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oki

죠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비현실적인, 너무나 비현실적인

The Skeptic 2008. 1. 28. 19:19

사람들은 이야기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그 주인공들을 둘러싼 환경이라든지, 개인적인 역사라든지 하는 것엔 그다지 큰 관심이 없다. 그래서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주인공들만을 놓고 상황을 판단하려고 든다. 직관적으로 말하자면 나 역시도 그렇다. 그래서 이 영화에 대한 내 첫 감상역시 매우 '현실적이다'라는 것이었다. 물론 그것은 해가 뜨면 이내 사라지고 마는 겨울 유리창에 서리는 성에같은 것에 불과했지만.

 

첫 인상이 그랬던 것은 역시 주인공들 때문이다. 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는 행동거지가 정상인과 그리 다를 바 없는 여주인공과 장애인을 사랑하게 되면서도 그런 내색따위 전혀 하지 않는 남자. 이 둘의 영향이 매우 컸다 하겠다. 그리하여 이야기는 그냥 흔하디 흔한 사랑이야기처럼 진행된다. 그러나 여주인공이 장애인이란 사실은 여전하고, 그 덕에 장애를 아무 것도 아닌 양 행동하는 두 주인공의 태도는 이 둘의 평범한 사랑을 범상치 않은 반열에 올려놓고야 만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에 열광한 가장 큰 이유가 여기에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 그것은 평범한 사실이 아니다. 누가 봐도 남과 다르다는 것은 개인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그 영향은 그의 성격, 가치관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비록 장애인에 대한 복지정책이나 사회적 공감대가 아주 잘 되어 있는 국가라 해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마찬가지다. 물론 그 정도의 차이가 아주 결정적인 요소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영화 역시 마찬가지다. 여 주인공을 보살피는 그의 할머니는 망설임없이 그 녀를 '고장난 물건'에 비유하며 쓸모없음을 강조한다. 아마도 그 녀는 그 평생동안 그 소리를 듣고 살았을 것이다. 심지어 그 고장난 물건이 남들의 눈에 띄일까 두려워 사람들이 없는 저녁시간에 그것도 꽁꽁 싸매 안을 들여다 볼 수도 없는 유모차에 싣고 다닌기까지 한다. 낯설은 광경은 아니다. 그리고 그런 환경에 처한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갖게 될 것인지는 뻔하다. 모두 그런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런 환경이라면 오히려 다른 생각을 가지게 되는 것이 신기한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에서 가장 큰 감정의 울림을 유발하는 여주인공은 보통 사람들과 그리 다르지 않다. 단순히 영화가 지어낸 이야기라는 사실로 설명할 수 있을까? 어쩌면 감독은 그런 인물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이런 상상역시 충분히 가능하다. 실제로 우리들중 많은 수는 우리와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동정심과 배제라는 이중적인 느낌을 갖는다. 동정심은 그들이 우리와 달리 사회적으로 소외된 존재들이란 점 때문이며, 배제는 그런 환경에서 살아온 그들이 우리와 다른 생각과 행동패턴을 보임으로 해서 이해하기 힘든 존재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감독은 이 이중성과 그 모순되는 감정사이에서 벌어지는 악순환이 깨어지기 위해선 보통 사람과 다른 이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를 생각해본 것은 아닐까. 의미는 있겠지만 사실 좀 불공평하긴 하다. 그렇다고 그 불공평이 잘못된 것이란 말은 아니다. 어찌되었든 그것 역시 효과적인 방법중의 하나일 수 있으니까.

 

물론 그렇게 된다고 해도 모든 이야기의 결론이 해피엔딩을 위해 달려가진 않는다. 정상인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거나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이란 결코 잡을 수 없는 무지개와 같은 것이니까. 물론 사랑이 무지개와 같은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그 때문에 슬퍼하거나 애태우지도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은 마지막에 여 주인공이 그토록 보고 싶어했던 물고기를 구워서 밥먹을 준비를 하던 장면이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 장면에서 문득 '인간은 밥만 먹고도 살 수 있는 존재란 생각에 눈물이 났다'는 언젠가 어디선가 본 싯구인지가 생각났고, 문닫은 수족관앞에서 '어떻게든 해보라'고 절규하던 여주인공의 모습이 겹쳐졌기 때문이다.

 

소설속 죠제는 사랑이 영원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다. 그 사랑이 식은 후에 아무렇지도않을 것도 알고 있다. 소설을 읽는 영화속 여주인공 죠제는 가장 무서운 호랑이일 지라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손 꼭 잡고 바라볼 수도 있을 것이라 믿고 있다. 그리고 역시 그 녀에게도 죽은 물고기는 밥반찬에 불과할 지언정 살아있는 물고기는 무슨 수를 써서든 꼭 봐야만 하는 꿈일 수도 있다.

 

사랑과 삶은 이렇듯 매우 현실적인 것 같으면서도 꼭 그만큼의 비현실성을 함께 갖고 있는 셈이다. 그 상황에서 무엇이 먼저이고 결정적인가 하는 질문은 의미없다. 비현실적인 사랑을 시작했지만 결국 현실적인 물음앞에서 헤어지는 두 사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것이 사랑이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

 

정상과 비정상, 비현실과 현실은 우리가 늘 질문을 던지는 문제이겠지만 역시 답은 없다. 답을 찾고자 한다면 영화 매트릭스를 다시 봐야겠지?

 

 

사족)
영화를 보고난 후에 문든 이 영화를 보면서 그동안 보아왔던 비슷한 사랑 영화들보다 더 큰 울림을 받았다는 사실이 웬지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나 자신의 편견의 깊이와 꼭 맞는 것 같아서 그 울림만큼 등골이 서늘해졌다. 불행히도 그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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