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우물을 열심히 판 사람의 인생은 단순히 알훔다웠던 한 때의 추억으로 남는 것이 아니다. 그 인생은 기억과 추억을 넘어 역사가 되게 마련이다. 주말 예능 프로그램으로 무려 1267회, 26년이란 시간을 달려온 '가족 오락관'이 그 문을 닫는다고 한다. 더불어 '가족 오락관'의 대명사이자 부제처럼 붙어 있던 이름 '허 참'역시 사라질 것이다. 앞으로 다른 어떤 프로에서 얼굴을 보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 '가족오락관의 허 참'과는 사뭇 다를 것이다.
시간이 지나고 그 시간들이 켜켜이 쌓이면 사람들은 변하게 마련이고 사람이 변하면 세상이 변하게 마련이다. 26년, 거의 한 세대를 관통하는 시간이다. 하물며 하루가 멀다하고 눈돌아가게 변화하는 것을 자랑인 양 알고 있는 '천리마 행군 사회', 그 변화 속도처럼 모든 것을 쉽게 얻고 쉽게 버리는 '만성 조루 사회'인 대한민국에서, 그것도 그 변화를 주도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강조하는 TV프로그램이 26년을 끌어왔다는 것은 분명 범상치 않은 일이다.
물론 어울리지 않은 상황에서 어울리지 않는 일이 벌어지는데는 분명 다 그만한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이번 봄개편에서 사라지는 프로그램의 면면을 보면 쉽게 짐작이 갈 것이다.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 '가족오락관' 성격은 조금 달라보이지만 분명한 공통점은 '가족'이다. 가족의 가장 기초단위라 할 부부의 문제를 다룬 드라마(?), 특정한 세대가 아닌 온 가족이 둘러앉아 볼 수 있는 예능 프로그램. 결국 가족을 대상으로, 소비자로 삼았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물론 소재나 소비층을 그렇게 잡았다고 해서 의도대로 일이 굴러가진 않는다. 그래도 명목상 그런 것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것만으로도 롱런의 발판이 될 수 있다. - 개인적으론 왜 그렇게 되어야 하는지 이해가 잘 안 되지만 어차피 세상이란 내 상식과 어긋나는 부분이더 많으니 깊게 고민할 것도 없다.
아무튼 난 부부클리닉도 가족오락관도 보지 않는 사람이다. 최근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거의 TV를 끊고 지낸지 어언 1년이 되어가지만 그 전에도 난 보지 않았다. 제 아무리 영화역사에 길이 남을 영화라고 떠들어도 오래된 옛날 영화를 보면 진부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유다. 그러나 그 진부함에도 불구하고 그 영화로 인해 영화사의 결정적인 전화점이 될 사건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부인할 순 없는 것처럼 오래 롱런한 TV프로그램에도 분명 그런 것이 있을 것이다. 비록 지금 내 눈엔 진부함 이외의 것이 보이지 않지만 언젠가 누군가는 그 이면의 무언가를 새롭게 조명해줄 것이다. - 아마 난 못할 것이다. 그 프로그램들을 보지도 않았거니와 그 무언가를 찾기 위해 그 프로들을 다시 찾아볼 생각도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돈을 좀 두둑하게 준다면 몰라도... -
아무튼 장수 프로그램들이 연이어 끝을 맞이하고 있는 이 봄, 그 프로그램들이 대한민국 방송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하는 것은 아직 잘 모르겠다. 다만 '허 참'이란 이름이 가족오락관과 함께 사라진다는 것은 너무 아쉬운 일이다. 비록 내 취향엔 안 맞는 프로그램들이었지만 말이다.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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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노래 자랑'은 무사하겠지? 송해 아저씨도 계속 볼 수 있겠고?
물론 전국 노래 자랑도 안 보긴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그 프로만큼은 절대 안 사라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송해 아저씨도 딱 지금 그 모습으로 천년 여왕 싸닥션 날리는 수준까지 사셨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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