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먹고 바람똥

'자유'라고 다 같은 자유가 아니다.

The Skeptic 2009. 5. 27. 14:32

새삼 고백할 필요도 없는 일이지만 난 분명히 정치적으로 과잉인 인간이다. 물론 인간이 무리지어 살게 된 이래로 인간의 모든 행동은 정치적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물론 '분업이 효율적이다'라는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방식을 집단의 질서로 받아들인 이래 정치로 밥을 벌어 먹는 인간이 아닌 대다수는 정치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된 것 역시 사실이다. 문제는 이 거리감이 문제가 되는 상황이 있고 그렇지 않은 상황도 있다는 거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국면을 맞아 애도와 추모의 물결이 한창인 상황에서 또 한 귀퉁이에선 볼멘 소리가 올라온다. 축약하자면 '왜 슬픔을 강요하느냐?'는 것이다. 그들은 누군가 애도하고 추모하고 슬퍼할 권리가 있으면 우리들에겐 예능 프로를 보고 즐거워할 권리도 있다라는 것이다. 매우 원칙적인 차원에서 보자면 결코 틀린 것이 없는 주장이다. 그러나 단지 그렇게만 받아 들일 수 있을까?

 

누군가는 인간에 대한 예의를 말하지만 그 역시 사실 이런 주장앞에선 군색해지기 마련이다. 왜냐면 이런 주장을 하는 이들의 특징은 온 몸과 머리의 신경이 온통 '개인의 자유'라는 덕목을 향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무슨 말을 해도 반박의 여지가 남는다. 물론 그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말하자면 자유라기 보다는 '무책임함'이며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이란 기본 개념을 무시하는 무지에 가깝다. 로빈스 크루소가 아닌 이상 인간의 행동과 그 결과는 늘상 다른 이들에게 크든 작든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다. 개인의 자유역시 이 범주에서 벗어나진 못 한다. 물론 이런 기본조차 모르는 인간은 없겠지만(정말?)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글의 첫 머리에 지적한 것처럼 '거리감이 문제가 되는 상황인가? 아닌가?'하는 부분이다.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해주는 것은 지고지순한 가치지만 그 자유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과 그 자유의 의미를 제한할 수 있는 정치적 상황의 적절성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말하자면 민주주의적 가치가 의심할 여지없이 존중받으며 민주주의를 위한 기본적인 사회 구조가 공고하게 유지되는 나라나 사회라면 개인의 자유를 한없이 보장할 수 있다. 언제라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것에 대한 문제제기가 가능하고 적절한 것으로 받아 들여지면 사회에 반영될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독재국가나 전체주의 국가에선 그런 피드백 과정 자체가 없다. 그 구조에서 주어지는 개인의 자유란 독재자에게 굴종할 수 있는 자유와 독재자나 그 세력들에게 위해를 가할 수 없는 선에서의 자유일 뿐이다. 그런 것조차도 자유라고 부르겠다면 사실 나로선 더 할 말은 없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상황은 어떨까? 개인의 한 없는 자유를 주장할 수 있을 정도로 민주주의적 기초가 공고한가? 아니면 어설프게 주어진 반 쪽짜리 자유라도 감사하게 받아 먹어야 하는 상황인가?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집권 기간동안 어설프게나마 개인의 자유가 신장되니까 세상이 많이 달라진 줄로 착각하나 본데 현 쥐박이 정권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보라. 대한민국은 별로 나아진 것이 없다. 대통령과 집권 정당이 바뀌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질서들이 송두리째 무너져 내리고 있다. 학계와 관계를 막론하고 힘깨나 있다는 이들은 그들 밑에서 충성 서약을 하느라고 정신이 없다. 이걸 민주주의적 질서라고 말할 수 있나?

 

 

 

 

p.s.

별 것아닌 일에 과잉 반응을 보인다는 지적이 있을 수 있다. 모르겠는 바도 이해가 안 가는 바도 아니다. 단지 예능프로 못 본다고 투덜대는 일에 민주주의 질서가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것이 오버일 수 있다. 만약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오버인 것 맞다. 적어도 민주주의 질서가 어떤 것인지 인식하고 있으니 그 기준에 비추어 지금 내 발언에 대해 오버라고 지적하는 것이니까. 그러나 그런 인지과정없이 그저 '내 맘이야!'라고 외치는 이들이 다수라면 내 지적은 결코 오버가 아니라 매우 정당한 지적이다. 물론 난 지금 이 글이 단순히 내 과잉반응이었기를 바란다. 그 반대라면 너무 비참할 것 같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