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어떤 죽음

The Skeptic 2010. 1. 23. 17:03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아흔을 훌쩍 넘기신 연세다.

 

1.

올 해가 2010년이니 대충 거꾸로 계산해도 1920년대에 태어나신 게다.

우리가 흔히 봉건주의 조선시대가 실질적으로 끝난 시점으로 배우는 시기가 1930~40년대다.

조선민족이 서로 총을 갈겨대며 싸운 6.25전쟁이 1950년에 일어났다.

1980년에 광주민주화 항쟁이 있었다.

강원도의 산골 마을에 사신 관계로 전쟁의 화마조차 비켜가긴 했지만

남조선 역사를 통해 보자면 그리 녹록한 시간들은 아니다.

 

2,

내가 국딩이던 시절 매년 방학이면 외할머니가 계신 산골로 놀러가곤 했었다.

열차조차 제대로 뜷리지 않아 선로에서 내리고 그 선로에서 다른 기차로 갈아타곤 했었다.

그리고 고딩이 되어서야 그 여정은 끝이 났다.

 

그렇게 오랫동안 얼굴을 뵈어온 분이신데

돌아가시고 장례식장에 가서야 겨우 우리 외할머니의 이름 석 자를 처음 알았다.

그게 무슨 문제인가 싶었는데 기분은 이상했다.

 

3.

외할머니의 마지막 십년은 그리 행복치 않으셨다.

외할아버지가 돌아 가시고 시골에 홀로 계시게 둘 수 없다는 외삼촌의 성화에 서울로 오셨지만

외삼촌은 그 후로 외할머니의 일에 그리 관여하지 않으셨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서울과 분당의 아파트에서 외할머니의 말년이 지나갔다.

그 분께 도시의 삶은 화려함이 아니라 그저 아파트의 작은 골방이 전부였다.

 

아흔이 넘은 연세에 정신도 조금 오락가락하셨던 분에게 그런 생활이 무슨 대수이겠는가 생각할 수도 있지만

 

"과연 그 시간들이 행복하셨을까?"

 

라고 질문한다면 어떨까?

고답적이고 획일적인 자식된 도리라는 틀에서 벗어나 생각해 본다면 답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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