. 실제로 우린 어떤 일이 발생했을 때 모든 종류의 '사실'을 알긴 힘들다. 제공되는 정보도 제한적일 뿐 아니라 그 정보 제공처의 의도 역시 파악하기 힘들다. 거기에 사람들 개개인의 감정적인 상황이 더해지다 보면 종내는 그릇된 정보를 '믿기' 십상이다. 실제로 우리가 진실로 '사실'을 알고 싶다면 스스로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사실'들, 그 자체보다는 그 '사실들'의 출처와 그 출처들의 성향을 파악하는 것이 더욱 중요할 때도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피랍된 사람들의 소식으로 오늘 하루 바빴다. 넘쳐나는 새로운 뉴스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늦은 저녁 시각 나에게 주어진 정보들은 무엇 하나 '사실'인 것이 없다. 모두가 추정이고 주장일 뿐이다. 난 그네들이 아무런 탈없이 본국으로 돌아오길 바란다. 그리고 이 사건을 바라보는 많은 이들이 '사실'이 아니라 단순한 추정과 주장에 일희일비하며 인터넷에 감정의 쓰레기들을 쏟아내질 않길 바란다.

 

목사나 기독교, 탈레반, 우리 정부, 아프가니스탄 정부, 미국 등등의 사건의 모든 당사자들을 욕하더라도 그건 알다시피 피랍된 이들이 안전하게 고국으로 돌아오고 난 뒤에 해도 늦지 않다. 아니 오히려 나는 당장은 누구 하나 죽일 것처럼 떠들던 이들이 사건이 정리되고 난 이후에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조용해지는 것을 걱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