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쇄살인범에 대한 관심이 하늘을 찌를 듯 하다. 하기야 살인만큼 자극적인 이슈도 드물 것인데 하물며 연쇄살인범이라니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중들의 관심이 드높으니 언론조차도 그와 관련된 뉴스들로 도배되고 있는 실정이다. 난 이런 현상에 시큰둥한 편이지만 그래도 단순히 자극적인 보도만이 아니라 연쇄살인범의 특성과 배경에 대한 설명, 그리고 경기 지역의 치안부재와 원인과 같은 이슈들이 동시에 다루어지는 것은 꽤 긍정적이라고 본다.
그중 내 관심을 끄는 사건중의 하나는 연쇄살인범이라는 강호순이의 얼굴을 공개하라는 국민들의 열화와 같은 요구라는 사건이다. 오늘자 보도를 보니 국가인권위원위에서도 이 건을 진지하게 다룰 예정인 듯 하다. 그런데 난 이 현상이 좀 의아하다. 아니 무엇때문에 연쇄살인범의 얼굴이 그리도 궁금할까? 그 연쇄살인범의 얼굴이 공개되면 다른 연쇄살인을 예방할 수라도 있다는 말인가? 그도 아니라면 연쇄살인범들은 외형적으로 어떤 공통된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말인가? 내가 과문한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알고 있다.
미안한 말이지만 내가 보기에 이번에 연쇄살인범의 얼굴을 공개하라는 요구는 단순한 호기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누군가는 이런 징벌을 도입함으로서 범죄예방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주장도 펼치지만 미안하게도 그런 따위에 신경을 쓰는 인간이 연쇄살인을 저지를 확률이 얼마나 될 것이라고 보는가? 사회구성원들이 관습적으로 동의하지만 효과를 측정하기 불가능한 이런 징벌에 반사회주의적인 성향을 가진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이 꿈쩍이라도 할 것이라고 보는가? 내가 보기에 이런 류의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세상 모든 사람들은 나와 똑같은 가치관과 생각을 가지고 산다'는 매우 협소하며 이기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인간들일 뿐이다. 덧붙이자면 외려 그런 인간들이 일반인들보다 연쇄살인범이 될 가능성이 더 높다.
이런 단순 호기심과 형편없는 분별력덕에 얼굴공개가 이루어진다고 치자. 안 그래도 인천지역의 택시에 CC TV설치된 것에 대해서도 사생할 침해라는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인데 이런 식으로 개인의 정보가 이런 저런 핑계들로 공개가 되버리는 구조가 되버린다면 과연 개인의 자유는 어디서 어떻게 보장받겠다는 말인가. 개인의 자유보다는 공공의 안녕이 더 소중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 뭐 그다지 새로운 대척점도 아니다. 자유와 안전이 서로 배치되는 개념이란 주장은 군사독재의 추억과 가부장제가 견고하게 휘어잡고 있는 나라일수록 득세하는 주장이다. 그러나 그것은 근거없는 소리다.
공공의 안녕을 위해 국민들의 자유를 침해하는 정책들이 시행된다고 한들 그 정책들을 따를 사람들은 이런 저런 이유들로 강력 범죄들을 저지르지 못하는 사람들일 뿐이다. 강력한 통제 국가일수록 강력범죄 발생율이 현저히 낮아 진다는 통계는 없다. 중요한 것은 강력 범죄가 어째서 발생하는가 하는 점이다. 대부분의 강력 범죄들은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불안이 그 원인이다. 강력한 통제 국가였던, 그리고 지금도 그런 성향이 강한 동유럽의 국가들의 강력 범죄는 대부분 정치적 부패와 관련있는 것처럼 말이다.
게다가 가난은 인간에게 기본적인 교육의 기회를 앗아가기 마련이다. 그리고 강력범죄자들의 공통점중 하나가 바로 '무지'다. 그리고 이 '무지'는 외형적인 차이에 대한 근거없는 차별이란 '인종주의'의 뿌리이기도 하다. 경제적 사회적 불안이 야기하는 개인적, 집단적 무지가 극적으로 발현된 역사상 최고의 사례는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히틀러의 나치 독일일 것이다. 결국 개인의 자유를 무한정 침해하는 거대 관리국가가 된다고 하더라도 강력범죄는 결코 사라지질 않을 것이다. 덧붙이자면 적정한 수준을 넘어서는 경쟁을 유발하는 자본주의 국가 역시도 집단간 계층간 불만을 격화시킴으로서 범죄발생을 부추길 수밖에 없다.
그러니 제발 감시와 처벌을 통해서 사회가 안전해질 것이라는 착각따위는 어서 버리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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